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엔 품격이 없습니다. 그건 하인 문화일 뿐입니다.”

대한민국의 품격이 어떻냐는 질문에 동문선 출판사의 대표이자 ‘품격경영’의 저자 신성대(61) 대표에게 돌아온 대답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품격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품질경영’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 1만 불까지 가능합니다. 2만 불은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3만 불은 ‘에티켓’, 4만 불은 ‘매너’, 5만 불 이상은 ‘품격’ 없인 절대 넘볼 수 없습니다.”

그는 지난해 우리 사회를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한 수 많은 사건·사고가 바로 ‘품격’의 부재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올해가 대한민국의 도약과 추락의 갈림길에 있다고 단언했다.

“후진국 시절에는 ‘체력이 국력’이었지만 지금은 ‘품격이 국력’입니다. 품격운동으로 체질개선을 하지 않으면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백년하청(百年河淸)이겠거니 하고 외면하면 역사의 비정함에 또다시 피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오직 이 길뿐입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그가 이렇게까지 품격을 강조하는 이유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시간30분여분의 인터뷰 끝에 알게 됐다. 품격이 국력인 이유를.

 

-저서 품격경영을 집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30년 동안 약 700여종의 인문 예술분야 책을 펴냈지만 점점 타락해져가는 우리의 정신문화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5년전 어떤 친구가 와인 모임에서 글로벌 매너에 대한 얘기를 해준 것이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한 계기가 됐습니다. 그 뒤로 그 친구 함께 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 공동대표를 맡아 본격적으로 글로벌 매너 전도사로서 글쓰기에 나서게 됐습니다. 24살 때부터 외항선 기관사로서 7년간 세계를 수차례 일주했었고, 출판업을 하면서 일본, 중국, 프랑스, 영국 등을 다녔지만, 글로벌 매너를 단 하나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은 물론 아예 인식조차 못했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못내 부끄럽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쳤는지를 생각하면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납니다. 왜 진즉에 이런 걸 몰랐으며, 왜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그 원인부터 하나씩 짚어나갔다. 그러자 다음 세대에게 이걸 알려줘야겠다는 의무감이 들게됐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않도록 말이다.”

-글로벌 매너란 무엇인가.

“우리가 한복을 아끼면서도 입지 않는 것처럼 지난날의 규범으로는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 당시에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었고 중국의 예법이 글로벌 주류였다. 해서 동방예의지국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매너지국이 돼야 선진주류사회로 편입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벌 매너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 골프, 와인, 오페라, 댄스 등등은 배운다고 난리다. 목적은 소통과 교감이다. 헌데 가장 중요한 소통도구인 매너는 왜 배우지 않는지 모르겠다. 유학을 가기 전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는 법부터 배웠어야지 영어를 아무리 잘 해도 매너가 없으면 그들과 밥 한 끼 같이 먹을 수가 없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제대로 노는 법부터 배우자는 거다.”

   
 

―그렇다면 왜 글로벌 매너가 중요한가.

“우리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을 명품이라 부르고 그걸 사기 위해 줄을 선다. 명품은 기술로만 못 만든다. 한국의 짝퉁은 진품에 못지않지만 결코 명품이 되지 못한다. 명품은 품격이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은 부(富)와 안락이 아니다. 기술도 아니다. 그렇다고 지하자원도 없다. 바로 매너다. 매너야말로 최고의 자원이다. 무형의 자원이자 무한한 자원이다. 유대인들이 땅을 가졌나. 그들이 물려준 건 탈무드의 지혜다. 그 지혜를 현실에서 구현해내는 도구가 바로 매너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신뢰를 자원화 한 나라가 바로 스위스다. 천년을 이어온 용병문화의 신의, 약속, 정확이 시계산업과 은행업의 원동력이다. 다른 선진국가들 역시 품격을 자원화하고 있다. 그리고 에티켓을 자원화해서 성공한 나라가 일본이다. 야만적인 민족이란 인식을 털어내고 물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서였다. 한데 우리는 어떻나.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만큼 정직하고, 깨끗하며, 친절하다고 인정받고 있나.”

