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의 지하 암반수와 특산품인 잣을 넣어 빚은 ‘가평잣막걸리’, 알콜 도수를 반으로 낮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미쓰리’, 탄산을 첨가해 청량감을 높인 ‘톡쏘는막걸리’. 모두 가평의 ㈜우리술에서 나오는 막걸리 제품이다. 우리술은 연매출 70억, 400만달러 수출, 업계 최초 ‘해썹(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 식품안전경영시스템부문 ‘국제표준 ISO22000 공인 인증’ 등을 달성한 굴지의 막걸리 기업이다. 지금의 우리술이 있기까지 뭣하나 쉬운 건 없었다. 박성기(48) 대표는 IMF때 퇴직의 쓴 맛을 봐야했다. 전 재산을 털어 부채 10억원을 안고 있던 지금의 막걸리 공장을 인수했지만, 월 2천만원의 적자는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포기’는 없었다. 퇴직을 했을 때로 새로운 것에 ‘도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 공장의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지만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지금의 우리술을 만들었다. 그는 만족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여전히 도전하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 마세요. 책임은 사장의 몫입니다.”

2000년 인수 당시 우리술은 부채 10억원의 막걸리 공장이었다. 공장설비들은 다 넘어가고 건물 한 채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상태였다.

“경매 나가기 직전에 부채 10억원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2억원을 주고 인수했습니다. 직원 몇명과 건물만 남아있는 상태였죠.”

2015년 현재는 연매출 70억원을 달성하는 중소기업으로 성장했고, 직원은 50여명으로 늘었다. 지난 2012년에는 25개국에 400만달러 수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바로 박 대표의 경영철학이 있었다. 우리술의 막걸리 제조공장 입구에는 대형 현수막이 한 장 걸려있다. 현수막에는 ‘실패를 두려워 마세요. 책임은 사장의 몫입니다’와 ‘역동적인 당신의 도전이 우리술의 자랑입니다’란 문구가 쓰여 있다. 그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 문구다.

“회사의 모토가 ‘세계 속의 우리술, 도전하는 우리술’입니다. 작은 회사에서 세계화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직원 모두가 목표의식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죠. 하지만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안정적으로 일 하길 원합니다. 또 실패했을 때 책임에 대한 부담으로 몸을 사리죠. 직원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수 있도록 업무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대표는 도전정신 다음으로 중요시하는 것이 바로 품질이다.

“좋은 원료를 쓰고, 정성들여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당시 막걸리는 ‘대충 만들어도 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것에서부터 탈피하는 것이 첫번째 목표였죠. 그리고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곡식, 과일, 약초를 불문하고 다양한 재료를 섞어 만드는 연구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당장에 팔고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닌 거시적으로 성공하는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5년부터 수출을 시작했다.

“각 나라의 특성에 맞는 막걸리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규격화하고 표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 25개국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에서 반응이 좋습니다.”

그는 여전히 연구하고 있다.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2013년 연구전담 부서를 ‘우리술연구소’로 확대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제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연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도와 연구 끝에 100여종의 막걸리를 생산했습니다. 현재는 40여종의 제품을 출시하고 있죠.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효모가 가라앉지 않는 막걸리, 묵직한 맛을 내는 막걸리, 해외과일을 첨가한 막걸리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 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한 쪽 문이 열립니다.”

연매출 70억원 기업의 대표가 되기까지 순탄한 길만을 걸어왔을까. 앞서 언급했다시피 박 대표는 부채 10억을 포함한 공장을 인수했다. 그것도 당시 사양 산업이었던 막걸리 제조 공장을. 실로 무모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IMF때 회사를 퇴직해야 했습니다. 말이 좋아 퇴직이지 거의 쫓겨나다시피 했죠. 대학 졸업 후 금융회사에 입사해 영업소장으로 올라가기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죠. 하지만 IMF때 사측에서 직원들의 임금을 반 가까이 삭감했습니다. 사측의 부당함에 맞서고자 노조위원장을 맡게 됐고, 결국 2년여의 사투 끝에 노조원 일부와 회사를 나오게 됐습니다.”

그도 IMF를 비껴가진 못했다. 퇴직금 한푼 받지 못한 빈털터리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좌절하지 않았다.

“한 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한 쪽 문이 열리게 돼 있습니다. 오히려 얽매일 수 있는 직장이 없다는 것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죠. 하지만 가진 돈이 없어 선택 할 수 있는 폭이 좁았습니다. 그래서 경매로 넘어가는 물건을 찾기시작했죠. 그러다 지금의 공장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처남,장인,형,동생 할 것 없이 온 가족들의 힘을 빌려 자금을 긁어모았다. 전세금까지 빼서 이 공장에 올인 했다. 그때부터 박 대표의 도전이 시작됐다.

“술에 관한 모든 책을 사 모았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있는 막걸리 공장으로 견학을 다녔죠. 하지만 그 당시 술에 대한 전문적인 책도 부족했을 뿐더러 공장에 견학을 가도 쉽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쌀을 고르는 것부터 불리고, 발효시키고, 폐수처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배우고 익혔죠.”

하지만 쉽지 않았다. 월 2천여만원의 적자는 기본이었다. 전세금까지 탈탈 털어 만든 공장이었기에 가족들 볼 낯은 없었다.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하더라도 시도를 하지않는 사람은 운도 따라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모든 노력을 100%보장 받진 못한다할지라도 최소한의 기회는 얻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운만 믿고 가지 않는 사람은 그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죠. 정말 끊임없이 도전하고,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막걸리는 명품입니다.”

그는 지금 누구보다 막걸리를 사랑한다. 지나칠 정도다.

“1970~80년대 막걸리가 우리나라 주류시장의 50~60%를 장악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00~2002년 3%까지 떨어졌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막걸리 사업에 신경 쓰지 않을 때 막걸리 자체에 대한 상품성을 믿었습니다. 막걸리는 바탕 자체가 좋은 술입니다. 몇천년 간 전해져내려 온 우리민족의 술임과 동시에 건강유지에 도움이 되는 유일한 술입니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막걸리 공장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막걸리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우리술이라는 기업의 대표를 떠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사)한국막걸리협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협회는 500여개 막걸리 양조장의 이익을 대변하고 막걸리 산업 전체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단순히 회원사의 이익을 떠나 막걸리 산업의 발전과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관련 연구기관과 단체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죠.”

또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막걸리의 날(매년 10월 마지막주 목요일)’에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재작년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건배 중계를, 지난해는 한중일에서 동시에 건배 중계를 했습니다. 올해는 6대륙에서 동시에 건배 중계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올해는 막걸리축제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독일의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에 견학을 다녀왔습니다. 우리는 흥이 있는 민족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큰 축제를 개최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막걸리의 기능성 입증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목표다.

“특히 막걸리의 피부개선 기능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막걸리에는 식이섬유와 유산균이 풍부하게 있어 대장운동을 활발하게 해줍니다. 결론적으로 장내 독소가 제거되기 때문에 피부가 개선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막걸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막걸리는 원가가 제일 비싼 술입니다. 또 ‘병행복발효’이라는 아주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만드는 술입니다. 전통성은 물론 만드는 과정에도 정성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명품이라는 거죠. 이런 막걸리의 우수성을 세계에 인정받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송시연기자

사진=이정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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