“육체가 불편하다고 마음까지 장애는 아니잖아요. 조금 불편할 뿐 남에게 뒤쳐지려는 약한 마음을 버려야만 합니다.”

국내 유통되는 벌꿀의 대부분이 양봉(養蜂)에 의해 생산되는 가운데, 토종벌을 이용한 한봉(韓蜂)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는 농업인이 있다.

가평군 북면에서 10대째 살아가고 있는 방춘식(59) 가평군한봉연합회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소아마비로 2살때부터 한쪽 다리가 불편했던 그는 신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이른바 ‘사회적 약자’다.

하지만 그의 삶은 지금껏 거짓 없이 누구보다 치열하고, 올곧게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고통을 희망으로 바꾼 그에게서 삶의 의미를 배워본다.



#장애는 육체가 아닌 마음이다.

어릴적 그는 친구들과 물고기도 잡고, 감자도 구워먹으며 북면의 황금들녘을 활보하고 다녔다.

수영도 남들보다 먼저 시작을 했고, 자전거와 오토바이, 운전면허도 이른 시기에 취득할 만큼 행동가였다고 한다.

2살무렵 소아마비로 움직임이 불편했지만 남들이 말하는 ‘장애’라고 느껴본 적은 없다고 회상하는 그다.

평범한 학창시절이 지나고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에 양계사업을 하려던 그는 어릴적부터 꿈이던 전자산업으로 전향하게 된다.

자신이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이때다.

국제TV학원을 수료하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취업을 하려는데 거절을 당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는데, 남이 보기에 좀 그랬나봐요. 옥상에 안테나 설치도 해야 하고. 그래도 하고자 하는 마음을 하늘이 버리진 않았어요”(웃음)

그는 주저앉는 대신 남들보다 더 많이 움직이며 자신을 ‘써 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종로 중앙시장에 위치한 전파사에 취직한 그는 6개월동안 제품을 수리하는 탁자에서 쪽잠을 자면서 기술을 배웠다.

엿장수들이 가져온 라디오 등을 수리해 보따리장수들에게 팔면서 서울 미아리에서 전파사를 열게 된 그.

하지만 6개월여가 흐른 1979년. 25살 가을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그는 귀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가평에서도 전파사를 시작했지만 모두가 넉넉치 못했기에 수리비를 받기 미안했던 그는 결국 3년만에 매장을 정리했다.

“TV 한대 고치는데 7~8천원하는데 그럴 돈이 어디 있겠어요. 부품값과 ‘술 한병’만 받으니 수익을 남기라는 건 말도 안되죠. 그래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전파사를 닫은 그는 여름철 행락객이 몰리는 지역 특성을 살려 유원지를 시작했다.

청정 가평의 자연환경을 활용해 느타리버섯을 지금까지 재배하고 있기도 하다.

사과농사도 15년정도 지었지만, 몸이 불편한 자신을 대신해 아내가 무거운 짐을 옮기는 걸 느끼고 당장 톱질을 해버렸던 그다.

가시오가피가 몸에 좋다는 말에 산에서 채집이 어려운 상황을 가정해 집에 심어놓기도 했다.

2년동안 가시오가피 액기스로 청국장을 발효시키는 실험을 한 그는 4년 전부터 ‘가열해도 냄새 적은 청국장’ 제품화에 성공했다.

“농사는 뭐든지 제 손끝에서, 얼만큼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려요. 한쪽 다리가 불편하긴 해도 농작물들은 그런 거 신경 안쓰고 무럭무럭 잘 자라거든요”

   
 

#6년전 만난 한봉에 마음을 빼앗기다.

그가 한봉을 시작한건 6년전 우연한 계기에서다.

북면 목동리 새마을지도자로 봉사하던 그에게 마을 주민들이 한봉을 제안한 것이다.

외부 양봉업자가 마을에서 벌농사를 짓는것을 방지하자는 취지에서다.

한봉을 시작한 그는 첫눈에 토종벌과 사랑에 빠졌다.

