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철학자인 모르텐 알베크는 최근 펴낸 <삶으로서의 일>에서 워라밸과 관련해 '일하는 나와 집에 있는 나는 결국 같은 사람이기에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나 역시 우리의 존재 이유이자 삶의 의미를 가치 있게 해주는 강력한 요소가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우리는 늘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산다. 그중 생애주기에서 가장 왕성하고도 긴 시기를 보내는 일터에서의 의미 찾기가 중요하다. 퇴근만 기다리며 피곤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면 인생이 허망하고도 헛헛할 게 뻔하다. 기왕이면 일을 사랑하는 대상으로 만들고 정성을 쏟는 게 현명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일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 즉, 일 잘하는 사람이 될까?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신입직원들은 대부분 동일 선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몇 년 후엔 소수만이 일 잘한다고 평가받는다. 시간이 더 흐른 후엔 불과 몇%만 리더가 된다.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왜 누구는 일을 잘하고 왜 누구는 일을 못할까? 나는 그 이유를 T자형 인간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T자형 인간이란 넓은 영역을 아우르는 지식과 함께 특정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췄음을 뜻한다. 쉽게 말해서 넓게도 깊게도 볼 줄 아는 인간이다. 20세기가 하나에만 집중하는 전문가를 원했다면 21세기는 깊이 보면서도 넓게 보는 인간을 바란다. 여기서 넓음은 함께한다는 의미까지 내포한다. 이렇게 T자형 인간으로서 습관과 사고력을 갖추면 한계의 벽이라 여겨졌던 출신, 성장 배경, 직종, 인맥을 뛰어넘는 것도 한결 쉽다. 이과와 문과, 기술전문직과 행정경영직 등 출신에만 머무르는 건 구태의연한 생각이다. 어느 하나만을 강조한다면 그건 T자형 인간이 아니다. 나는 이과에 기술직 출신이다. 흔히 얘기하는 쟁이(?)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선 너른 시선이 필요했다. 지금은 융합형 사회다. 진정 전문가가 되려면 하나가 아닌 전체를 알아야 하고, 전체를 알면 경쟁력을 갖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유연한 사고가 필수다.

그다음은 사회초년생부터 일 잘하는 법을 배우고 터득하는 거다. 이때 배운 소위 일 잘하는 머리가 향후 40~50년을 좌우한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는 다르기에 초기 2년을 제대로 투자해야 한다. 이 시기, 질문은 많을수록 좋다. 의문점이 있다면 명쾌한 답을 얻어낼 때까지 경험 많은 상관, 선배, 동료에게 묻고 또 묻는 거다. 피드백은 꼼꼼하게 메모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잘한 부분은 물론이고 애로사항까지도 드러내야 명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보고할 땐 그 이유와 결론이 무엇인지부터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알다시피 상관은 늘 급하다. 두괄식 보고에 익숙해져야 하는 이유다.

꾸준한 자기 개발도 빼놓을 수 없다. 경험 많은 선배에게 배우고, 관련 책자를 두루 살펴보는 한편 해당 전문가 또는 분야별 홍보 파트 종사자에게서 핵심 정보를 얻는 거다. 어디에서든 이렇게 2년만 투자하면 경쟁력 있는 사람, 일 잘하는 사람이 된다. 마지막은 네트워킹이다. 기업인이든 전문직이든 공무원이든 어느 영역에서든 리더가 되면 다른 영역의 리더와 만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생각보다 꽤 촘촘히 연결돼 있다. 그렇게 네트워킹을 형성해나가면 서로의 인생과 집단이 융합되면서 개인 하나하나의 작은 T자형이 지역사회의 커다란 T자형을 만들어낸다. 언제든 상의할 수 있는 전문가, 이해관계자, 선·후배가 있다면? 준비된 리더라 할 수 있다.

결국 일을 잘하는 비법은 내가 T자형이 되고, T자형 네트워킹을 얼마나 탄탄하게 완성하느냐에 있다. 그 핵심 연결고리이자 함께 T자형을 만들어가는 힘의 기반은 다름 아닌 소통이다. 오늘부터 주변 사람과 소통하며 일과 친해지도록 노력해보자. 문제까지도 사랑해보자.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애정을 쏟다 보면 자연스레 일도 잘하게 되고 삶의 의미도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이재현 인천서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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