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일보-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공동기획/지역갈등, 나라 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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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발생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장에 주목한다. 즉, 한 쪽에서는 어떤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고, 다른 쪽에서는 그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KTX 광명역 안양권 택시승강장 설치와 관련해서도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이 쟁점에 대해 광명 쪽에서는 반대하는 입장이고, 안양 쪽에서는 찬성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흔히 ‘입장 차가 커서 갈등 해결이 어렵다’거나, ‘입장 차가 줄어들어서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인다’는 등의 표현은 입장에 주목하는 관점을 나타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간 갈등을 연구한 학자들은 ‘입장에 주목하면 갈등 해결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갈등 해결에 있어서 입장보다 더 주목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이해관심사’이다. 그리고, 이해관심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이해당사자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 갈등의 이해당사자로는 일단 ‘안양권 택시승강장’ 설치를 원하고 있는 안양 거주 KTX 이용자들이 있다. 이들은 KTX 광명역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갈 때마다 과다한 요금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가 안양시에 택시승강장을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또 다른 이해당사자로는 안양시의 택시기사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안양 주민들은 잠재적인 고객들인데, KTX 광명역이 안양시 경계에서 수 백 미터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다른 이해당사자로는 광명시의 택시기사들이 있다. 이들은 광명역에서 안양으로 가는 고객들이 줄어들어서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할 수도 있고, 자신들은 적절한 요금을 말해도 안양권 주민들이 비싸다고 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세 집단을 직접적 이해당사자로 보면, 간접적 이해당사자는 자치단체들인 안양시, 광명시, 그리고 경기도가 된다. 안양시는 주민들이 광명역에 안양권 택시승강장을 설치해 달라는 민원을 넣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해야 하는 이해관심사가 있는 것이고, 광명시는 이 시설이 설치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민원을 해결해야 한다. 또 경기도는 광역자치단체로서 산하 기초자치단체가 대립하고 있는 갈등상황을 현명하게 대응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 단국대 전형준 교수

이해관심사에 집중하는 접근법을 택할 경우, 안양 주민의 이해관심사는 ‘안양권 택시승강장의 설치’가 아니다. 그들의 이해관심사는 ‘광명역에서 안양의 집까지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요금으로 편안히 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들이 ‘안양권 택시승강장의 설치’를 주장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이해관심사를 충족하는 방법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안양권 택시승강장의 설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그 이해관심사를 충족시킬 수 없는지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안양 주민이 KTX 역에서 나와서 약 1km 정도 걸어가면 안양시 경계 내에 들어가고, 거기서 안양 택시를 타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편안히’ 가는 방법이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만약, 이 도보 거리를 편하게 가는 방법을 찾는다면 이해관심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KTX 광명역에서 안양시 경계까지 ‘움직이는 보도(moving walkway)’를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인 것이다.

실제로 국토해양부 종합교통정책과에서 2010년에 관계부처협의용으로 작성한 복합환승센터 설계 및 배치 기준(안)에 따르면, 열차, 항공기, 버스, 택시 등 교통수단 간의 원활한 연계교통 및 환승활동을 위해 복합환승센터를 만들 수 있고, 환승을 위해 움직이는 보도(무빙워크)도 설치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방법이 안양 주민들의 편의성을 제고하지만, 이 방법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또 다른 이해당사자인 안양시가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열린 공정거래위원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움직이는 보도 설치비용은 1기 당 1억 원에 달한다. 약 1km에 해당하는 거리에 부분적으로 설치하더라도 수십억원의 비용이 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운영비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고, 그동안의 물가 상승분까지 생각하면 비용은 훌쩍 뛸 것이다. 게다가 이 시설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교체 비용이 또 발생한다.

게다가 KTX 광명역을 이용하는 안양권 시민들의 수가 매우 많고, 이들이 택시를 이용하는 비율이 매우 높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수십억원을 상회한다면 이는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만약 KTX를 이용하는 안양권 시민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고, 그중 대다수는 자가용을 이용한다면 움직이는 보도의 설치는 사회적 낭비가 된다.

택시승강장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은 회차하는 안양권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현재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규칙 제10조(택시운송사업의 사업구역)에 따르면, 안양권에서 KTX 광명역까지 승객을 운송하는 것 뿐 아니라, KTX 광명역에서 안양권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승객을 태우고 안양권에서 내리는 경우에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방법은 택시가 빈차로 다녀야 되는 거리를 줄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승객들에게 편한” 방법이냐는 것이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안양권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승객들에게 불편한 일이고, 이는 안양권 주민들의 이해관심사에서 ‘편하게’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를 이렇게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면, “안양권 주민들이 KTX 광명역에서 내려 안양권 회차 택시를 타고 싶을 때 어디에서 얼마나 기다리면 탈 수 있을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로 볼 수 있다.

문제를 이렇게 다시 쓰면, 안양권 시민들에게 안양권 택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전화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되고, 스마트폰 용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으며, 요즘 기사화되는 카카오 택시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은 KTX 광명역에 내리는 안양권 주민들이 택시승강장 없이도 합리적 가격에 편하게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다른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도 이해관심사를 고려해 본다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해결책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정현·김한규기자/ljh@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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