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인천시 중구 북성동 쪽방촌에서 한 주민이 쌓인 연탄에 비가 맞지 않도록 비닐을 씌우고 있다. 윤상순기자/youn@joongboo.com



인천 동구 만석동에 위치한 쪽방촌은 30년째 시간이 멈춘 듯 도심 속의 외딴 섬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술래잡기를 하며 골목길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마저 1980년대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정겨웠다. 이곳 쪽방촌에는 현재 119가구가 살고 있다

날씨가 다소 풀린 24일 연탄을 갈러 나온 김춘희(80) 할머니는 홀로 지낸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도 안 난다며 취재진의 방문을 반겼다.

김 할머니는 “날씨가 추워 폐지 줍는 일도 요즘은 쉬고 있다”며 “나라에서 나오는 연금으로 입에 풀칠만 하는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동구청에서 지원해주는 연탄쿠폰과 자원봉사자들이 가져다 주는 김장 김치가 김 할머니의 생활을 유지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김 할머니는 “그래도 얼음장 같은 방이 아니고 굶지는 않아 다행”이라며 “하루하루 무사히 보낼 수 있다는 것도 고마울 뿐”이라고 웃었다.

그나마 만석동 쪽방촌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인천항 8부두 맞은편에 자리잡은 중구 북성동 쪽방촌은 29가구만이 거주하고 있는 데 지원도 열악한 실정이다.

북성동 쪽방촌에서 40년 넘게 살았다는 임옥연(69) 할머니는 그동안 쌓인 서러움을 한 번에 털어내듯 입을 열었다.

임 할머니는 “TV에서는 우리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주는 모습이 많이 나오던데 이곳과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며 “몇 년 전까지는 동에서 쌀도 나눠줬는 데 지금은 그것마저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구나 시에서 나줘주는 김장 김치도 우리집은 내가 가사활동이 가능하다며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다”며 “그나마 구에서 나눠준 500장 상당의 연탄쿠폰이 전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임 할머니는 3년 전 이웃에 살던 젊은 부부의 힘든 처지를 듣고 피 같은 돈 3천만원을 빌려줬다가 그대로 떼였다. 알고 보니 이 부부는 마을 노인들을 상대로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같은 수법으로 뜯어내 달아난 것이다.

이런 일을 겪고도 임 할머니는 “없어서 못 주지 내가 가진 게 있으면 남을 도우면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며 “윗분들도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한 번만 더 시선을 돌려줬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라고 말했다.

다행히도 이날 북성동 쪽방촌에는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인천연탄은행 자원봉사자들이 이곳 노인들에게 연탄을 전해주러 온 것이다. 기부금을 내고 구입한 연탄을 직접 나르러 온 자원봉사자 50여명은 연탄이 필요한 가정에 손수 연탄을 배달했다.

연탄을 건네받은 쪽방촌 노인들은 “고맙다, 정말 고맙다”며 자원봉사자들의 두 손을 움켜쥐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인천연탄은행 강용필(27) 간사는 “지난해와 비교해 기부금이 적어 더 많은 연탄을 드리지 못해 속상하다”며 “그래도 우리가 전해드리는 연탄 한 장이 추운 겨울을 맞은 노인분들께 작은 힘이라도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병돈기자/tamond@joongboo.com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