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을 뒤흔든 국내 인물]

  정계에서는 김무성 의원이 집권 새누리당의 새 대표로 선출되며 주목받았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박영선 의원이 헌정 사상 첫 교섭단체 여성 원내 대표로 선출되며 주목받았으나 중도에 퇴진하며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연말에는 '비선실세'의 국정 개입 의혹 속에 정윤회 씨가 뉴스의 핵으로 떠올랐다.

 사회적으로는 많은 이들에게 슬픔과 큰 상처를 남긴 세월호 참사로 안산 단원고에서만 학생과 교사 261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이 중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는 46일간 단식하며 세월호 사고의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은 변사체로 발견됐으며 이준석 세월호 선장은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탈출해 온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김수창 제주지검장은 공공장소에서 음란행위를 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고 '마왕' 신해철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와 같은 세대를 호흡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북한에서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체제의 핵심 실세로 급부상했고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유일한 여동생인 김여정은 노동당 부부장 직책을 맡으며 김정은 정권의 핵심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경제 부문에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실세 부총리' 평가 속에 '초이노믹스'를 펼쳤다.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과 박용학 전 대농그룹 회장이 별세했으며 배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빅딜'을 성사시키며 현업에 복귀했다.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을 주도해 시가총액 10조원 대의 IT 기업을 탄생시켰고 민원기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 의장은 부산에서 열린 ITU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한국인 1호 프리미어리거'였던 박지성은 25년의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으며 피겨스케이팅의 전설로 남을 김연아도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은반에 작별을 고했다.

 전지현과 김수현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 엄청난 돌풍을 불러일으켰으며 배우 김자옥은 암 투병 끝에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왼쪽부터 '비선실세' 의혹 정윤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

 ◇ 정치

 ▲ '비선실세' 의혹 정윤회 =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돼 갑오년 연말정국을 뒤흔들었다.

 유출된 청와대 내부 문건에 '문고리 권력'으로 지칭되는 청와대 비서관 3인방 등 이른바 '십상시'와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의 핵심 인물로 등장한 것.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을 유포했다거나 승마선수인 딸을 위해 승마협회 또는 문화관광체육부 인사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여러 의혹에 노출됐다.

 한때 박 대통령의 멘토로 불렸던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였다. 1998년 박 대통령이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출마할 당시 인연을 맺은 뒤 2007년까지 10년간 박 대통령의 입법조사관과 비서실장 등을 지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같은 이력 때문에 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에도 '비선 실세', '숨은 실세'라는이름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 새누리당 7·14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맏형인 최다선(7선) 서청원 의원을 꺾고 당당히 원내 과반정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원조 친박(친박근혜)으로 출발했으나 박근혜 대통령과 애증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큰 틀의 당내 역학관계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당권을 거머쥐었다.

 '보수혁신의 아이콘'을 자처하며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공천혁명을 주도 중이다. 잠재적 대권 경쟁자이기도 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혁신위원장으로 영입해 이른바 '문무 합작 혁신'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10월 중국 출장에서 "정기국회를 넘기면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듯 나올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블랙홀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발언을 해 파문을일으키기도 했다. 발빠른 사과로 사태를 수습했으나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정권 차원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공무원 연금 개혁안의 연내 처리 드라이브에총대를 메기도 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 =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하며 헌정 사상 첫 여성 교섭단체 원내대표에 올라 유리천장을 깼다.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을 성사시켜 상시 대화채널을 가동했고, 7월 초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회동하는 등 순항했다.

  그러나 7·30 재·보궐 선거 참패 후 구성된 비상대책위의 위원장을 수락한 게독배가 됐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의 합의안이 연거푸 거부당하며 정치 일생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런 와중에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으로 활동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던 계획마저 당내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면서 자진 탈당론까지 나돌 정도로 혹독한 정치시련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원내대표직에 복귀하고서 세월호 특별법 최종 타결 뒤인 10월 2일 약 5개월 만에 원내대표직을 내려놨다. 국회 법사위원장에 이어 원내사령탑에 화려하게 취임했다가 임기 도중 불명예 퇴진하는 극심한 롤러코스터를 탔던 올해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꼽힌다.

   
▲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왼쪽),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 북한

 ▲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 '군부 1인자'인 총정치국장에 이어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직까지 꿰차며 김정은 정권의 핵심 실세로 급부상했다.

 지난 3월 노동당의 핵심인 조직지도부 부부장에서 제1부부장으로 승진해 대장 계급장을 달더니 한 달도 안된 4월 말에는 차수로 아예 직업군인이 됐다. 최룡해 후임으로 군 조직문제와 인사 등을 총괄하는 총정치국장에 오른 것이다. 지난 9월에는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

 특히 지난 10월 최룡해·김양건 당비서와 함께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남한을 전격 방문, 남측 고위 당국자들을 두루 만나 주목을 받았다.

 올해 65세로, 1980년대 군 총정치국에서 잠시 근무하다 1990년대 당 조직지도부로 자리를 옮긴 뒤 줄곧 군사부문을 관장했다.

 2010년 9월 김정은 후계체제 공식 출범부터 중장, 이듬해 상장 계급장을 달며 진급을 이어갔고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신분으로 김정은의 시찰을 밀착 수행, 최측근으로 급부상했다.

 ▲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 김정은의 유일한 여동생으로 올해 권력 무대에 공식등장했다. 이른바 '백두혈통' 첫 번째 공주인 김경희가 남편 장성택의 숙청으로 '정치적 식물인간'이 되면서 생긴 공백을 메우며 김정은 정권의 핵심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북한 매체에 간간이 얼굴만 비칠 뿐 이름을 올리지 않았으나 지난 3월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 때 투표소에 나온 김정은의 수행원으로 처음 공식 매체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모란봉악단 공연 관람,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대회 등에 이어 군 산하 수산물공장 같은 생산현장 시찰에도 김정은과 동행하며 활동의 폭을 넓혀갔다.

 특히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1월 김정은의 소식을 전하며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으로만 호명하던 김여정을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호명함으로써 처음으로 직급을 공개했다.

