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사람] 엄득호가 만난 취임 석달 맞은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지난달 28일 오후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교육청 집무실에서 9시 등교 정책을 중점으로 중부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정선기자

최근 교육이슈(issue)의 중심도시는 단연 경기도다. 9시 등교를 시작으로 상벌점제도 폐지, 시험 축소 등으로 전국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그 이슈의 중심에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있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의 행보는 취임 첫날부터 남달랐다. 청바지 노타이 차림에 현장과 소통하는 것으로 취임 첫날을 맞이했으며, 취임식을 대신해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다. 학생 중심의 교육을 표방하며 넥타이를 풀고 청바지를 착용하고 현장을 찾았으며, 기자들과도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현장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이 교육감의 교육관과 교육감이 먼저 동행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취임 석 달째를 맞고 있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을 만나 그의 철학과 앞으로의 교육정책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경기도 교육현장이 전국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혁신교육은 경기도에서부터 시작됐다. 학생인권조례, 무상급식, 혁신학교는 경기도를 넘어 전국적인 교육 이슈가 되었고 공교육의 방향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이끌어 냈다. 이런 면에서 경기도교육청의 정책은 공교육을 선도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청, 교육부가 그동안 교육정책을 펼쳤는지 되돌아 봤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학생중심’, ‘현장중심’이라는 가치와 원칙이 사람들에게 간결하고도 의미있게 전달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의 정책들이 핫이슈가 된 것은 그 만큼 현장에서 학생중심의 정책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혁신 정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9시 등교다.

“9시 등교 정책은 학생들이 제안한 정책이고,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서 진행하는 것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0교시와 같은 것은 경쟁을 위해 부추겨 온 수업 시스템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9시 등교는 대단히 중요한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수업이 30분~1시간 미뤄지면 학원가는 시간 짧아져 사교육비 줄이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통계적으로도 핀란드 학생들은 평균 4.8시간을 공부하고, 한국 학생들은 9.6시간을 공부한다. 학생들이 자고 먹는 시간을 확보해줘야 정신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

―9시 등교는 공약이 아니었다. 취임 이전에 계획돼 있었나?

“평생 생각 못했던 정책이다. 선거운동 할 때 학생들이 초청하는 토론회에 가서 학생들이 하는 얘기를 심도 있게 들었다. 그때 처음 들었던 이야기가 ‘우리도 9시에 등교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일찍 등교해 특별히 공부를 더 하는 것도 아닌데 들어보니 아이들 이야기가 일리가 있었다. 그때부터 9시 등교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됐다. 이미 2000년대 중반에 ‘우리도 잠 좀 자고 밥 좀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동안 학생들 주장을 학교가 외면했구나란 생각에 이 정책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학교의 중심을 학부모와 교사가 아닌 학생들에게 맞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학생들이 자기 존재를 알린 거다. 사실 이 이야기가 나온 것은 3개월 정도 됐는데 이후에 확인해보니 지침이 없어 학교 내부에서도 9시 등교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8월 14일에 처음 공문을 내렸고, 그때부터 학교가 난리 났다. 9시 등교는 학부모, 교장, 교사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주장을 경청하고 받아들여 새로운 학교문화 만들자는 의미도 갖고 있다. 또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고, 학생들 소망과 미래를 위해 중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9시 등교는 학교 교육 정상화의 첫 출발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추진 중이다.”

―9시 등교 말고도 학생들의 정책 제안 중 향후 반영할만한 것 있나.

“시험 횟수 줄이기를 반드시 할 계획이다. 지난달 전국교육감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 평가는 국가에서 처음에 표집단위로 하다가 현재는 중3,고2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표집집단 1%만 여론조사하면 되지, 이것을 전체 시험으로 해서 부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연합고사 4번, 국가단위 시험 5번에다가 중간·기말고사, 쪽지시험까지 시험이 말할 수 없이 많다. 시험이 학생들에게 주는 압박감이 얼마나 심한가. 경쟁과 평가를 통해 우열을 가리고, 등수를 나누고. 성적을 매기는 비극적 상황 없애야 한다. 시험 횟수를 줄이고 평가 방법을 바꿔볼 필요가 있단 생각을 갖고 있다.”

   
▲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지난달 28일 오후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교육청 집무실에서 9시 등교 정책을 중점으로 중부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정선기자

―현장에서는 상벌점제 폐지까지 이어질 경우 학생들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지난 2000년에 체벌제도가 깨지면서 하나의 대안으로 나온 게 상벌점제다. 그때 실패했다가 다시 나온 것이 2009년인데, 지금까지 평가를 봐도 실패한 정책이다. 실효성과 공정성이 없고 굉장한 스트레스도 준다. 교육부 정책이니까 학교 현장에서 말도 못한다. 교사가 재판관도 아니고 어떤 경우에 벌점을 주고 안줄지 주관적 판단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학급에서 협약을 맺어 학생들 스스로가 실천하면 고쳐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안이 있는가?

“첫 번째 대안은 협약을 맺어 학생들끼리 규칙을 정하도록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침에 등교할 때 선생님이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학생들 간 갈등이나 폭력이 없어질 수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잘한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것이다. 특히 그 자리에서 바로 칭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을 통제나 제압이나 관리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주체로 인식하면서 책임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면 문제는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상벌점제를 없애고 어떻게 할 지 아이들과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교육이다.”

