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탄생100주년을 맞이한 이중섭의 삶과 예술은 지나온 세월만큼 깊이감과 애절함이 더해지며 변함없이 대중적 관심을 받는다. 그의 작품이 이토록 오랫동안 관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림에 담긴 가족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그리움이 주는 절실함이다. ‘길 떠나는 가족’ ‘해변의 가족’ ‘꽃놀이 가족’ ‘춤추는 가족’ ‘아버지와 두아들’ 등은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한 그림들이다. 이 중 1954년에 그린 ‘길 떠나는 가족’은 아내(야마모토 마사코)와 두 아들(태현, 태성)이 1952년 7월에 일본으로 떠난 지 2년 정도 흐른 시점에서 그린 것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있던 때에 그린 그림이다. 원산에서부터 시작된 2년6개월의 피난세월은 가족이 함께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결국에 일본으로 가족을 떠나보낸 후 그리움이 사무치도록 밀려올 때마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이겨냈다. 개인전을 앞두고 작품제작에 몰두하면서도 순간순간 아내의 품과 천진난만한 두 아들의 얼굴이 아른거릴 때마다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가족과 해후하는 꿈을 키워나갔다. 흥겨움, 행복 그리고 슬픔이 동시에 담긴 ‘길 떠나는 가족’은 당시 가족을 향한 이중섭의 심리적 상황이 드러난다. 이는 “아빠가 앞에서 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나라에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다.”라며, 아들(태현)에게 편지(같은 구도로 그린 그림편지)를 통해 설명해준 대목에서도 확인된다.

▲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종이에 유화29.5×64.5cm, 1954년
‘길 떠나는 가족’은 사실적 재현보다 감정에 무게를 둔 표현주의적 경향이 짙다. 형태는 불분명하지만 안정된 수평적 구도, 인물과 소의 경쾌한 움직임, 리듬감과 자신감 넘치는 터치 등 이중섭의 화풍이 여실히 드러난다. 앞에서 이끄는 아빠의 손동작에서 구름, 아이와 엄마의 흥겨운 모습, 하얀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아이의 손동작까지 시선을 유도하는 회화적 장치가 돋보인다. 실바람이 불어 구름은 흩어지고 떠나는 길목마다 소망의 꽃잎이 흩날리는 느낌을 준다. 삶의 아픔들을 집 모퉁이 돌틈 사이 켜켜이 쑤셔 남겨두고, 가족을 태우고 덜컹 덜컹대며 가는 소달구지에는 절망대신 웃음과 희망을 가득 실고자 한 이중섭의 마음이 담겨있다. 궁극에 ‘길 떠나는 가족’은 ‘예술은 진실의 힘이 비바람을 이긴 기록이다.’라고 되뇌였던 이중섭의 말뜻을 한번쯤 헤아려보게 하는 그림이다.

* 추천전시 및 도서 : ‘이중섭, 백년의 신화’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최열 저 『이중섭 평전』돌베개. 2014.

변종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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