 김여정은 노동당 선전선동부나 김 제1위원장의 비서실장격인 서기실장 역할을 하고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 위 왼쪽부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권오준 포스코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아래 왼쪽부터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박용학 전 대농그룹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신헌 전 롯데쇼핑 대표,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

 ◇ 경제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지난 6월 단행된 박근혜 정부 제2기 내각의 핵심 인사다. 박 대통령의 의중과 정치철학을 잘 아는 친박(친박근혜) 최측근 인사이기 때문에 임명 당시부터 '실세 부총리'로 불려왔다.

 강력한 거시정책 드라이브로 '초이노믹스'라는 용어도 탄생했으며 확장적 재정정책 등을 통해 경기활성화와 민생 안정, 경제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

 내수진작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하는등 부동산 시장 살리기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2015년도 예산안도 법정 시한 내에 처리됐고, 예산 부수법안들도 대부분 정부안대로 통과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대외 경제 여건이 불리한 가운데 부동산 정책의 약효도 떨어지고 각종 경제 지표들도 뒷걸음질치는 등 녹록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초이노믹스'의 성패는 내년에 갈릴 전망이다. 최 부총리는 근본적인 구조개혁과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기돌파의 해결사로 삼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2012년 개정된 한국은행법에 따라 한은 총재로는 처음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2014년 4월 취임했다.

 한은 총재는 4년간의 임기가 보장된 자리인 만큼 2018년 3월 박근혜 대통령과 거의 동시에 임기를 끝낸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인사청문회 당일 여야 합의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할 만큼 평가도 좋았다.

 1977년 한은에 입행해 조사국장·정책기획국장을 거쳐 2007년 통화신용정책 부총재보, 2009∼2012년 부총재를 역임하는 등 35년여간 한은에서 근무한 통화정책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평가는 엇갈리기 시작했다.

 이 총재는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을 산 김중수 전 총재를 염두에 둔 듯 "6개월 후 금리를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면 2∼3개월 전엔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말했으나 취임 초 이런 발언은 금리 인하 과정에서 공염불에 그쳤기 때문이다.

 ▲ 권오준 포스코 회장 = '철강명가 복원'을 기치로 내걸고 지난 3월14일 재계 6위의 거대 철강그룹인 포스코 회장에 취임했다.

 취임 일성으로 '포스코 더 그레이트'(위대한 포스코)라는 새로운 비전과 함께 경영쇄신 전략인 '혁신 포스코 1.0'을 제시했다.

 이는 기존의 방만한 사업을 정리하고 철강업체로서의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기위한 과단성 있는 사업구조조정으로 현실화됐다.

 출범한 지 채 1년이 안 된 권오준호(號)를 제대로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예상보다 빠른 실적과 재무구조 개선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경북 영주 출신으로 서울대 금속공학과와 미국 피츠버그대(공학박사)를 졸업한 뒤 1986년 포스코에 입사했다. 포스코의 유럽연합(EU) 사무소장, 기술연구소장,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원장을 거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기술부문장을 지냈다.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11월 말 '삼성 4개 계열사 인수 빅딜' 발표 후 현업으로 복귀하고 직무를 재개했다.

 배임 혐의로 2011년 1월 재판에 넘겨진 뒤 1심에서 징역 4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올해 2월 파기환송심에서 극적으로 집예유예를 선고받아 풀려났다.

 11월까지 서울 근교 장애인 재활시설에서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마치고 건강도 '대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태'로 회복하며 복귀를 준비했다.

 한화가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 등 4개 계열

사를 인수하는 '빅딜' 성사 발표가 현업 복귀 '신호탄'이 됐다.

 1970년 설립한 경인에너지를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현대오일뱅크에 매각했던 김 회장은 당시 "마취도 안 하고 수술하는 심정"이라고 밝힌 바 있어 삼성토탈 인수에 따른 정유업 재진출에 관심이 쏠려 있다.

 대표 이사직 복직은 법적인 제약이 있어 특별사면을 받거나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지난 10월23일 동부제철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자율협약에 들어간 동부제철은 채권단과 경영정상화 이행 약정을 체결한 뒤 구조조정 절차에 돌입했다. 김 회장은 보유 지분이 100대 1로 차등감자돼 경영권을 상실했다.

 이어 동부특수강도 11월 말 현대차그룹 컨소시엄에 매각돼 철강 사업에서 손을뗐다.

 1990년대 말부터 매년 수천억 원의 출혈을 감수하고 키워온 반도체 기업 동부하이텍을 매물로 내놔 현재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30대 재벌 중 보기 드문 창업 1세로 고려대 재학시절인 1969년 미륭건설(동부건설)을 세워 20대 중반 경영인의 길로 들어섰다.

 해외 건설 붐을 타고 동부고속을 만든 뒤 한국자동차보험(동부화재)을 인수해 그룹 외형을 키웠다. 이어 철강·전자·반도체에도 뛰어들었다.

 그러나 제조업에 투자된 막대한 재원이 유동성 위기를 촉발해 발목을 잡았다. 그나마 남은 제조부문과 금융계열사에는 오너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 '한국 섬유산업의 큰별'로 11월8일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한국전쟁 여파로 제대로 의복조차 입지 못하던 국민에게 따뜻한 옷을 입게 하리라는 신념으로 직물업에 뛰어들었다. 1957년 이원만 선대회장과 함께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창립해 우리나라 최초의 나일론사(絲)를 생산함으로써 섬유산업 역사에 획을 그었다.

 노사문제가 심각하던 1980∼1990년대 다들 꺼리던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14년간이나 지내며 노사 상생의 기틀을 세웠다. 한국 마라톤의 열성적 후원자로서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제패의 터전을 닦기도 했다.

 1947년부터 신은 가죽 슬리퍼를 50년간 신었는데 비서실에서 새것으로 바꿔놓자호통을 치고 쓰레기통에서 되찾아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0년 넘게 입은 맨스타 트렌치코트는 검소함의 상징이었다.

 "기업은 나 개인의 것이 아니다. 종업원의 삶의 터전이다. 기업의 부실은 사회에 대한 배신이며 배임이다"라던 1980년대 방송 강연도 오래도록 기억됐다.

 ▲ 박용학 전 대농그룹 회장 =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낸 '재계의 마당발'로 지난 8월2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강원 통천 출신으로 원산상고를 졸업한 뒤 기계회사와 비료회사 등을 잇달아 설립해 모은 돈으로 1955년 대한농산을 세웠다.

