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흉터를 남긴다. 신체를 다치면 다친 부위가 색소침착으로 피부색과 다른 붉은색이나 거뭇한 색으로 변한 것이 흉터다. 마음을 다쳐도 흉터는 남는다. 기존 성격이 포악과 배척으로 드러난다. 마음을 다친 아이들은 고슴도치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보호하기 위해 바깥으로 가시를 세운다. 이런 ‘고슴도치’들을 향해 아무런 대비도 없이 접근하다가는 날카로운 가시에 찔린다. 접근한 쪽도 상처를 입게되면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리고, 고슴도치들은 더욱 가시를 내보인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저마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만 존재하게 된다.

이 흉터를 없애는 것은 시간뿐이다. 흉터는 장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관리를 하면 그 시간을 앞당길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큰 상처는 흉터를 치유하기 어렵다. 시간으로도 안된다. 다만 더 많은 관리와 시간을 통해 조금이나마 흉터를 희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천 예수마을교회 명성진(47) 목사는 ‘기다림’이 중요하다 말한다. 자신들을 ‘쓰레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날 선 고슴도치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기다리고, 도와주고, 보듬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들

45평 남짓한 공간에서 시작한 교회에서 평범한 삶을 살던 명 목사의 인생을 180도 달라지게 한 사건은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여름 한 학생이 교회를 찾았다. 학생은 ‘갈 곳이 없으니 교회에서 지낼 수는 없냐’고 명 목사에게 부탁을 해왔다. 이후 명 목사는 학생이 집에 있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가출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주변에 이러한 친구들이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 곳을 찾은 아이들 대부분이 이혼이나 가정불화 등 가정이나 학교라는 제도의 틀 속에서 상처를 입었고, 그래서 집과 학교가 고통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해요.이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고 세상을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뿐이었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물어보려고 하면 아이들은 이를 거부하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까지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한번은 거리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트럭 밑에서 두 아이가 잠을 자고 있었다. 이들을 설득해 교회로 데리고 왔다. 밥을 먹이고, 몸을 씻기고, 옷을 입혔다. 며칠이 지난 후 아이와 함께 학교에 갔다. 학교는 냉담했다. 이들은 일명 ‘불량학생’이었다. 학교는 가출과 일탈이 반복된 아이들에게 이미 지쳐있었다. 상황이 이렇자 아이들은 예배당 한편에서 보금자리를 찾았다. 위기 청소년 공동체인 ‘세상을 품은 아이들’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고민이었다. 지난 2005년,명 목사가 만든 ‘세상을 품은 아이들’ 공동체는 위기 청소년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범생 청소년들이 대상이었다. 교육관에서 가출한 청소년들을 재우고, 또 그들이 친구들을 한두 명씩 데리고 왔다.모범생 아이들과 부모들은 1년이 지나자 교회를 모두 떠났다.

   
 

“가출 청소년들이 교회에 들어왔다가 떠나고, 또 들어오기를 반복했지요. 그러는 사이 암암리에 아이들 사이에 본드 흡입이 퍼지고 있었는데 그때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결국 교회는 본드중독 아이들로 채워졌습니다. 본드를 흡입하면 뇌가 단세포적으로 변합니다. 사칙연산도 못 하고, 기억력도 떨어지죠. 아이큐(IQ)가 65까지 떨어진 애도 있어요. 중독되면 시각·언어·운동 장애가 옵니다. 일진짱이었던 한 녀석이 하루는 얼굴이 괴물처럼 부어있었어요. ‘왜 그러느냐’ 물었더니 ‘자기 안에서 자기를 때리라고 했다’는 겁니다. 100대도 넘게 때렸대요. 정신분열 증세까지 일어난 거죠.”