양봉은 주인도 몰라보고 접근하는 모든 생명체에 위해를 가한다.

하지만 한봉은 주인을 알아보는 것은 물론, 자신에게 애정이 있거나 적어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손을 갖다 대도 물지 않는다.

시쳇말로 ‘예의 바른 곤충’인 것이다.

양봉은 스스로 집을 짓지 않아 손이 많이 가지만, 한봉은 기본적인 틀 없이 집을 짓는 ‘독립성 강한 곤충’이기도 하다.

한봉의 가장 큰 매력은 꿀이다.

침이 작아 큰 꽃에는 못 들어가는 한봉은 주변에 있는 다양한 작은 꽃에서 꿀을 채취한다.

양봉에 밤 또는 아카시아 등 특정한 향이 있다면, 한봉은 다양한 잔향이 진하게 퍼진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사람의 마음에 반응하는 한봉을 보면서 자식같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어요. 종은 다르지만 서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는 면에서 감동인 겁니다”

그런 그에게 지난 2010년은 악몽이었다.

꿀벌 유충에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인 낭충봉아부패병으로 자식들을 모두 잃게 된 것이다.

특별한 예방·치료약이 없는 이 병으로 전국 토종벌이 90% 가까이 전멸한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동네 병원을 찾은 그는 별의별 방법을 사용해 봤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요. 서로 정붙이고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자식 잃은 부모 심정이야 오죽하겠어요. 세상이 망한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이때부터 그의 한봉 연구가 시작된다.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평소 건강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토종별에 특화된 영양제 개발에 돌입한 것이다.

먼저 농촌진흥청과 농업기술원에도 없는 종자벌을 구입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어렵게 구한 종자벌을 효율적으로 증식시키기 위한 교육도 받았다.

기본적인 준비가 갖춰진 그는 한봉에게 이것저것 약을 먹여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인삼을 포함한 5가지 약재를 즙을 만든 후 특수한 비법을 첨가해 벌에게 먹인 결과 그의 벌들은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비법은 지난해 가평군농업기술센터의 재료비 지원으로 가평지역에 확산, 채취되는 꿀의 양과 벌의 증식면에서 효과를 톡톡히 봤다.

예산부족으로 농가에 약품을 전달하지 못한 올해는 벌써부터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25일자로 특허청으로부터 특허까지 획득한 그다.

“한봉이 전멸하는 사태를 두고 볼 수 없었어요. 다행히 효과는 입증 됐는데, 재료값이 만만치 않다보니 그냥 줄 수도 없고. 여기저기서 피해가 발생하는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강한 한봉의 미래를 꿈꾸다.

그는 함평 나비축제처럼 가평군에도 ‘한봉축제’가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말로만 홍보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리로 지붕을 제작해 토종벌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적인 측면과, 소비자 스스로 꿀을 채취할 수 있도록 하는 생산적인 요소를 부여하는 것이다.

벌을 분할하는 분봉을 해주고, 1년 동안 함께 가꿔 보람을 찾는 가족체험도 그가 생각하는 이벤트 중 하나다.

“가평군 자연은 수도권에서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해를 입히지 않는 토종벌과 아이들이 함께 뛰놀 수 있는 분위기만 조성된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는 한봉의 발전을 위해선 정부의 정책보조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다.

가을에 꿀을 뜬 다음 백신을 넣어 주면 한봉이 겨울을 나면서 스스로 강해지고, 새끼를 더 많이 까는 예방접종 개념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종자벌을 기를 개량벌통을 농가에 보급하는 사업도 마찬가지다.

종벌 5통이 봄이면 20통으로 늘어날 수 있는데, 열악한 환경 속 한봉농가들이 부담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낭충봉아부패병 방지를 위해 산속에 있는 벌통(설통)을 제거, 감염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정부차원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끝으로 “한봉은 자식이어서 재미있는 거에요. 마음에 장애를 치유해주는 한봉, 이 모든 걸 함께 해 준 부인이 있어 오늘도 행복하기만 합니다.”라며 자연을 닮은 미소를 남겼다.

글·사진=조한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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