 이후 태평양방직, 금성방직, 한일제분, 미도파백화점 등을 사들이며 사업을 확장했고 1973년 ㈜대농을 설립하면서 사업체를 한 데 모아 그룹사로 키웠다. 대농그룹은 1990년대 재계 30위권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대농그룹의 재무구조는 과도한 차입을 동원한 사세 확장 과정에서 악화했고 그룹은 외환위기의 파도를 넘지 못한 채 1998년 해체됐다.

 1980∼1983년 한국섬유산업협회장을, 1991∼1994년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냈다.

 ▲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큰딸로 이륙 전 기내 견과류 서비스 때문에 비행기를 되돌린 초유의 '땅콩 리턴' 사건으로 쏟아지는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조 전 부사장은 뉴욕발 자사 항공편 1등석에 탑승했다가 승무원이 견과류(마카다미아)를 그릇에 담지 않고 봉지째 줬다는 이유로 승무원을 질책하고 서비스 책임자인 사무장이 관련 매뉴얼을 찾지 못한다며 비행기를 탑승게이트로 되돌려 사무장을 내리도록 했다.

 비인격적 월권행위를 저질렀다는 비판이 들끓었지만 조 전 부사장은 사과하지 않고 잘못을 사무장에게 떠넘긴 해명을 내놓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조 전 부사장은 결국 성난 여론과 검찰 수사에 떠밀려 대한항공 부사장과 계열사 대표이사 등 그룹 내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는 신세가 됐다.

 그는 땅콩을 소재로 한 숱한 조롱성 패러디물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번 일로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폭언 등 부적절한 언행도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대한항공은 막대한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

 ▲ 신헌 전 롯데쇼핑 대표 = 롯데홈쇼핑 대표이사 시절 저지른 납품비리로 올해구속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때문에 올해 유통업계에서는 남양유업 사태에 이어 홈쇼핑과 납품업체 사이의고질적인 '갑을관계' 논란이 이어지기도 했다.

 1979년 롯데쇼핑에 입사한 이후 마케팅부문과 상품본부 등에서 일해왔으며 2008∼2012년 롯데홈쇼핑 대표이사를 지낸 뒤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본부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기는 등 승승장구했다.

 검찰은 올해 초 롯데홈쇼핑의 전·현직 임원이 2008∼2012년 홈쇼핑 방송 등에 상품을 내보내 주는 대가로 납품업체에서 뒷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시작했다.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직후인 4월 사의를 표명했으며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와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재판에서 2007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홈쇼핑 론칭과 백화점 편의제공을 명목으로 벤처업체와 카탈로그 제작업체 등에서 1억6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배임수재)로 지난달 징역 2년과 추징금 8천800만원을 선고받았다.

 ▲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 = 항간에 떠돌던 '경품사기' 의혹과 고객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1991년 삼성물산에 입사한 뒤 줄곧 유통부문에서 일해왔으며 올해 경품행사 조작과 테스코의 홈플러스 매각 문제로 줄곧 이슈의 중심에 서 있었다.

 특히 7월에는 홈플러스가 경품행사 조작 논란에 휩싸이면서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발단은 경품행사를 담당하는 보험서비스팀 직원이 협력업체와 짜고 고가의 수입승용차 경품을 지인이 탈 수 있도록 한 일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최근 몇 년간 진행된 다수의 경품행사에서 당첨자들이 경품을 받지 못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은 홈플러스가 최근 약 5년간 경품행사에 응모한 고객의 개인정보 수십만 건을 시중 보험회사에 마케팅 용도로 불법 판매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로부터 소환 통보도 받았지만 경영 일정 등을 이유로 소환 일정을 연기한 뒤 12월 초까지 검찰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

   
▲ 왼쪽부터 민원기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 의장,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황창규 KT 회장

  ◇ 과학기술·IT

 ▲ 민원기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 의장 = 10월 20일부터 3주간 부산에서 열린 '정보통신기술(ICT) 올림픽' ITU 전권회의에서 의장을 맡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번 회의에서 한국은 7회 연속 이사국에 진출하고 '사물인터넷(IoT) 촉진'과 '커넥트(Connect) 2020' 등 우리나라가 주도한 의제들이 본회의 결의로 채택되는 성과를 냈다. 특히 ITU 5대 고위 선출직 중 하나인 표준화총국장 선거에서 이재섭 카이스트 IT융합연구소 연구위원이 당선되기도 했다.

 ITU 이사회 임시회에서 2015년 이사회 의장으로도 선출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ITU 전권회의에 이어 이사회까지 이끌게 됐다.

 행정고시(31회)로 공직에 입문해 정보통신부 통신업무과장·미래창조과학부 초대 대변인 등을 거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보통신서비스정책분과위원회 의장 등을 지내 앞으로도 IT관련 국제기구에서 맹활약이 기대되고 있다.

 ▲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 카카오 이사회 의장으로 있으면서 포털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IT벤처 1세대의 대표주자 중 한 명.

 지난 10월1일 합병법인인 다음카카오를 출범시켜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된 가운데 거대 포털 네이버에 대항할 수 있는 IT업체로 키우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통합법인의 최대 주주로 현재 1조7천억원 대 상장 주식을 지녀 재벌총수 보유주식 평가액 8위(재벌닷컴)에 올라 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 86학번으로 삼성SDS를 다니다 그만둔 뒤 1998년 게임업체 한게임을 창업했다. 2000년 네이버와 합병하면서 NHN 공동대표 자리를 맡게 됐으나 2007년 물러났다. 2010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출시해 '대박'을 쳤고, 이번 합병법인 출범을 통해 시가총액 10조원대의 IT기업을 탄생시켰다.

 ▲ 황창규 KT 회장 = 메모리반도체 집적도가 1년 만에 두 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을 주창한 반도체 전문가에서 올해 1월 국내 대표 통신기업인 KT의 회장으로 공식 취임해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방만 경영과 통신 수익성 악화로 내리막길을 걷던 KT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인적쇄신과 구조조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본부조직을 9개 부문으로 통폐합하고 전체 임원 수를 130여 명에서 100명 안팎으로 줄였다. 또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명예퇴직을 시행하고 자신을 포함해 전체 임원의 연봉을 삭감하는 비상경영 방안을 발표하는 등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

 KT 개혁은 바닥까지 떨어졌던 실적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는 '기가토피아'를 발판으로 글로벌 1등이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현재보다 최대 10배 빠른 기가인터넷 시대를 가장 먼저 열어 세계 유·무선 통신시장을 주도하겠다는 것으로 새해에 그 성과가 주목된다.

