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세계 최대의 어린이 도서전인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이 50회를 맞이했다.

여기에서 그림책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라가치상(Bologna Ragazzi Award)을 시상하는데 올해는 세계 40여 개국 1455종의 그림책이 응모했다.

한국이 픽션·논픽션 등 5개 부문에서 6종의 도서가 모두 관심작으로 선정됐다. 이처럼 한국그림책이 세계 속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되기까지 ‘창작그림책’이라는 불모지에 발을 처음 내딛고 개척해 온 사람들이 있다.

지금부터 28년 전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되살아난 시민들의 열망에 힘입어 그림사랑 동우회 ‘우리그림’이 창립되어 ‘신바람 미술교실’을 운영하며 지역미술신문을 발간하는 등 대중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시민들과 함께 ‘구름가족이야기’라는 그림책을 기획하고 쓰고 그리고 판화를 찍어 100권의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다. 이후 1989년 결성된 지역미술활동가그룹 ‘우리들의 땅’에서 창작그림책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하면서 창작그림책 출판시장을 열어나갔다.

정승각의 ‘까막나라에서 온 삽살이’(1994), 이억배의 ‘솔이의 추석이야기’(1995), 권윤덕의 ‘만이네 집’(1995), 김혜환의 ‘한조각 두조각’(1999), 김재홍의 ‘동강의 아이들’(2000), 정유정의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2001)가 연이어 출판되면서 창작그림책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이억배 작가의 ‘솔이의 추석이야기’는 6개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었고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은 ‘97 세계 그림책비엔날레 BIB(브라티슬라바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에 선정되었다. 김재홍씨의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길벗어린이)은 전 세계에서 2년에 단 한권을 선정해 시상하는 ‘2004 에스파스 앙팡(Espace Enfants)’상을 받았다. 에스파스 앙팡은 스위스에 본부를 둔 어린이문화재단으로 그동안 ‘침팬지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제인 구달, 독일의 작가 제르다 뮐러 등이 수상했다.

2005년 BIB에서 ‘시리동동 거미동동’(권윤덕 글 그림, 창비 2003), 2007년 BIB에서 ‘영이의 비닐우산’(김재홍 그림, 창비 2005)이 각각 전시작으로 뽑혔다. 이 작가들이 모두 1989년부터 1999년까지 경기남부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젊은 미술가그룹 ‘우리들의 땅’ 작가들이었다.

지역을 기반으로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려는 각고의 노력 끝에 창작그림책 영역에 뛰어들어 한국의 위상을 한껏 올려놓은 것이다.

군포시가 오래전에 책의 도시를 선포하고 책 읽는 활동을 전개하면서 군포시민들의 인문학적 교양의 수준이 놀랍도록 풍부해졌다. 그 토양 속에서 어린이도서연구회, 책읽어주는 문화봉사단 책두레, 이야기 놀이터등 자생적 모임들이 ‘그림책 문화예술 활동가 네트워크’를 만들며 새로운 그림책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문화는 흉내 내거나 빌려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랜 기간 동안 쌓이고 녹아들며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는 꽃피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주도의 활동에 힘입어 고군분투(孤軍奮鬪) 하는 많은 젊은 그림책작가들에게 자긍심이 되고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또한 이번 라가차상을 휩쓴 계기로 창작자들의 창작여건이 개선되는 정부정책이 마련되기를 거듭 기대한다.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문화교육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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