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방치 돼 있던 폐가(廢家)가 ‘꿈과 희망이 가득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됐다.

유치한 노래가사 처럼 보일진 모르겠지만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고 범죄의 온상이 되었던 폐가가 마을주민, 장애우, 한 부모가정, 차상위계층 등 우리 사회에 소외된 이웃들이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도예공방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바로 수원 인계동에 위치한 ‘도예공동체 목요일(木窯日)’.

이곳은 예술을 통해 잠재된 재능을 개발하고, 여기서 탄생한 즐거운 에너지를 건강한 문화예술로 발전시키자는 꿈과 희망을 안고, 한데 모인 이들이 만든 공간이다.

나무와 가마를 뜻하는 ‘목요일’은 따뜻한 온기로 도자기를, 사람을 빚는다는 큰 뜻을 갖고 있다.

엄지영 대표는 ‘흙은 나무를 기르고 도예는 사람을 키운다’는 모토를 가지고 우리 사회의 어둡고, 차가운 곳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도예, 온기를 만들다.

왜 하필 폐가였을까. “수원은 재개발 사업으로 비어있는 집들이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사업이 지연되면서 공가는 늘어가고, 골목길의 담은 무너져 있고, 그로인해 우범화가 계속되고 있죠. 저희가 현재 있는 이곳도 원래는 이야기꽃이 피던 공동 우물가였다고 해요. 하지만 주택이 들어서고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빈집이 되면서 수년째 폐가로 방치돼 있었죠.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동네 사람들이 모이던 사랑방으로 다시 돌려놓고 싶었죠.”

   
 

그렇게 올해 3월부터 폐가를 도예공방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수년째 방치돼 있던 이곳은 폐기물이 마당 한 가득 쌓여 있었고, 지붕 자재들은 누수로 인해 모두 주저앉은 상태였다. 또 높게 쌓여있던 담은 무너져 내려 골목길을 뒤덮고 있었고, 낡은 철재 대문은 용접한 곳이 녹슬어 아슬아슬하게 붙어있었다.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재 구입은 직접 했어요. 회원 분들과 지원봉사자 분들이 힘을 합쳐 공사를 진행했죠. 또 수원시를 비롯해 여러 곳의 도움을 받아 폐기물을 처리하고, 공사에 부족한 비용을 도움 받았습니다. 물론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 예요. 외관은 갖춰졌지만 내부 전기와 수도, 화장실 같은 기본시설들은 만들지 못했죠. 갈 길이 멉니다.”

   
 

쳐다만 봐도 귀신소리가 들릴 것 같은 오싹한 폐가는 예술의 힘을 빌려 새로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무너져 가는 담장은 헐어버리고, 다 떨어진 대문도 철거했다. 방부목이 깔린 마당은 이제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조각공원’이 됐고, 쓰레기가 쌓여있는 집안은 도예를 배울 수 있는 ‘공방’,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사랑방’으로 재탄생됐다. 특히 이 대표의 센스가 발휘된 다락방은 ‘별다락’이라는 이름을 얻고 도예와 책읽기가 결합된 독서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손자와 단둘이 살고 있는 앞집 할머니께서 한밤중에는 손자가 아파도 무서워서 데리고 나올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이 공간이 생기니 이제는 든든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을 주민들도 사람냄새 나고 좋다며 기뻐하셨어요.”



#업사이클링(Upcycling)하다.

이쯤 되니 이 대표가 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 졌다.

“5년 전 오랜 친구가 어이없는 사고로 죽게 됐어요. 20여년전 군복무 도중 사고가 발생해 장애를 입은 친구였는데, 착용하고 있던 소변줄로 인한 염증이 문제가 돼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죠. 해병대에 자원입대할 정도로 건강한 친구였는데 하루아침에 장애를 입게 된 모습을 보면서 장애를 가진 분들의 고충을 잘 알게 됐어요. 그래서 장애우를 위한 활동들을 해오다 친구가 갑작스런 죽음을 겪게 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거죠.”

그렇게 서울산업대 도예과를 졸업하고, 파주 옹기박물관, 서울 광주요 등에서 근무하던 이력을 접고 사회에 소외된 이들을 위한 활동에 전념, 각 기관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 하게 됐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일회성에 그쳤고, 프로그램이 사라지면 도움을 받던 이들이 또다시 갈 곳이 없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다.

   
 

“우리 사회는 장애우, 한 부모가정 등 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은 많아요. 하지만 프로그램만 많을 뿐이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나요. 그 분들은 다시 제자리죠.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그분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고, 성공적으로 자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서류상의 결과물들뿐이었어요. 특히 장애를 가진 분들은 여러 차례의 반복학습과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죠. 그만큼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한다는 소리예요. 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는 곳은, 할 수 있는 곳은 없었죠. 그래서 새로운 개념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대표는 이 공간을 통해 작게는 장소를, 크게는 제도를,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큰 틀을 ‘업사이클링’이라고 설명했다.

“업사이클링은 생활 속에서 버려지거나 쓸모없어진 것을 수선해 재사용하는 리사이클링의 개념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더해 전혀 다른 제품으로 다시 생산하는 것을 말합니다. 버려진 폐가를 작업공간과 사랑방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습자들이 또 다른 학습자를 가르치는 교육자로, 그러면서 기존 제도의 한계점을 극복하게 되는 것이죠.”



#도예, 사람을 키우다

현재 이곳에서는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가장 기본이 되는 프로그램은 도예다. 단순히 흙을 성형하는 것이 아닌 흙의 개념부터 성형, 물레, 회화, 조각, 투각까지 각 단계별로 체계화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줘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이 교육의 목적이자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되죠. 이들이 저의 교육을 받고 또 다른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죠.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일반인에게는 수업료를 받고 진행하죠. 그리고 그 수업료를 이용해 이곳의 살림에 쓰일 수 있게 보태고 있습니다.”

벌써 이곳에는 2기 교육생들이 들어왔다. 지난해 이곳이 생기기전 개인의 작업실에서 1기 교육생을 모집해 지도했고, 이제 이곳에서 1기 교육생들이 올해 들어온 2기 교육생의 지도를 책임지고 있다. 물론 전반적인 프로그램 계획과 운영은 이 대표와 전문적으로 미술은 전공하고 교육해온 회원들이 함께 한다.

   
 

“저와 함께 이곳을 이끌어 가는 회원들은 다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밟아온 분들 이예요. 전공분야별로 도예팀, 사진팀, 문학팀, 공예팀으로 나눠 각 분야를 담당하고 있죠. 그리고 모든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기획하고 있어요.”

이 대표가 이곳을 통해 결국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는 이곳의 앞날을 5년 정도 보고 있어요. 5년 안에 이 프로젝트를 정착시키고, 이곳이 그분들을 위한 새로운 터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만들 계획입니다. 그리고 최종목표는 마을기업이에요. 사회적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장애우분들이나 직업이 필요하신 분들이 제품을 만들어 유통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몇 만원에 팔고 하는 개념은 아니에요. 불쌍해서 사주는 물건이 아닌 정말 제품이 좋아서,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이 제가 이루고자 하는 최종 꿈 입니다.”

송시연기자/shn8691@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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