   
▲ 왼쪽부터 세월호 참사 유가족 '유민아빠' 김영오 씨, '난방열사' 배우 김부선 씨,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세월호 희생 단원고 학생과 교사 261명, 이준석 세월호 선장

 ◇ 사회

 ▲ 세월호 참사 유가족 '유민아빠' 김영오 씨 =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경기 안산 단원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로 46일간 단식하며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 촉구 활동을 벌였다.

 지난 7월 14일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진상 규명 촉구를 위해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 40일째인 8월22일 건강이 악화해 동대문구 시립 동부병원에 입원했으나 병원에서도 수액 주사 치료만 받고 6일간 더 식사를 거부했다.

 그는 "먹고 힘내서 싸워야지"라며 단식을 중단하고서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세월호 특별법 제정 운동을 이어갔다.

 한 달 넘게 단식하던 8월16일에 당시 방한 중이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식 집전 직전에 찾아와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11월에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부실한 대응과 유족들의 진상 규명 촉구 활동,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책 '못난 아빠'를 출간했다.

 ▲ '난방열사' 배우 김부선 씨 = 아파트 난방비 비리 의혹을 제기해 공동주택 관리비 투명화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형성시켰다.

 지난 9월12일 성동구의 한 아파트 반상회에서 난방비 문제로 한 주민과 서로 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사건 발생 초기 김씨가 주민을 일방적으로 때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씨가 주장한 '아파트 난방비 0원'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여론이 김 씨에게 우호적으로 변했다.

 2년 전 주민 300여 명이 서명한 진정서를 성동경찰서에 제출하며 아파트 난방비비리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아파트 난방비 비리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지난 10월2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 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 "11년을 관리비리, 난방비리에 뛰어들어보니 연예계를, 심지어 조국을 떠날 생각까지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동주택 관리비 문제 폭로를 계기로 반부패 운동단체인 한국투명성기구로부터 제14회 투명사회상을 받았다.

 ▲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 한밤중 성기를 노출한 채 인적 드문 제주시 거리를 배회하다가 경찰에 체포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8월13일 오전 1시께 제주시 중앙로 인근 한 음식점 앞에서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겼으나 이내 들통이 났다. 이후 서울고검 기자실을 직접 찾아와 음란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거짓 해명으로 드러났다.

 사표를 제출해 즉시 면직 처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음란행위를 한 인물이 본인이라는 CCTV 분석 결과가 나오자 그제야 혐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검찰시민위원회 결정에 따라 병원 치료를 전제로 기소를 유예했다.

 ▲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 세월호 참사로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으나 시신으로 발견됐다.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1961년 장인인 고(故) 권신찬 목사와 함께 대구지역에서 종교활동을 시작해 1981년 구원파를 설립했다.

 1976년에는 삼우트레이딩이라는 회사를 인수해 이를 기반으로 세모그룹을 설립,건강식품과 유람선 사업 등에 손을 뻗으면서 사세를 키워나갔다.

 1987년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이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자식과 측근들을 내세운 '그림자 경영'을 했다. 자신은 '아해'라는 이름으로 사진작가 활동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배자 신세가 됐다. 검찰이 밝혀낸 범죄 혐의 액수는 횡령 및 배임, 증여세 포탈로 총 1천450억원에 달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내부 조직도에 회장으로 명시됐으며 월 1천5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수배 중이던 6월12일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DNA검사를 통해 유씨로 확인됐다.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공소권 없음 처분했다.

 ▲ 세월호 희생 단원고 학생과 교사 261명 = 4월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해 탑승객 476명 중 295명이 희생되고 9명이 실종됐다.

 이 중 246명이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이었다. 인솔 교사 9명도 희생되면서 이 학교에서만 255명이 사망했다.

 학생 4명과 교사 2명은 일반 승객 3명과 함께 여전히 실종 상태다. 학생 75명과인솔교사 3명 등 78명은 구조됐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유족 측이 제공한 희생 학생 휴대전화에 녹화된 동영상을 보면 희생 학생들은 침몰 순간까지도 서로 의지하고 도왔다.

 정차웅 군은 사고 당시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친구에게 건넸으며 다른 친구들을 구하러 가다가 결국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덕하 군은 침착하게 사고사실을 가장 먼저 소방에 신고해 승객 174명이 구조될 수 있도록 도왔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 안전의식 제고와 사고 예방 및 대책 시스템을 재점검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 이준석 세월호 선장 = 올해 온 국민에 큰 공분을 일으킨 인물 중 한 명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속옷 차림으로 조타실에서 탈출하는 그의 모습은 구조를 기다리다가 허무하게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단원고 학생 등과 대비돼 분노를 자아냈다.

 승객들을 팽개치고 먼저 탈출한 그는 법정에서 "속옷 차림인 것도 모를 만큼 반쯤 정신이 나갔다"고 변명에만 급급했다.

 1972년께부터 선원 생활을 시작해 1985년 부산-제주를 운항하는 여객선 세모고속훼리1호를 시작으로 줄곧 선장으로 일해 왔다.

 검찰은 "승객들이 죽어도 어쩔 수 없다. 나부터 살고보자"는 내심이 작용했다며살인 혐의를 적용하고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살인을 무죄로 판단하며 이 선장에 대해 징역 36년을 선고했다. 

   
▲ 왼쪽부터 염수정 추기경, 김흥수 화백, 가수 신해철, '별에서 온 그대' 주연 전지현·김수현, 배우 김자옥

 ◇ 문화

 ▲ 염수정 추기경 = 2월 한국의 새 추기경으로 서임되면서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이 됐다.

 2012년 5월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국내 가톨릭의 최대 교구인 서울대교구장을 맡았으며 평양교구장 서리도 겸하고 있다.

 올해 71세로 80세 미만이기 때문에 교황 선종 또는 부재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갖게 된다.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에 교회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의 시국미사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현실 문제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사제의 몫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5월에는 북한의 개성공단을 방문하면서 우리나라 추기경으로서는 처음으로 방북했다.

