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사람] 엄득호가 만난 이원준 백암재단 대표

   
 

목조로 만들어진 출입구와 대문앞 거울이 이채롭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과 남이섬메타세쿼이아길이 담겨진 출입문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 곳은 수원 문구백화점의 역사인 ‘홍문사’가 40여년간 수원시민과 함께 했던 호흡했던 자리기도 하다. 수원에 거주하는 30~50대 시민이라면 이 곳에서 노트 한 권이나 볼펜 한 자루를 구매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 곳은 지역 문구업계를 주도했던 홍문사는 창업자 이홍종(李弘鍾)씨의 유지대로 설립된 사회복지재단을 통해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에 소통을 위해 마련된 공유공간 ‘마을톡’에서 백암재단 이원준 대표이사를 만나 소통과 나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십년 전쯤에 부친 고(故) 이홍종 대표께서 기부하신 내용의 기사를 직접 쓴 기억이 있다. 아들인 이원준 대표께서 기억하는 부친은 어떤 분이신가?

“아버님은 어렵게 성장하신 분이셨던 분이다. 7살 때 부모님 모두 여의시고 고아로 크셨는데, 열심히 노력한 끝에 자수성가 하시고 그 이후로 적십자사와 로타리클럽에서 봉사활동을 해오셨다.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뜻을 펼쳐보이겠다는 생각으로 백암재단을 만드셨는데, 돌아가시고 나서는 그 유지를 받들어 제가 백암재단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홍문사는 언제부터 수원에 자리잡았나?

“문구업은 동대문에서 처음 시작했었다고 들었다. 사실 수원에는 전혀 연고가 없다. 독립을 하셔서 문구점을 하시려고 했는데 경제적인 상황이 어렵고 하니 물색하시다가 내려온 곳이 수원이었다. 문구업을 40여년간 하셨었다. 지금은 폐업을 한 상태다. 당시 직원으로 계셨던 분이 상호만 빌려서 홍문사라는 문구점을 운영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홍문사는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인 2001년 무렵 폐업을 했다. 이후 백암재단은 2003년에 설립됐다.”

-백암재단의 ‘백암’ 뜻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하얀 돌이다. 재단 로고에 보면 산와 바다, 강, 돌이 있다. 산 위 커다란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모질고 거친 쓸모없는 돌 조각이 산을 굴러굴러 강에 이르고 또 굴러굴러 바다에 이르렀을 때에는 모나고 거친 부분이 깎이고 하얗고 아름답고 단단한 돌만 남게된다. 이렇듯 백암에는 어렵고 힘든 청소년들이 우리 재단의 도움을 받아서 성장하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에는 밝고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거듭난다는 숨은 뜻이 있다.”

   
 

-재단 건물 안에 여러 공간이 있던데,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백암재단에서는 마을톡(TALK)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는 터전을 뜻하는 마을에,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배워 성취한다는 뜻의 단어들(Talking, Achieving, Learning, Knowledge)의 앞글자를 따서 접목시킨 개념이다. 마을톡 사업은 개인 소유 지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서로 지식을 나누고 배우고 가르침으로써 지식공유 공간이 될 마을이 곧 평생교육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재단 마을톡 건물 외관에 수원의 전통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미관을 꾸몄고, 내부에 있는 방 이름에는 시민들과 친숙한 팔달문, 화서문, 창룡문, 화홍문, 장안문 등 수원화성의 성문 이름을 그대로 대입했다. 공간 규모에 따라 10~25명까지 이용할 수 있다. 재단 홈페이지(www.baek-am.org)에 회원가입 후 예약 신청하면 재단에서 이용 타당성 검토 후 승인을 하게 된다. 다만, 정치·종교·상업 목적으로는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다양한 세대가 동아리와 소모임을 활성화하는 문화인프라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문구업계 장학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재단에서는 불우청소년을 대상으로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청소년들이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학비를 지원하는 장학사업이 대표적인데, 문구&문화발전 전형이 첫번째다. 특히 홍문사 창업자인 선친께서 문구업과 지역 사회에 대한 지원을 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게 된 배경에 맞춘 문구업계 최초의 학비장학제도로, 문구업계 종사자들을 격려하고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시행하고 있다. 문구업계 종사자들에게는 문구사업이 민족문화를 창조해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때문에 문구업계 지원은 문구업을 통해 얻은 것을 다시 돌려드린다는 뜻 외에도 문구업의 자긍심을 키운다는 뜻도 담겨있다.”

-그밖의 장학사업은 어떤것이 있는가?

“나눔&배움 전형은 어려운 환경 속에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돕는 학비지원 제도다. 사회복지 리더장학 전형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도 급여 등의 문제로 사회복지가 아닌 일반 직장인으로 살게 되는데 이 업계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인재들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당초 중국동포 학생들만을 지원해 왔던 지구촌하나 전형은 이번에 세계동포 학생으로 지원 대상을 넓혔다. 또 한글을 쓸 기회가 없는 해외 동포학생들에게 주제에 맞춰 한글을 사용해 글짓기를 써봄으로써 한글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지구촌 청소년 한글 글짓기 문화사업도 시행 중이다. 지난해까지 5차례 대회를 치르면서 8개국 224명의 학생이 참여했었다. 올해 6회 대회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참가해 우리 한글을 써보는 기회를 갖게 할 예정이다. 장학사업 4가지를 통해 2004년부터 작년까지 10여년간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등 1천199명에게 13억9천만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NGO단체 프랜딩에서는 학교폭력 가해학생들을 치유해주고 교육해 주는 획기적인 사업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실행 중인데 수원 인근의 경기지역에 프렌딩 청개구리학교를 운영하려고 한다. 대상이 될 만한 학생들을 발굴해 시행할 계획이다.”

