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하얀 70대 노인의 투박한 손에는 언제나 연장이 들려있다.

‘땅, 땅, 땅’ 매일 아침 쇠를 자르고 두드리고, 불에 넣었다 빼며 모양을 만들어 내길 수차례.

그렇게 하나의 온전한 물건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자신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수많은 물건을 제자식처럼 여기며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60년이다.

2~3명만 들어가도 꽉 차는 작은 대장간에는 그와 그의 아들이 만들어 낸 수많은 종류의 ‘핸드메이드’ 제품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물건마다 새겨져있는 ‘불광’이라는 이름은 그들의 자부심이자 명예다.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불광대장간은 수작업으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대장간의 명맥을 잇고 있는 곳이다.

그곳의 주인인 박경원(76)씨가 한 평생 대장장이로 살아왔던 지난 세월에 대해 풀어 놓았다.



▶국수 한그릇에서 3천원짜리 기술자가 되다

강원도 철원군이 고향인 박 씨는 지난 1950년 6·25 전쟁이 나면서 고향을 떠나게 됐다.

남의 집 일을 도와주거나 미군이 주는 배급에 의존하며 끼니를 떼웠던 박 씨는 그마저도 끊기자 국민학교 가는 길에 있었던 대장간으로 향했다.

박 씨 나이 13살, 하루에 국수 한 그릇을 얻어먹기 위해 대장간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이후 휴전이 되고 가족들과 다시 고향을 찾은 박씨는 10마지기 되는 땅에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농사로는 가족들과 먹고 살기가 빠듯했다.

그렇게 다시 서울로 온 박씨는 본격적으로 대장간 일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밥 한끼 얻어먹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평생의 직업이 된 것이다.

“중학교 2학년때 학교를 그만두고 대장간에서 일한지 5년째 되던 해였죠. 제대로 된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야 했어요. 그래서 월급은 받지 않고 밥만 얻어먹는 조건으로 새로운 대장간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거죠. 그 나이때는 나름대로 과감한 결단이었어요.”

남다른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었던 박 씨는 새로운 곳에서 점차 자신만의 기술을 익히게 됐다.

그렇게 대장간에서 일한지 14년쯤 됐을까. 박 씨는 선배 대장장이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 선배가 그랬죠. ‘야 이거 누가 만들었냐. 너 이제 하루에 3천원짜리 기술자는 되겠다. 이제부터 주인에게 3천원 달라고 그래’라고. 당시 하루에 3천원 받는 사람은 최고의 기술자였거든요.” 22살의 어린 대장장이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칭찬이었다.



▶대장장이의 운명

“대장장이로써 살아온 인생에 후회는 없어요.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이것밖에 없고,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도 없죠.”

박 씨만의 대장간은 리어카에서 시작됐다. 리어카에 연장을 싣고 다니며 공터에서 필요한 물건을 만들었다. 가족들에게 번듯한 가장이 되고 싶었던 박 씨는 자신의 대장간에 와달라며 가져온 뭉칫돈도 사양하고 오직 자신의 일에 매진했다. 그렇게 번 돈을 밑천삼아 만든 곳이 바로 지금의 불광대장간이다.

60년 세월동안 어찌 일을 하기 싫었던 적이 없었을까. 소싯적에는 부인에게 가게를 맡기고 나가서 술을 마시거나, 놀다 올때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자식들이 태어나고 커가면서 문득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박 씨가 대장장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가족이었다.

   
 

한 동네에 2~3개씩은 있던 대장간이 여러 이유로 하나, 둘 문을 닫을 때도 박씨는 꿋꿋하게 대장간을 지켰다.

“내 밥줄이니까 안놓은거죠. 내가 평생 해온 것이 대장간 일인데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거에요. 이보다 좀 더 쉬운일도 있었겠죠. 하지만 내가 죽을때까지 이 일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지금까지 왔어요.”

박 씨는 1년에 한 번 씩은 꼭 전국에 있는 대장간을 둘러본다. 좋은 물건이 있으면 가져와 팔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다른 대장간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딜 둘러봐도 직접 손으로 두드려 물건을 만드는 곳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기계를 써도 사람 손을 거쳐야 예뻐지죠. 기계만 쓰니까 엉망인거에요. 내가 보기엔 아쉬운 점이 한 두개가 아닙니다. 이왕 만드는거 제대로 만들어서 팔았으면 하는 마음에 쓴소리도 하죠.”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야 사람의 손에 꼭 맞는 물건이 나온다는 박 씨는 어쩔수 없는 대장장이였다.

그런 박 씨의 운명을 잇고 있는 또 한 사람. 바로 아들 상범(45)씨다. 상범씨는 군대에서 휴가를 받고 나올때면 아버지의 일을 돕곤 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힘든 대장장이의 길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죠. 그런데 아들과 같이 일을 하니까 마음도 잘맞고 큰 힘이 되더라구요. 같이 일하고 싶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아들이 ‘아버지 제가 할게요’라고 말해줘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아버지와 함께 한 아들 상범씨도 이제는 20년의 경력을 가진 어엿한 대장장이로 성장했다.



▶손님이 있어야 대장간도 있다

워낙 부실한 물건이 많았던 시절, 어떻게든 튼튼한 물건을 사기 위해 손님들은 돌맹이로 물건을 내리치곤 했다. 좋은 물건임을 인증하는 하나의 통과 의례같은 것이었다.

이제는 불광대장간의 물건에 더이상 돌맹이 질을 하는 손님은 없다. 그만큼 물건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따로 광고 같은건 하지 않는다. 손님들이 사서 직접 써보고 지인들에게 소개하거나, 소문을 듣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열심히 일하는게 우리 대장간의 자랑이죠. 다른데처럼 며칠씩 문을 닫은 적이 없어요.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 왔는데 가게 문이 닫혀 있으면 헛걸음 하는 거잖아요. 될 수 있으면 손님들을 위해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다.”

손님이 있어야 대장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박 씨 부자의 생각이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부단히 노력하며 손님들이 쉽게 쓸 수 있는 도구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특히 박 씨가 묵묵히 일을 하고 있을때면 아들 상범씨는 손님들에게 살갑게 다가가 어떤 물건이 쓰기에 좋은지 묻고 또 묻는다. 그리고 이러한 의견들을 반영해 매번 물건을 만들어 낼 때마다 ‘업그레이드’된 물건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일이 없는 것은 아닌데,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항상 고민하고 생각해요. 일이 없으면 앉아서 노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라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안팔리는데 왜 만드냐고 하더군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손님들이 사러왔을 때 물건이 있어야 사지요. 단 몇 개라도 새로운 물건을 준비해놔야 손님들이 자신에게 맞는 물건을 사갈 수 있어요.”

그런 이유로 불광대장간에는 손도끼, 칼, 호미, 낫부터 캠핑용 도끼, 망치 등 100여가지가 넘는 제품들이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불광대장간의 명성은 이미 업계에서는 유명하다.

21세기 첨단화의 바람에도 꿋꿋하게 그 명맥을 잇고 있는 대장간. 박 씨는 그런 대장간을 지켜나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바람이요? 이곳에서 가게를 오래 했으면 좋겠죠. 우리가 자리를 옮겨버리면 당연히 이곳에 가게 있을거라 생각하고 온 손님들에게 미안하잖아요. 손님들이 10년, 20년 뒤에 이곳을 찾아와도 똑같이 좋은 물건을 내놓고 반갑게 맞아줄 수 있는 대장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세월이 오래 지나도 이곳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여기서 일을 하고 싶네요.”

구민주기자/kmj@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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