 두 동생인 염수완·염수의 신부도 사제의 길을 선택하고 현재 서울대교구 내 본당에서 주임사제로 사목하고 있어 3형제 신부로도 널리 알려졌다.

 ▲ 김흥수 = '하모니즘' 창시자인 원로화가로 6월9일 95세를 일기로 노환으로 별세했다.

 여성의 누드와 기하학적 도형으로 된 추상화를 대비시켜 그리는 등 이질적 요소를 조화롭게 꾸며 예술성을 끌어내는 독특한 조형주의 화풍을 만들었다.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후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장과 서울대 미술대학 강사를 역임했다.

 1955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누드를 주요한 소재이자 주제로 삼았다.

귀국해서는 추상과 구상의 조화를 꾀하는 하모니즘으로 주목을 받았다.

 생전에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울려 완전을 이룩하듯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두 작품세계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용해된 조화를 이룩할 때 조형의 영역을 넘는 오묘한조형의 예술 세계를 전개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었으며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고 작품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 신해철 = 장 협착 수술 뒤 심정지로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지 5일 만인 10월27일 세상을 떠났다. 46세라는 이른 나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빈소에는 동료 가수는 물론 팬들까지 1만6천명이 조문했고 특히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3040 세대는 큰 상실감을 나타냈다.

 10월31일 장례식 도중 화장 절차를 중단하고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이 진행됐다.

 그의 죽음은 유족과 병원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의료 사고 분쟁으로 이어져 의료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무한궤도로 대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솔로가수와 밴드넥스트로 활동하며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도시인' 등 수십 곡의 히트곡을 내 199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했다.

 사회성 짙은 가사로 의식 있는 뮤지션이란 찬사와 함께 '마왕'이란 별칭으로 불렸다.

 날카로운 입담의 '논객'으로 사회적인 영향력까지 지닌 대표적인 소셜테이너였다.

 ▲ 전지현·김수현('별에서 온 그대') = SBS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 초대박을 치면서 올 한해는 온통 '별그대' 열풍이었다.

 주인공을 맡은 전지현(천송이 역)과 김수현(도민준 역)의 인기가 폭발한 것은 물론이고, '별그대'의 인기를 타고 중국 대륙과 중화권에서 한류 붐이 다시 한번 활활 타오르게 됐다.

 중국 동영상 사이트에서 '별그대'를 본 누적 조회수가 40억 뷰에 육박하고 '별그대'의 후광을 입어 한국 드라마들의 중국 내 몸값이 급등했다. 전지현이 극중 즐겨먹은 '치맥'도 중국에서 광풍이 불었다.

 극중 전지현이 걸치고 나온 모든 것이 한국과 중국 모두에서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러자 중국의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에서 "왜 중국은 별그대 같은 작품을 못 만드나"가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급기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시 주석이 젊은 시절 도민준과 똑같았다"라는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 김자옥 = 젊은 시절에는 청순미로, 중년에는 '만년 소녀' 이미지로 사랑받은배우로 암 투병을 하다 11월16일 63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1970년 MBC 공채 2기 탤런트로 연기생활을 본격 시작해 비련미, 청순미로 데뷔와 동시에 드라마와 영화계에서 맹활약하며 인기를 얻었다. 데뷔작 격인 드라마 '심청전'으로 대박을 친 이후 '보통여자' 'O양의 아파트' 등 영화와 '모래 위의 욕망' '배반의 장미' '은빛 여울' 등의 드라마를 통해 1970~80년대를 풍미했다.

 예쁘고 귀여운 이미지로 '공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으며 가수 태진아의 권유로 40대 중반인 1996년 '공주는 외로워'라는 음반을 내고 가수 활동도 했다. 이때 코믹하고 귀여운 '공주' 이미지로 변신에 성공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 박지성 선수(왼쪽), 김연아 선수.

 ◇ 스포츠

 ▲ 박지성 = 25년의 선수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5월14일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1년 교토 퍼플상가(일본)에서 프로로 데뷔했으며 에인트호번(네덜란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잉글랜드)-퀸즈파크 레인저스(잉글랜드)를 거치면서 차범근 이후 유럽 무대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축구 선수'로 평가받았다.

 2005년 맨유에 입단해 '한국인 1호 프리미어리거'로 이름을 올렸다. 성실함과 뛰어난 활동량으로 '세 개의 폐를 가진 사나이', '두개의 심장' 등으로 불리며 유럽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표팀에서는 2000년 A매치에 데뷔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에 힘을 보탰다. 2011 아시안컵 준결승전을 통해 A매치 100경기(13골)를 채운 뒤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태극마크 반납 뒤 퀸스파크 레인저스와 에인트호번에서 마지막 현역 생활을 이어가다 은퇴를 선택했다.

 맨유에서 205경기(27골)를 뛰었으며 10월 비유럽권 출신은 물론 아시아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맨유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 김연아 = 마지막 올림픽 무대와 함께 은반에 작별을 고했다.

 2월 21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에서 끝난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쇼트프로그램·프리스케이팅 합계 219.11점으로 은메달을 목에 건 것이 공식 대회에서의 마지막 연기였다.

 불모지이던 한국 피겨에 홀연히 등장해 세계 피겨의 역사를 새로 썼고, 한국 스포츠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역대 최고점(228.56점)으로 한국 피겨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것이 대표적이다.

 또 피겨 붐을 불러와 '김연아 키즈'라 불리는 유망주가 배출됐다.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광고·마케팅 시장에서 강력한 팬덤을 구축했다.

 부상과 싸우면서도 마지막으로 소치올림픽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논란의 여지가 많은 판정 속에 2위에 그쳐 2연패에 실패했다.

 5월 은퇴식을 겸한 아이스쇼를 통해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자선 활동을 하면서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다음 꿈인 스포츠 행정가를 향해 걷고 있다. 연합

   
▲ (윗줄 왼쪽부터) 말랄라 유사프자이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이슬람국가'(IS)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스페인어권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두번째줄 왼쪽부터) 마윈 알리바바 그룹의 회장. 카일라시 사티아르티 아동인권 운동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신임 총리.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저우융캉 전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세번째줄 왼쪽부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알렉스 새먼드 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빌 더블라지 미국 뉴욕시장.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2014년을 뒤흔든 국제 인물]

 2014년 국제사회에서는 서방과 러시아의신냉전 구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득세에 따른 갈등이 이어지면서 관련 인물들이 주목받았다.