-가해학생을 치료하는 프로그램인가?

“NGO프렌딩에서 생각하는 방식은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문제의 근원은 어른들로 보는 것이다. 그 학생들을 치유하는 접근 방식은 너희들이 이렇게 된 것은 사회의 탓이고 어른들의 잘못이다, 그러니까 용서해달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가해학생, 문제학생을 치유함으로써 잠재적인 피해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치료하는 근본을 만드는 방식이다. 청소년 사업을 하는 재단으로써도 잘 맞는 사업이라고 판단돼 그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장학금 지원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나?

“아니다. 주거 공간 마련이 더 시급하다. 아무리 학비를 지원한다고 해도 주거 공간이 없다면 제대로 학업을 이어가기 힘들다.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학생들에게는 대학들이 대부분 민자기숙사를 짓고 있다보니 방값이 학교 밖 원룸과도 비슷할 정도로 굉장히 비싸 방 구하기가 더 힘들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은 기숙사에 들어가더라도 2·3학년이 되면 본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기숙사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재단에서는 백암장학관 사업을 통해 신림동과 사당동, 묵동 등 서울지역 전철역에서 5분 거리인 역세권 3곳에 장학관을 설립하고 있다. 광역도·시 단위로 일부 시행하고 있었지만 보통 1시간 30분 넘게 이동해야 할 정도로 서울이 넓기 때문에 장학관을 분산 배치했다. 지방 학생들이 주거 걱정없이 열심히 공부해서 본인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있다. 1인 1실로, 일반적인 기숙사로 학생들 스스로 대표를 선출하고 자치회를 구성해 자율로 운영되다보니 경쟁률이 10대 1에 달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이 대표는 학생들에게 기무분화 정착과 약속 실천을 위해 특별한 서약서를 작성하고 공개한다고 했다. 이채로웠다.

-기부서약 사업, 생소한데 어떠한 사업인가?

“크게는 기부나무심기과 기부열매맺기 사업으로 구분짓고 있다. 학비지원이든 주거비지원이든 본인의 기부계획을 직접 작성해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졸업 여부를 떠나 사회에 기부를 어떻게 할 것인지 작성한 기부계획서는 재단 홈페이지(www.baek-am.org) 기부숲만들기 코너에 게재하고 있다. 본인이 작성한 기부서약서는 정확히 스캔해서 홈페이지에 올려 그동안 제출한 서약서를 확인할 수 있고, 계획도 세우고 보관해주는 인프라도 제공하고 있다. 그 다음 단계는 계획을 실천한 학생들을 포상할 계획이다.

-장애학생 가정도 돕고 있다고 들었다.

“수원휴먼서비스센터와 연계해 위기의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증진 사업을 통해 어머니 1명이 자매 3명을 키우고 있는 한 부모 가정을 돕고 있다. 아이 1명이 지역아동센터에서 이상 행동을 보여 수원시에서 상황을 살펴보니 나머지 두 자매들까지도 정신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현재 제도권으로는 지원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그래서 재단에서 장학생으로 선정해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작년부터 계속 지원하고 있는데, 세 자매가 모두 치료를 마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스포츠 꿈나무 지원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

“지난해 4월 21일부터 25일까지 한국체육대학교 아이스링크에서 스페셜올림픽 빙상대회가 열렸는데, 수원서광학교 고등부 1학년에 재학중인 윤선화(정신지체3급) 선수가 출전해 100m 은메달, 200m 동메달을 따냈다. 윤 선수가 처음부터 스케이팅을 잘 탔던 것은 아니었고, 학교에 운동부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스케이트화는 물론 훈련비 조차도 마련할 수 없는데 스케이트에 관심이 많아 놀이삼아 학생들에게 운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팀을 만들어 전문적인 코칭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래서 드림스케이팅 팀을 만들어 장애인올림픽 진출이라는 목표도 세웠고, 장비와 복장, 운동복, 훈련비 일체를 지원하고 있다.”

-장학생을 지원하고 운영하려면 재원이 필요할텐데 어떻게 마련하고 있나?

“자산과 임대 수익으로 장학사업을 해왔지만 시대적 상황이 장학금 보다는 장학관 등 인프라 제공으로 바뀌다보니, 수익사업을 줄이는 대신 수익을 낼 수 있는 물건을 갖고 직접 복지사업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실제 수입은 많이 줄어든 대신 갖고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고 후원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장학사업에서 기준 선정은 어떻게 하고 있나.

“경제사정이 어렵다고 무조건 선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재단의 도움을 받기 전과 후가 가장 큰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학생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잘 갖춰진 학생이라면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경제사정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3시간여동안 함께한 이원준 대표는 마을톡 공간만큼 깔끔하고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마음 좋은 옆집 아저씨나 형처럼 기금을 듬뿍듬뿍 지원해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의 올곧은 철학과 섬세한 기준이 있었다. 마을톡 곳곳에는 그의 고민과 재단 식구들의 노력이 엿보였다. 백암재단을 통해 이 사회에 필요한 하얗고 단단한 인재가 많이 발굴되어지길 수원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기대해 본다.



-이원준 백암복지재단 대표이사는?

▶1973년 수원 출생

▶1992년 수원 창현고등학교 졸업

▶1999년 아주대 산업공학과 졸업

▶2011년~현재 사회복지법인 백암복지재단 대표이사

▶2012년 민주평화통일 15기 자문위원

▶2013년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 석사

▶2013년~현재 경기도 사회복지법인대표자협회 이사

▶2013년~현재 사단법인 모두하나교육회 부회장

▶2014년 제15회 수원시 사회복지의 날 수원시장 감사패 수상

▶2014년~현재 수원시 휴먼서비스센터 운영위원

대담= 엄득호 사회부장

정리= 이주철기자

사진= 이정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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