-세월호 침몰 사고부터 수원 살인사건, 땅콩 리턴 사건, 청와대 문건 유출 등 여느 해보다 시끄러웠던 한 해였다.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디 그뿐인가. 전 국회의장부터 전 검찰총장, 현직 교수, 현직 장군까지 성추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평생을 바친 성공의 목적이 고작 제 ‘근본’을 과시하는 왕질이고 갑질이고 완장질이었단 말인가. 성공 자체가 목적이었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성공적인 삶인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때문에 성공한 그 순간부터 망가지기 시작한다. 꾹 참아왔던 천민 근성이 터져 나오는 거다. 흔히들 ‘드라마 같다’고 하지만 지금 이 나라는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혹 재벌 2, 3세들이 한국 막장드라마를 보고 경영수업을 받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자를 추행의 대상으로 여기는 권력자들, 직원을 부리는 대상으로 여기는 기업인들, 국민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보는 정치인들. 이들에게 품격이니 인간존엄이니 자기완성이니 하는 말이 가당키나 하겠나.”

-이런 사건들이 왜 일어났다고 생각하나.

“한 마디로 말하자면 ‘품격’이 없기 때문이다. 품격을 잃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지난해 8월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떠나기 전 ‘한국은 아직 품격을 잃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기실 그건 그만큼 우려스럽다는 완곡한 표현이자 당부의 말이었을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대가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사고 친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 동방무례지국이 돼 버렸다. 사실 지금의 대다수 한국인들은 고도성장의 엘리베이터에 편승해 쉽게 성공하고 출세한 덕분에 ‘어떻게 살 것이인가’에 대한 깊은 인간적 성찰 없이 그냥 떠밀려 막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품격은 염치에서 출발한다. 염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사회 최고의 방부제다. 작금의 한국 사회가 총체적으로 부패한 것도 바로 이 염치의 부재 때문이라 본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품격이란 무엇일까.

“꼭 1년 전, 2014년 1월2일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신년사에서 ‘품격’을 화두로 던졌다. 2대를 온전히 바쳐 기술 일등을 이룩하고서야 비로소 ‘일등’과 ‘일류’가 완전히 다름을 인식한 것이다. 하지만 그 3세들과 한국의 다른 기업인들이 과연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을까. 간단하게 삼성전자와 애플을 비교해보자. 갤럭시와 아이폰, 기술이나 디자인에선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한데 갤럭시의 이익률은 아이폰의 삼분의 일 수준이다. 이것이 바로 품격의 차이이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인 것이다. 이는 절대 삼성전자 혼자 힘만으로는 극복하지 못한다. 한국인 개개인이 고품격 매너로 무장해서 선진시민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제 아무리 뛰어난 기술의 부가가치도 품격의 그것에 비할 바는 못된다.”

-우리가 품격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나.

“한국은 지난날 후진국에서 개도국으로 넘어갈 때 치열한 체질개선작업을 했다. ‘국민교육헌장’과 ‘새마을운동’이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세끼 밥도 제대로 못 먹는 후진국이 얼마나 거창한 각오인가. 이것이 바로 ‘주인의식’이다. 한데 이후 개도국에서 중진국으로 넘어가는 시기 역시 그에 부응할 만한 보다 업그레이드된 체질개선작업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타락해 버렸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와 평등은 방종과 태만을 불러들여 헐뜯기와 떼쓰기로 세월만 낭비하다가 바야흐로 제풀에 고꾸라질 위기를 맞은 것이다. 품격은 곧 삶의 질이다. 지금 우리 문화에서 가장 부족한 영양소가 바로 이 품격이다. 갖추면 좋고 안 갖춰도 그만인 겉치레가 아니다. 주인의식을 기본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도 존중받아 인간 존엄성을 확보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품격을 지키는 길이다.”

 

-신성대 대표는?

▶도서출판 동문선(東文選) 대표 ▶(사)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 회장 ▶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 공동대표 ▶인사문화포럼 공동대표 ▶저서 ‘무덕(武德)-武의 문화, 武의 정신’ ‘품격경영(상·하)-상위 1%를 위한 글로벌 교섭문화백서’

송시연기자

사진=이정선기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