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 정윤조 역 | 문학수첩| 360쪽

   
▲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헤밍웨이 이래 가장 독창적인 작가’ ‘고딕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여성 소설가 플래너리 오코너.

요절한 탓에 작품 수는 적지만,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는 동시대 작가인 트루먼 카포티에 비견될 만큼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숨은 거장인 그의 대표작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가 마침내 국내 독자들에게 번역 소개된다.

그의 단편집은 ‘전미 도서상’과 ‘오헨리 단편문학상’ 수상으로 일찌감치 작품성을 공인받았다. 또 수록 작품들이 미국 대학들의 영문학과 커리큘럼에 매번 빠지지 않고 포함될 만큼 작가의 문학적 성취는 학문적으로도 널리 인정받는다. 특히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위원회 추천도서로 지정돼 ‘미국 고교생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 되기도 했다.

종교와 법, 윤리가 삶의 테두리가 되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소위 ‘지성인’들의 환상은 플래너리 오코너의 작품 안에서 완벽하게 깨진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던 20세기 초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는 청교도적 금욕으로 자신을 옭아맨 채 부자유스러운 욕망을 꿈꾸었던 미국 남부인들의 위선적인 삶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그들의 참혹하고 우스꽝스러운 최후를 보여주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독선과 아집에 갇혀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굳게 믿었던 ‘지식’과 ‘교리’에 의해 뒤통수를 맞고, 천국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끌려간다. 아픈 사람을 고치는 마을 목사의 능력을 맹신한 꼬마가 등장하는 ‘강’에서 아이는 자신이 직접 기적을 일으키려는 생각에 강 속에 들어가 자신을 직접 세례하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동네 불한당에게 머리채가 잡혀 어디론가 끌려간다.

   
 

‘검둥이 인형’에서는 평범한 흑인을 보고도 겁을 집어먹는 독실한 남부인 헤드 씨가 여행 도중에 흑인들이 있는 곳을 지나며 지옥과 같은 망상을 겪게 된다. 남북전쟁의 영웅이었던 퇴역장군의 임종 전 풍경을 그려낸 ‘적과의 뒤늦은 조우’에서 주인공 새시 장군은 죽음 전까지 자신의 품위와 명성에 집착하다가 ‘최후’라는 의미에 대해서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하고 초라하게 숨을 거둔다.

“지옥이 없다면 우리는 짐승과도 같을 것이다. 지옥 없이는 품위도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던 오코너는 이처럼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인물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허위의 감정을 끄집어내어 폭발시키고 그들을 파멸시킨다. 이와 같은 ‘잔혹 도덕극’을 통해 작가는 현대인의 얼굴에 씌워진 가면을 벗겨내고,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책을 포함한 오코너의 모든 저작물은 사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재출간을 반복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는, 젊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고전이 대개 그렇듯, 세월을 초월하는 문학적 완성도와 대중성을 겸비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평범한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어두운 욕망을 포착하는 예리한 눈, 블랙 유머와 아이러니를 적재적소에 사용해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표현 방식 등, 그의 작품은 2000년대 이후에 출간된 어느 작가의 작품과 비교해도 그 세련미와 신선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다. 선과 악이 한데 섞인 인물들과 사실적인 배경, 신비롭고 냉혹한 분위기, 허를 찌르는 이야기 전개를 특징으로 하는 전복적인 소설적 장치와 사실주의적인 문체의 감성은 작품의 묵직한 주제 의식과는 별개로 이야기 자체에 빠져들고 말게 하는 힘을 가졌다.

송시연기자/shn8691@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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