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정책? 교통정책 ①입석버스 대책 대용량(53인승) 버스 타보니…

   
 

지난 17일 오후, 수원대 앞에서 1시간 넘게 기다리다 사당행 8700번 버스에 올랐다. 이 버스는 경기~서울구간을 운행하는 유일한 53인승이다.

입석금지 대책으로 지난 1일부터 수원대~사당 노선을 오가고 있는 이 버스 옆 면에는 ‘53인승 버스’라는 광고 문구가 부착돼 있었다.

편도 1시간 30분 가량 운행하는 이 버스는 최대 47인승짜리 현대자동차의 ‘유니버스’를 개조한 것이라고 버스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좌석은 중앙 통로를 경계로 48석과 뒷좌석 5석이 숨박힐 정도로 빽빽하게 설치돼 있었다.

입석 금지 대책으로 나온 버스인데도, 천정 손잡이 20개는 그대로 부착돼 있는 모습이 아이러니했다.

좌석은 일반 버스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앉자마자 두 가지 고통이 밀려왔다.

우선 무릎이 앞 좌석에 닿아 다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무릎과 앞 좌석의 거리가 불과 20㎝도 안되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무릎에 가해지는 고통이 심해졌다.

이 버스는 개조 과정에서 전체 연장을 12.2m로 약 20㎝ 가량 늘리는 대신, 좌석은 7석을 추가로 설치하면서 좌석 간격을 60㎝ 가량으로 줄여 놓은 탓에 성인 남녀는 물론이고 청소년도 이용하기 힘들만큼 불편했다.

국토교통부가 정해놓은 좌석 간격에도 훨씬 못미칠 것 같은 버스가 운행하는 것 자체가 합법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버스는 좌석 간격을 65㎝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좌석 간격이 너무 좁은 탓에 승객들은 두 자리를 차지하고서 마치 ‘쩍벌남’처럼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승객들은 무려 1시간 30분 동안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꼬면서 불편을 참아냈다.

억지로 좌석수를 늘린 결과는 더욱 황당했다. 이 버스에는 등받이를 뒤로 눕히는 장치조차 없었다.

뒷좌석에 승객이 없는데도 90도 가깝게 세워진 등받이에 기대 쪽잠을 자야 했다.

서너살쯤 돼보이는 두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탄 윤희숙(35·수원시 율전동)씨는 “오늘 처음 버스를 탔는데 간격이 너무 좁고 불편해 두 자리를 차지하고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김희연(27·서울 남현동)씨는 “허리가 너무 아프다”면서 “버스가 너무 좁아서 잠을 자려다보니 옆으로 몸을 돌릴 수 밖에 없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버스기사 이모씨는 “보는 내가 다 불편해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홍성영 교통안전공단 교수는 “대부분 사람들이 안전벨트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좌석이 빽빽할 경우 급정거 시 무릎을 다칠 수 있다”면서 “또 너무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부딪히게 돼 안전에 영향을 주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입석금지 대책중 53인승 버스는 좀 아닌 것 같다”면서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승객들의 안전을 담보로 세운 무대책”이라고 지적했다.

강승필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처음 시범 차량을 만들어 타 본 정부 측 관계자들이 3분 타고 내려서 탈만하다고 했다”면서 “의자도 젖혀지지 않는 버스를 타고 세종시로 출퇴근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좌석수를 물리적으로 늘리는 것은 너무 안이한 숫자행정 대책”이라며 “회차 노선을 조정해 버스 회전률이 높인다든지, 2층버스를 도입한다든지 하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버스 회사에서 정해진 기준을 지켜 불법적인 부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무릎이 닿고 아픈 것은 민원성 문제”라고 말했다.

양진영기자/bothcamp@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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