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소, 돈 없어 기준 못 맞춰...안전법 유예기간 끝나자 줄폐쇄

   
▲ 4일 이천시 증포동의 한 유치원에 설치된 어린이 놀이터가 안전 시설기준에 부적합 판정을 받아 '이용금지' 안내문이 적힌 채 방치돼 있다. 구민주기자  

“뛰어놀 곳이 여기밖에 없는데 이제 어디가서 놀아야 되죠?”

4일 과천시 중앙동 과천 J 아파트 단지 내 공터.

열 살 동갑내기 지영이와 희수가 공터 모래바닥에 앉아 나무가지로 그림을 그리며 투정섞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은 “옆 단지 아파트 놀이터까지 가서 놀기가 민망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있는 것”이라며 “엄마가 금방 놀이터가 생길 거라고 했는데 벌써 3개월이 지나도 그대로”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앉아 있는 공터는 당초 미끄럼틀, 정글짐 등을 갖춘 복합 놀이기구와 시소, 그네, 나무 평목 등의 시설이 설치돼 있던 놀이터였다.

하지만 해당 시설이 정부가 마련한 안전시설 기준에 부합하지 않자 지난해 11월말 자체 철거한 것이다.

아파트 관리 책임자는 “안전시설 기준에 맞게끔 놀이터를 교체해야 하는데 당장 비용이 없다보니 관련 법규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게 될 위기에 처했다”며 “결국 아파트 단지 내 2곳의 놀이터가 있었는데 모두 철거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의 S아파트 내 설치된 놀이터도 폐쇄된 상태였다.

놀이시설 관련 기준에 따른 교체작업이 이뤄지지 못해 아파트 관리소에서 자체적으로 페쇄 조치한 것이다.

놀이터에는 공사장에서나 볼 수 있는 ‘안전주의’가 표시된 테이프가 둘러진 채 아이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의 S아파트에 설치돼 있던 놀이터 역시 2년 전 철거된 뒤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아파트 한 입주민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인 놀이터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며 “인근에 위치해 있던 대부분의 놀이터 역시 폐쇄되거나 자체 철거된 상태”라고 말했다.

보육기관인 유치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군포시 당정동에 위치한 S유치원도 지난 1월 놀이터를 철거했다.

지난 2007년 개원과 동시에 놀이시설을 설치했지만 관련 법에서 제시하는 시설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법적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200여명의 원생들의 놀이터 이용은 당분간 어려운 상태다.

S유치원 관계자는 “놀이터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최소 3천500여만원에 달하는 비용이 투입되는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도내 어린이 놀이터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지난 2008년 12월 시행된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의 유예기간이 지난 1월 26일자로 종료되면서 발생하고 있는 신(新) 풍속도다.

안전기준을 위반시 책임자에게 1년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의 벌금이 부과되자, ‘책임을 피하고 보자’는 잘못된 어른들의 판단이 아이들의 행복을 빼앗고 있다.

천의현·구민주기자/mypdya@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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