2009년부터는 아예 이들을 통제하는 것도 버거웠다. 본드 한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랐다. 더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중독 치료와 관련된 서적·논문 등을 읽으며 연구하고, 상담 전문가를 만났다. 결론은 ‘중독은 중독으로 치료된다’는 것. 다른 것에 몰입되기 전에는 중독된 것을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음악으로 인생 목표

명 목사는 목회 전부터 오랫동안 해온 음악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음악학원에도 보냈고 ‘미러클 제너레이션’이라는 뜻을 담은 ‘MG밴드’도 만들었다. 알음알음 섭외한 기타리스트와 실용음악학원 원장, 성악가가 ‘밴드 마스터’가 됐다.

음악으로 이들은 그들을 데리고 두 번의 공연을 열었다. 어느새 이들은 지역의 유명 스타가 됐고, 이 세상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꿈을 키우고 있다. 예전에는 본드 하다 죽고 싶다던 아이들이 이제는 본드를 끊으려고 싸우고 있다.

이 같은 소식은 주변에까지 널리 알려져 이제는 8명의 자원봉사자가 함께 명 목사와 함께 아이들의 ‘음악 선생님’이 돼주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고려대,인하대 등 국내 유명 대학교 졸업자들로 이뤄져있고, 특히 이 중 한 명은 세품아의 1세대 가출 청소년으로 명 목사와 함께 세품아의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세품아에서는 다양한 교육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역사, 심리학, 인문학 등 수업을 14주동안 강의하고 검정고시와 수학능력시험에 대한 공부도 함께 진행된다.

“세상이 위기 청소년들을 보고 일탈이라고 말하지만 이들에게는 탈출이었어요. 이들에게는 선택할 수 없는 기회조차 받지 못했죠. 그러니 누군가는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됩니다. 최소한 속죄할 수 있는 기회를 말이죠.”



#자아 성찰, 세상과 동행

이러한 명 목사의 노력에 세품아 아이들은 꿈을 찾았고 대학이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걷게 됐다.

학문적인 교육 외에도 세품아 아이들은 세상을 돌아보는 여행, 일명 ‘힐링캠프’도 함께 떠난다. 여행을 통한 긍정적 변화가 목적이다.

아이들은 몽골로 4박5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철저히 외부 세상과 단절된 채 시간을 보내게 된다. 노숙과 물부족 등 어려운 상황속에서 협력을 배운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TV 등 문명과 단절된 채 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보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인 셈이다.

캄보디아 여행은 ‘자신만의 꿈을 찾는 여행’이다. 캄보디아 아이들은 집도 없이 떠돌면서 마약 중독에 빠져있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행복과 희망을 놓지 않는다. 젬베와 기타연주만으로도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행복해한다. 명 목사는 이들의 희망을 배우길 원한다.

   
 

“인생의 길을 잃은 아이들에게 세상을 많이 보여주려고 해요.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자연 광경이나 새로운 환경을 접하도록 해 그 곳에서 아이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고 변화하기 시작해요. 이미 아이들은 무대를 통해서 자신감을 얻고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스스로가 바이러스 같다며 세상에 들어가기를 꺼리던 이들이 노인 시설도 찾아가 봉사 활동으로 공연을 하고 있어요. 이 아이들이 또다시 어둠 속에 있는 아이들을 건져내는 일을 하길 원해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한 것이에요.”

세품아 아이들은 조금씩 세상과 대화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씩 사회적 기업 ‘나눌레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수제 레몬차를 만드는 작업을 하며 스스로 용돈을 벌어 간접적으로 사회를 경험한다. 또 이곳에서 아이들은 일을 하면서 자신을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자존감을 회복하고 전에는 없었던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든다.

“이 아이들은 집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찍은 낙인으로 세상과 단절돼 있었을 뿐입니다. 아이들은 결코 큰 잘못을 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며 끊임없이 이해하려 하면 아이들의 마음을 열 수 있어요. 집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아이들을 소위 ‘문제아’라고 낙인을 찍을 게 아니라 이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점차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을 점차 늘리는 시간이 필요해요.”

명 목사는 과거에 누군가를 상처입힌 위기청소년들이 누구보다도 잘되길 바란다. 이들은 더이상 ‘불량학생’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망’이 되길 원한다. 낙인을 기억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씨앗의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와서 나무로 우뚝 성장하길 원한다. 최남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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