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 대학가는 신입생들을 상대로 한 선배들의 ‘갑질’ 행태로 몸살을 앓는다. 강제음주, 체력단련을 가장한 집단기합, 후배사랑으로 포장한 성희롱 등 도 넘은 신입생 길들이기가 횡행하고 있다.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숱한 사건·사고가 발생해왔다. 그럴 때마다 여론이나 매체가 대학가의 자성을 주문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문화가 특정 대학, 특정 학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많은 대학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란 점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서울의 유명 대학들도 예외가 아니다.

신체적 폭력은 줄어든 대신 노골적인 성희롱이나 언어폭력의 강도가 더 심해졌다. 선배라고 해봐야 겨우 1, 2살 위다. 그런데도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보다 더 깍듯이 90도로 인사해야 하고, -다 · ?까 체 어투로 말하게 하는 등 강압적인 군대문화의 잔재가 여전하다. 대학에서까지 군대식 선후배 위계질서가 왜 필요한 지 이해할 수 없으며 화장금지, 택시이용금지 등 개인의 자잘한 사생활까지 간섭한다고 하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대학 내에 수준 이하의 잘못된 풍조가 만연하는데도 이에 대한 합리적인 대처는 거의 없다. 문제가 생기면 관련 학과의 교수들은 이들을 두둔하기에 바쁘다. 학과 내에서 관행처럼 으레 있는 일이며, 위계질서를 잡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공식 행사 때마다 성평등에 관한 교양강의가 진행 된다는데도 별 소용이 없다. 대학에 대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 폭력을 당하고도 후배들은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같은 공간에서 수년간 함께 생활해야 하는 특성 상 불이익을 감수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그렇게 선배들에게 폭력을 당했던 후배들이 1년 후면 다시 선배가 되어 자신들이 당했던 것 이상의 갑질을 또다시 후배들에게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시대에 역행하는 잘못된 문화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할 것인가. 학교나 학과의 전통이라며 옳지 못한 구습을 되풀이하는 것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대학을 상아탑이나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 만큼 그에 걸 맞는 인성과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양성평등의 시대이며, 그 어느 세대보다 고급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세대가 아닌가. 대학은 가장 수준 높은 문화가 만들어지는 곳이어야 하며 그 문화는 자연스럽게 사회로 흘러 넘쳐 우리 사회를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일반의 저질문화가 대학 내에서까지 판치고 그것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니 통탄해 마지않을 수 없다. 폭력적이고 성차별적인 대학문화를 선후배간의 유대를 위한 행동으로 미화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올해를 대학문화 자정의 원년으로 삼아 지성의 전당다운 대학문화 정착을 위해 학교, 교수, 특히 선배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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