 아시아와 유럽, 남미 등에서 대통령 선거나 총선 등으로 정권을 잡은 지도자, 새로 부상한 금융·경제계 인사들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렸다.

 무장단체 탈레반의 총격을 받고 죽을 고비를 넘긴 파키스탄의 17세 소녀 말랄라유사프자이는 아동과 여성의 인권 보호 및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운 공로로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문화계에서는 스페인어권 문학의 거장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타계했다.

 

 ▲ 말랄라 유사프자이 = '탈레반 피격소녀'로 널리 알려진 올해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

 파키스탄 출신으로 올해 17세인 그는 노벨평화상은 물론 노벨상 전 부문을 통틀어 역대 최연소 수상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11세 때부터 영국 BBC 방송 블로그에 올린 일기를 통해 여학생의 등교를 금지하고 여학교를 불태운 파키스탄탈레반(TTP)의 만행을 고발하다 2002년 10월 하굣길에 탈레반 무장대원이 쏜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는 테러를 당했다.

 영국으로 옮겨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계속되는 탈레반의 살해 위협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부르짖었다.

 지난해 7월 유엔 총회장에서 세계 지도자들에게 어린이 무상교육 지원을 요청했으며 올해 7월에는 나이지리아를 방문해 극단 이슬람 단체 보코하람에 납치된 200여명의 나이지리아 여학생의 무사귀환을 호소했다.

 그는 12월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해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며 "파키스탄이 선진국이 되고 모든 아이가 교육을 받게 되는 목표를 실현할 최선의 방법이 정치이고 총리가 되는 것이라면 틀림없이 그 길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지도자. IS가 6월 29일 칼리파제 국가를 선포하면서 초대 칼리파를 자칭했다.

 IS가 올해 초부터 급부상해 이라크와 시리아의 상당 부분을 장악해 중동 지도를새로 쓰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1971년 이라크 사마라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를 이끌다가 알카에다와 결별하고 지난해 4월 IS의 전신인 ISIL(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을 수립했다.

 2004년 4월부터 12월까지 이라크 남부 부카 수용소에 수감됐다 석방된 뒤 본격적으로 테러 조직 결성에 나섰다.

 11월 8일 미군의 공습으로 중상을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군과 이라크군의 반격에도 건재함을 과시하며 북아프리카 지역의 테러단체들의 그에 대한 충성맹세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2011년 10월 바그다드를 특별지정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리면서 현상금 1천만 달러를 걸었다.

 ▲ 블라디미르 푸틴 = 우크라이나 크림을 합병하며 서방과 대립한 러시아 대통령. 올 한해 푸틴 대통령의 이름이 많은 국제 뉴스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2월 소치 동계 올림픽으로 러시아의 부상을 세계에 과시한 푸틴 대통령은 3월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을 전격 병합해 냉전 이후 정착된 서방 주도의 국제질서에도전장을 던졌다.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지원을 계속하며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잇단 경제 제재와 압박에 서방에 맞서고 있다.

 러시아 국민은 푸틴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달 1일 여론조사에서 예상대표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할지를 묻는 말에 82%가 푸틴을 꼽았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푸틴을 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선정했다. 포브스는 "아무도 푸틴을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아무도 그를 약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 재닛 옐런 = 2월 취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수장.

 2010년부터 연준 부의장을 맡았던 옐런 의장은 8년간 재임한 벤 버냉키 의장의 후임으로 지명돼 상원 인준을 통과했다.

 버냉키 전 의장과 함께 연준 내 대표적 '비둘기파'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리세션(경기후퇴) 국면에서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양적완화(QE) 시행, 초저금리 유지 등 경기부양 정책을 이끌었다.

 또 지난해 12월부터는 회복 국면에 접어든 미국 경기를 고려해 채권 매입 규모를 점차 축소하는 테이퍼링에 착수한 데 이어 올해 10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QE 정책의 종료를 선언했다.

 옐런 의장의 새해 최대 과제는 미국 및 글로벌 금융 시장에 줄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6년간 제로(0) 수준으로 유지했던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콜롬비아 출신 스페인어권 문학의 거장. 4월 17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외곽의 자택에서 87세로 타계했다.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은 세계 35개국 언어로번역돼 5천만 부가 팔렸다.

 마르케스는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겪은 역사의 리얼리티와 토착신화의 상상력을 결합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소설 미학을 창시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가보'(Gabo)라는 애칭을 가진 그는 쿠바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며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도 절친한 사이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마르케스가 선견지명이 뛰어났던 작가라며 세대를 넘어 계속 작품이 읽힐 것이라고 평가하는 등 세계적으로 추모가 이어졌다.

 유해는 오랫동안 망명 생활을 한 멕시코와 고국 콜롬비아에 분산돼 안치됐다.

 ▲ 아리엘 샤론 = 2006년 재선 유세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간 혼수상태에서 투병하다 1월 11일 텔아비브 인근의 시바 메디컬센터에서 85세로 타계한 전 이스라엘 총리.

 군 출신의 대표적인 우파 정치 거물로 2001~2006년 총리로 재임하는 등 수십 년간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로 활약했다.

 특히 이스라엘 건국 후 팔레스타인과 투쟁 과정을 이끌어온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강경한 태도로 유명하다.

 1967년 '6일 전쟁',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등에서 공로를 세웠으며 1982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대원을 겨냥한 레바논 침공도 진두지휘했다.

 레바논 침공 당시 2천여 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살해당한 데는 샤론이 간접적 책임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국방장관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소속 리쿠드당의 반대로 무산되긴 했지만 야세르 아라파트 당시 PLO 의장과 폭력 중단 및 평화협상 재개에 합의하고, 2005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철수'를 주도하기도 했다.

 ▲ 팀 쿡 = 애플의 시가 총액을 세계 기업 역사상 최고로 끌어올리고, 동성애자임을 고백한 애플 최고경영자(CEO).

 그는 10월 30일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에 실은 기고문에서 "애플의 CEO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리면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는 사람이나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일반에 공개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등 실리콘밸리의 거물 기업가들은 이에 대해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 줬다"며 높이 평가했다.

