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권 지음 | 푸른역사 | 288페이지

   
▲ 조선의 부부에게 사랑법을 묻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다’는 옛말이 있다. 남성평등의 시대라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의 수면 위에 올라와 있는 말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이 개개인의 삶을 얽어매던 시절, 성리학은 여성에게 결코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조선시대 부부관계는 ‘삼종지도(三從之道)’ ‘부창부수(夫唱婦隨)’ ‘내외(內外)’ 등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조선시대 관련 자료들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통념이 깨진다.

‘조선의 부부에게 사랑법을 묻다’는 평소 조선인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 세상에 알려오는 일에 천착해 온 저자 정찬권 교수가 양성평등의 입장에서 부부관계가 돈독했던 열 쌍의 사례를 통해 그에 조선시대 부부의 ‘깨는’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조선 중기의 이황, 유희춘, 원이 엄마 부부, 조선 후기의 이광사, 박지원, 서유본, 심노숭, 김삼의당, 강정일당, 김정희 부부 등의 다양한 일화들을 토대로 이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해 재미있고 생생하게 그들의 부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말에 “우리는 조선시대 부부관계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조선은 유교 사회로 부부관계가 대단히 남성 중심적이고 권위적이며, 심지어 폭력적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부부들은 예를 중시하는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늘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했다”고 말한다.

이어 “부부간 소통을 매우 중시해서 평소에 도 끊임없이 시나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그들은 의외로 자연스럽게 사랑을 표현하며 다정다감한 부부생활을 했다. 지우(知友), 곧 나를 알아주는 친구요, 더 나아가 서로를 키워 주는 ‘인생 동료’가 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책이 말하는 조선시대 부부사랑의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해 주었다. 특히 겉으로만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진심으로 대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퇴계 이황은 아내 권씨가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음에도 그 부족한 부분들을 품어주며 별다른 문제없이 잘 살아갔다. 또 강정일당의 남편 윤광연은 부인을 존중하는 차원을 넘어 한평생 자신의 스승으로 여기며 살았다.

둘째, 부부간의 소통을 매우 중시했다. 조선시대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부부생활이 대단히 고정적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부부들도 수학이나 관직, 유배, 근친 등의 이유로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그럼에도 이들의 사랑은 쉽게 식지 않았는데, 평소 시나 편지로 끊임없이 안부를 묻거나 사랑을 표현하며 서로 마음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유희춘과 송덕봉, 김정희와 예안이씨 부부다.

셋째,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조선은 유교사회로 희로애락 등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을 최대한 숨겨야 했던 것처럼 말한다. 특히 부부간의 애정표현은 더욱 금해야 했던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부부들은 의외로 자연스럽게 사랑을 표현하며 다정다감한 부부생활을 했다. 심지어 부부간의 성문제에 있어서도 예상 외로 개방적이고 적극적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경우도 수많은 편지에서 “비록 집 밖에 나와 있어도 한결같이 당신을 생각한다”고 말하거나, “엎드려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 끝이 없다”라고 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넷째, 부부는 가장 좋은 친구였다. 조선시대 부부들은 나를 알아주는 친구, 즉 지우知友요, 더 나아가 나를 키워주는 관계인 ‘인생 동료’가 되고자 했다. 이 책에서 인터뷰한 이빙허각과 서유본은 인생동료뿐 아니라 학문적 동료였다. 또 윤광연은 아내 강정일당을 부인이자 벗이요, 스승처럼 여기며 살았다. 그래서 아내의 사후 그 문집을 대대적으로 간행하기도 했다. 단언컨대 이러한 부부상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결코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라 할 수 있다.

다섯째, 자식 사랑도 대단했다. 특히 조선 후기 남성들은 아내를 잃은 후에 그 사랑을 자식들에게 쏟곤 했다. 그래서 이 시기 부부사랑은 가족 사랑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조선 후기에 가족주의가 강화됐기 때문인 듯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송시연기자/shn8691@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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