―이상적인 정책이지만, 교육현장에서 접목시키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스템이 정착만 되면 선생님도 편해질 것이다. 토론식 수업을 하니까 잠자는 아이가 줄고, 왕따도 줄 것이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즉각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담임이 현장에서 해결이 안돼 도움을 요청하면 바로 학생을 상담실로 데려가 상담하면서 마음을 풀어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꽤 깊이 논의하고 대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다.”

―밖에서 바라본 경기도교육청과 안에서 바라본 경기도교육청. 어떻게 다른가?

“밖에서는 심각하게 바라본 적이 없었다.(웃음) 생각했던 것보다 참 경직된 곳이라는 걸 느꼈다. 사회의 여러 가지 흐름, 변화와 거리가 있는 높은 장벽이 있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볼 때 가장 눈여겨봤던 것이 우리나라가 교육은 없고 입시만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성교육이나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라는 과정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입시는 학생의 목표가 아니라 학교와 교사, 학부모의 목표다. 그래서 교육감 당선 후 지난 2달 동안 어떻게 하면 학생중심으로 갈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첫 번째 결과가 9시 등교였다. 교육감이 되고 나서 노력했던 점이 있다면 학생 중심으로 가는 길을 열고, 찾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책 시행 과정에서 갈등도 있었고, 교육감으로써 내딛는 첫 발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교육 분야는 경제 분야와 함께 국민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분야다. 그만큼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중요한 정책에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기도교육청의 정책에 대한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서로 간의 이해와 긍정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교육은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동체의 협력과 지원이 있어야 그 결실을 볼 수 있다. 때문에 교육청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교육현장,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이를 위해 불만제로팀 운영을 통해 현장의 다양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학부모지원센터 설립을 통해 학부모와의 소통, 지원, 협력을 강화해 나갈 생각이다.”

―교육감이 되고자 했던 열망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경기교육을 걱정하는 시민사회와 경기도민의 깊은 열정이 제 마음을 움직였다. 혁신학교가 결실을 맺지 못하면, 경기교육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이 무너진다. 그동안 학교 현장의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헌신적으로 일궈온 경기 혁신교육을 지키고 완성해 나가는 것이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한 과제이자 저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제 인생의 ‘마지막 과업’이라는 신념으로 감히 교육감 출마를 결심했다.

돌이켜보면 제가 26년간 교직에 종사해왔고 제가 한 첫 번째 일이 중학교를 가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무상 중학교육을 했던 일이다. 제 인생의 출발이 교육으로 시작됐다면 제 인생의 끝도 교육으로 마감 짓고자 하는 것이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지난달 28일 오후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교육청 집무실에서 9시 등교 정책을 중점으로 중부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정선기자

―선거 공약사항 중에 마을교육 공동체가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마을에 있는 모든 교육적 자원들을 충분히 활용하자는 것이다. 선생님 뿐 아니라 은퇴한 전문가들과 교육적 자원을 총동원해 교육환경을 만들어보자는 내용으로, 마을에서 꿈의 학교를 시도하는 것이다. 꿈의 학교라는 건 중3 과정을 마치고 앞으로의 진로교육과 인생설계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먼저 썸머·윈터스쿨을 만들어 마을의 자원들을 총동원해 문·예·체 및 연극 등을 가르치고. 그게 잘 되면 꿈의 학교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가평이나 이천에 있는 폐교를 잘 만들어서 캠프처럼 운영하고, 꿈의 학교를 나온 팀끼리 대회도 열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아직 계획이 완성되진 않았지만 마을이 모든 학교의 자원이 돼 마을 전체가 학교가 됐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경기교육가족들과 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교육은 꿈과 희망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 미래 세대들에게 그런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 자체가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또한 교육은 희망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 아이들과 부모님들께 어떠한 희망을 만들어주느냐 하는 것이 교육의 가장 큰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희망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 이웃과 함께 만드는 것이다.

1년을 생각하면 농사짓고, 10년을 생각하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생각하면 사람을 키우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다. 교육정책은 다른 정책과 차이가 크다. 하나의 정책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교육정책이 흔들리면 결국 그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의 몫으로 돌아간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정책을 통해 경기교육 백년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교육감에게 맡겨진 경기도의 모든 학생들을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 학생들과 아름다운 동행을 해 나가겠다.”

1시간 남짓 진행된 이재정 교육감과의 인터뷰에서 읽을 수 있는 포인트는 ‘소통’이었다. 그는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동반’과 ‘협력’이란 단어를 인터뷰 시간동안 반복 사용했다. 화려하게 포장하기보다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려하는 세심함도 보였다. 권위적인 자리에서 벗어나 동반자의 자리에서 함께 하려는 모습도 엿보였다. 아직은 조금은 낯선 이 교육감의 혁신 드라이브가 내년에는 결실이 되어 돌아오기를 기대해본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충남 천안 출생. 경기고등학교,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서울대학원 종교학과, 캐나다토론토대 신학박사, 문학박사

▶성공회대 총장, 새천년민주당 정책위 의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제16대 국회의원, 통일부장관, (사)노무현재단 이사, 국민참여당 대표

대담=엄득호사회부장

정리=구민주기자

사진=이정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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