 쿡은 또 애플 시가총액을 세계 기업 역사상 최고로 끌어올렸다. 2013년 말 5천7억4천만 달러로 마감했던 애플 시가총액은 2014년 들어 급등을 거듭해 11월 25일 오전 9시 38분께 7천23억5천만 달러(780조 원)에 이르렀다.

 상장기업 시가총액이 장중 7천억 달러를 넘은 것은 세계 최초로, 팀 쿡이 CEO로취임한 2011년 8월의 2배다.

 ▲ 마윈(馬雲·잭 마) =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그룹의 회장.

 올해 9월 알리바바가 뉴욕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면서 개인 자산이 195억달러(약 20조 4천700억원)로 껑충 뛰어 중국 1위 부자가 됐다. 12월 블룸버그 통신이 집계한 부호 순위에서는 홍콩 부호 리카싱을 제치고 아시아 최고 부자에 올랐다.

 그는 1999년 3월 아내, 친구들과 중국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시의 한 아파트에서 알리바바를 만든 뒤 15년 만에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키우는 성공신화를 썼다.

 마윈 회장은 11월 미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최고 부자가 돼도 행복하지 않다"며 사람들의 기대와 미래에 대한 압박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또 같은달 세계인터넷대회에서는 "10년 후 중국이 직면할 최대문제는 건강과 행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카일라시 사티아르티 = 인도의 아동인권 운동가. '탈레반 피격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와 함께 올해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는 1980년 노동 관련 잡지사에 일하면서 아동권리 운동에 투신했으며 1983년 '바차판 바차오 안돌란'(Bachpan Bachao Andolan·아이들을 구하자)이라는 단체를 설립해 지금까지 8만 명 이상의 어린이를 강제 노동에서 벗어나게하고 교육과 자활 기회를 줬다.

 1998년 103개국 720만 명, 1만 개 단체가 참여하는 '아동 노동에 반대하는 세계인 행진'(GMACL)을 조직해 각국 정부에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아동 노동 관행을 막아 달라고 요구했으며 아동 노동 없이 만들어진 카펫과 깔개를 인증하는 '러그마크'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1995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 2002년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월런버그 메달 등을 수상했다.

 ▲ 나렌드라 모디 = 올해 5월 취임한 인도 신임 총리. 힌두민족주의 정당인 인도국민당(BJP) 소속으로 지난 10년간 집권한 국민회의당(INC)을 상대로 총선 승리를이끌었다.

 취임 이후 제조업 활성화를 위한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환경 개선을 위한 '클린 인디아'(Clean India) 등 여러 개혁 정책을 발표하며 인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또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잇따라 정상회담을 하며 각국의 투자·협력 약속을 받았다.

 구자라트 주에서 하위 카스트(계급)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린 시절 직접 차를 팔기도 한 그는 21세 때 힌두민족주의 단체인 민족봉사단(RSS) 상근 운동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2001년 구자라트 주총리에 올라 13년간 재직했으며 2002년 주 내에서 발생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 유혈충돌 때 힌두교도 편에서 서서 사태를 방관했다는 의혹으로 수년간 미국과 유럽을 입국하지 못했다.

 ▲ 압델 파타 엘시시 = 지난 6월 치러진 이집트 대선에서 95% 득표율로 승리해 집권한 이집트 대통령.

 국방장관이던 지난해 7월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축출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급부상했다. 1952년 파루크 왕정 붕괴 뒤 60여년간 이집트 핵심 권력을 쥐어온군부의 최고 실력자이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집권 당시 최연소로 국방부 정보국장에 올랐다. 2011년초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무바라크 정권이 갑자기 붕괴해 군 수뇌부 20여명이 군최고위원회(SCAF)를 구성했을 때도 최연소 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군인 출신인 엘시시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집트가 '아랍의 봄' 이후 3년 만에 다시 군부 정권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 저우융캉(周永康) = 시진핑(習近平) 체제에서 몰락한 중국 '사법·공안의 차르'이자 '석유황제'로 불리는 전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중국 정부는 올해 7월 처음으로 저우융캉에 대한 조사를 공식화했다. 12월 열린정치국 회의에서는 '거액의 뇌물수수', '기밀유출', '간통' 등의 혐의를 적용하며 당적을 박탈했다.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이상의 인물이 비리로 처벌받는 것은 처음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정권에서 공안, 검찰, 법원, 무장경찰, 국가안전부 등을 총괄하는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를 맡았던 그는 정치·경제 전반에 '쓰촨방(四川幇)'과 '석유방'(石油幇)이라는 양대 지지세력을 구축했다.

 일각에서는 저우융캉이 과거 시진핑을 살해하려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고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등 일부 국가지도자가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는 관측도제기돼 내년에도 중국의 최대 정치 사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에보 모랄레스 = 좌파 정당인 사회주의운동(MAS) 소속으로 10월 12일 대선에서 61% 넘는 득표율로 3선에 성공한 볼리비아 대통령.

 모랄레스는 2005년 대선에서 승리해 처음 집권했고, 이번 대선 승리로 2020년까지 집권하게 된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의회선거에서 사회주의운동이 상·하원에서 3분의 2 이상의의석을 확보해 대통령 연임 제한 규정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개헌 추진도 가능해졌다. 개헌이 이뤄지면 모랄레스가 2019년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

 모랄레스는 강경 좌파로 분류되지만, 국부의 효율적인 관리와 소득 재분배 강화, 철저한 가격 관리 등 이른바 '책임 있는 포퓰리즘'으로 집권 기반을 다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 지우마 호세프 = 2010년에 이어 올해 10월 대선에서 승리해 재선된 브라질 대통령. 1차 투표를 거쳐 결선투표에서 중도우파 야당 후보의 거센 도전을 받았으나정치적 후견인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무난히 승리했다.

 노동자당(PT) 소속인 호세프는 올해 대선 승리로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 전 대통령(1995∼2002년 집권)과 룰라 전 대통령(2003∼2010년 집권)에 이어 브라질 사상 연임에 성공한 세 번째 대통령이 됐다.

 불가리아계 이민자 후손인 호세프는 군사독재정권 시절(1964∼1985년) 시절 반정부 무장투쟁 조직에서 활동했고, 1970년에 체포돼 3년간 수감돼 고문을 당하는 등고초를 겪었다.

