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산 김영철 화백

산을 보노라면 산을 휘감아 도는 바람소리가 들리는듯하고, 계곡을 굽어돌아 흐르는 물을 보면 물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풍광을 노래하는 이름모를 산새의 노래가 들리고, 들녘에 농부에게선 흥얼거린 풍년가가 들리는듯 하다.

석산(石山) 김영철(68) 화백의 그림은 그의 면면을 보는듯 하다.

돌산처럼 변한없는, 변치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

단 한번의 붓질로 자신의 인격을 담은 작품을 완성한다.

덧칠하지 않고, 꾸미지 않고, 경박함이나 경솔함은 배제한 채 자연의 섭리와 이치를 담아낸다.

그런 그가 올해 지난 50년 한결같은 미술인생을 담은 대작(1천호)을 완성했다.

천년을 산다는 노송과 학이 어우러진 작품에서는 그만의 강한 힘과 기운이 느껴진다.

석산에게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생이 화폭이 되다

그는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배우고 싶었지만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망은 포기할 수 없었다. 학교 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그림을 공책이 까맣게 변하도록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 한 후 그림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 또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죠.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졌죠. 하지만 가정형편상 그림을 배운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죠. 군대에 입대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그림 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요. 군대에서 제가 그린 그림을 인정해 줬죠. 그리고 부대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하게 되면서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게 됐습니다.”

그렇게 그림을 시작했고, 제대 후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러 다니게 됐다. 처음엔 서양화를 배웠지만 점차 동양화에 관심을 두게 됐고, 유명 동양화가들을 찾아가 허드렛일을 하며 배웠다.

“동양화는 단 한번의 붓질로 그림이 완성되죠. 화려한 색으로 무장을 한 작품들과는 달라요. 서양화는 덧칠을 하면서 그림이 완성되지만 화선지에 담는 동양화는 한번 그림이 그려지면 수정을 할 수 없어요. 그만큼 정교하고 어려운 그림이죠. 동양화를 시작할 때 붓, 농도 운필속도를 맞추는데만 8년이 걸리더라고요.”

남들보다 어렵게 시작한만큼 남들보다 열정은 배가 됐다. 그리고 그 열정은 하루 24시간도 부족하게 했다.

“정신일도(精神一到)면 하사불성(何事不成) 이라고 한곳에 정신을 집중시키면 안 이루어지는 게 없다는 생각을 가슴에 새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남보다 5배, 6배 노력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하루에 8시간 노동을 하고 밤에 8시간 이상 그림을 그렸죠. 그때 당시는 하루 2시간 이상을 자보지 못했죠. 근 20년을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어렵게 시작한 그림은 그렇게 그의 인생이 됐다. 벌써 그가 그림을 그린지도 50여년이 넘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온 것이다.

그렇게 지난 50년의 세월을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해 서양화는 물론 동양, 서예, 문인화 까지 모든 부분을 섭렵했고, 이제 그는 미술계의 대부가 됐다.



▶변치 않는 그림을 그리다

그는 1980년 서울미술대전 특선에 당선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84년 전국창작미술대전 특선 5회, 1986년 한국서화미술대전 특선 5회, 1987년 일본미술대전 특별작가상 수상(동양화부문), 1988년 한국미술대전 특선 3회, 1989년 중국미술대전 특별작가상 수상(한국화부문), 1990년 제9회 한국미술대전 대상 수상(문인화부문), 1992년 제11회 한국미술대전 대상 수상(한국화부문), 1993년 제12회 한국미술대전 종합대상 수상(한국화부문), 1998년 세계문화예술대상 수상(한국화부문), 2001년 제8회 대한민국문화미술대전 대상 수상(한국화부문), 2002년 제9회 대한민국문화미술대전 종합대상 수상(한국화부문), 2012년 제30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문인화부문) 등 국내외에서 내로라하는 모든 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미술대전 심사위원, 한국예술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문화미술대전 심사위원, 국제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며 한국 미술의 발전을 위해 일조하고 있다.

특히 그는 1995년부터 홀몸 어르신과 결손 아동,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한 특별 전시회를 열어왔다.

전남 여수 현대미술관의 불우청소년돕기 전시회, 울산 사랑의전화 기금마련 전시회를 시작으로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등 30여 개국에서 개인전을 열고 수익금을 현지 선교사들에게 전달해 왔다.

“제가 그림을 어렵게 시작했잖아요.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혹은 저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친구들에게 희망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림을 통해 나누고 베풀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제 이 두손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나아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제에게 또 다른 기쁨입니다. 이렇게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드릴 일이죠.”

이런 그의 지난 50년 인생이 말해주듯 그는 한결같이 변치 않는 삶을 살아왔다.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됐고, 이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고 베푼다. 그래서 그의 호는 석산이다. 돌산, 변치않는 산. 바로 그 자신의 인생을 닮은 호다.

“석산 이라는 호는 돌석 자 뫼산으로 돌로 만들어진 산 이라는 말을 뜻합니다. 돌산 처럼 변함없는 삶, 변함없는 정신을 가지고 살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죠. 또 그렇게 변함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석산이라는 호를 갖게 됐죠. 그것이 제 삶의 원칙이자, 철학이고, 제 그림에 담는 저의 정신입니다.”



▶자연을 담다

그의 화폭에는 무릉도원이 펼쳐진다. 매화나무에는 한 쌍의 새가 지저귀고, 푸른 노송에 하얀 학이 노닌다. 첩첩산중에 둘러쌓인 산능선에는 구름이 걸려있고, 물안개 자욱한 새벽 강에는 뗏목이 유유히 흘러간다. 폭포는 힘차게 떨어지고, 하늘로 곧게 뻗는 대나무는 기품과 고상함이 넘친다.

“자연은 항상 겸손합니다. 자연을 보고 인간이 배우고 살아가야 하죠. 자연 속에 담긴 진정한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 있죠. 자연에 대한 동경은 끝이 없습니다. 그림을 그릴수록 자연에 대한 경기로운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자연은 끊임없는 연구의 대상이죠.”

최근에는 1천호가 넘는 대작을 제작했다. 천년을 산다는 노송과 학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소나무는 나라의 국목이며, 가정에서는 아버지를 상징합니다. 사시사철 푸르고, 눈보라 속에서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죠. 선비의 고결함과 장수의 표상인 학은 1천년이 흐른 옛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상서로운 의미를 지닌 영물(靈物)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죠. 노송과 학이 함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작품은 대여나 판매도 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3천점의 넘는 작품을 그려왔어요. 이제는 많은 분들과 나눠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 대작은 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대여나 판매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50년의 세월보다 앞으로 할일이 더 많다는 그.

“후진 양성을 위해서 미술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 세월동안 꾸준히 제의는 들어왔었지만 아직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있었죠, 이제는 준비를 해야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재산축적이 목적이 아닌 우리나라 미술의 발전을 위한 후진양성이 앞으로 제 삶의 큰 과제이자 숙제 입니다.”

송시연기자/shn8691@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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