 호세프 대통령은 내년 1월 1일 2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시장주의자들을 대거 각료로 기용하면서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약속했다.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 터키 사상 첫 직선제 대통령. 2003년부터 11년 동안 총리로 터키를 통치한 이후 8월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슬람에 뿌리를 둔 정의개발당을 창당해 2002년 총선부터 모든 선거에서 승리하고 경제 치적 등에 따라 터키를 건국한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 이후 가장 성공한지도자가 됐다.

 이슬람 성향의 정책 강화로 건국이념인 세속주의를 약화시키고, 억압적 통치에 따라 '술탄', '독재자'란 비난도 받는다.

 지난 2월 아들과 거액의 비자금을 은폐하고 뇌물수수를 논의하는 전화 통화를 비롯해 부패와 언론탄압 등을 보여주는 감청 자료들이 폭로됐지만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대통령에 취임하고서는 대통령제로 전환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해 삼권 분립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입주한 새 대통령궁도 대지가 20만㎡에 방이 1천150개에 달해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다.

 ▲ 마테오 렌치 =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총리. 지난 1922년 당시 39세로 총리가 된 무솔리니와 비교할 때 같은 나이지만 2개월이 어리다. 올해 2월22일부터 총리직을 맡은 렌치 총리는 유럽연합(EU) 내 국가 정상 중에서도 가장 젊다.

 국제무대 경험은 물론 국회의원 등의 경력도 없이 피렌체 시장에서 곧바로 중앙무대에 진출했다. 청바지 차림에 경차를 모는 등 자유분방한 그는 시장 시절 TV에 출연해 정치권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SNS로 젊은 층과 대화를 하면서 전국적 인기를 얻었다. 당시 언론에서 얻은 별명은 '논객'(scrapper).

 그는 이를 바탕으로 2013년 12월 집권 민주당 당수에 선출됐고, 유럽 사회주의 운동의 사실상의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당면과제는 경기침체에 허덕이는 이탈리아의 재정 적자와 높은 실업률 해소이다. 부패한 중앙정치 구조 속에서 노동법과 선거법 개정 등 각종 개혁을 주도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상태이다.

 ▲ 조코 위도도 = 세계 최대 이슬람 인구 국가이자 세계 10번째 경제 대국인 인도네시아의 새 대통령. 올해 10월 취임했다.

 '조코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첫 직선제 정권교체를 기록했으며, 새 정치의 열망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는 1998년 수십 년간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독재를 종식하고 2004년 처음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된 이 나라에서 군부와 기성 정치권 출신이 아닌 첫 대통령이다.

 그는 독재 종식 이후에도 부정부패와 정치적 구태가 여전한 인도네시아에서 빈민으로 태어나 기업가로 자수성가했다.

 조코위는 2005년 중소도시 수라카르타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으며,2012년 수도 자카르타의 주지사로 선출되고 나서 일약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그는 개혁적 이미지로 '인도네시아의 오바마'로 불리며 현장밀착형, 소통형 지도자로 국민 화합과 경제성장, 개혁에 성공할지 주목받는다.

 ▲ 알렉스 새먼드 = 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영국 정부를 상대로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를 밀어붙여 스코틀랜드인의 독립 열망을 전 세계에 알렸다. 탁월한 승부사 기질로 독립 찬성여론을 44%나 결집해 영국 정부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독립투표 부결로 307년 만의 스코틀랜드 독립이 무산되자 퇴진을 선언하고 스코틀랜드 국민당 당수와 자치정부 수반 자리에서 물러났다. 19살에 정치에 입문해 40년간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그는 "투표에는 졌지만 행복하다"며 결과에 승복했다. 하지만, 중앙정부로부터 조세권과 예산권 확대를 보장받아 사실상의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도 받았다.

 소속당에서 2선으로 후퇴했지만 내년 5월 영국 의회 총선에 출마를 선언해 중앙정치 무대를 통한 재기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아슈라프 가니 = 아프가니스탄 신임 대통령. 올해 6월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재검표 사태 끝에 9월 취임, 13년 만에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이뤘다.

 이 과정에서 경쟁자였던 압둘라 압둘라 후보를 총리 격인 최고행정관(CEO)으로 두는 공동정부 구성안에 합의했다.

 취임 후 그는 전임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서명 거부로 답보 상태이던 미국과 양자안보협정(BSA)에 서명, 내년 이후에도 미군 등 나토 군이 아프간에 잔류해 아프간군 훈련과 대테러 지원업무를 할 수 있게 했다.

 그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인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세계은행에서 10년간 근무하며 러시아, 중국, 인도 등에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 국제관료 출신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주도의 아프간전으로 탈레반 정권이 축출된 뒤 귀국해 카르자이 정권에서 재무장관을 지냈으며 2006년 유엔 사무총장에도 도전했다.

 ▲ 빌 더블라지오 = 미국 뉴욕시장 자리를 20년 만에 민주당 소속으로 되찾아오며 지난 1월 취임했다.

 "연간 973달러의 세금은 스타벅스에서 매일 두유라테 한 잔을 마시는 것보다 적다"며 부자증세와 불평등 해소를 기치로 내걸고 시장에 취임해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 상원의원(여·매사추세츠)과 더불어 민주당은 물론 미국 진보 진영의 새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또 서민·빈곤층을 위한 공교육 체계를 무너뜨린다는 판단 아래 전임 시장과 뉴욕 주지사가 공을 들여온 차터스쿨(자립형 공립학교)과 뉴욕경찰의 잦은 불심검문에반대하는 등 차별화된 정책을 펴고 있다.

 아울러 "무단 횡단자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 아래 뉴욕시내의 차량 제한속도를 현행 30마일에서 25마일로 대폭 낮추는 등 눈길을 끄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 장-클로드 융커 = 11월 조제 마누엘 바호주에 이어 신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에 취임했다.

 19년간 룩셈부르크 총리를 지내고 지난해까지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협의체)의장직을 수행한 대표적인 EU 인사다.

 이 때문에 EU 집행위원장으로 적임자란 평가와 동시에 개혁성이 부족한 구시대적 인물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융커 지명에 반대표를 던졌다.

 특히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에서 반(反) EU를 주장하는 극우 정당들이 약진해 EU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이 무거운 상황이다.

 융커는 최근 룩셈부르크 총리 시절 다국적 기업의 탈세 스캔들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유럽의회에서 불신임 투표를 받았으나 부결되면서 위기에서 벗어났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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