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 새해벽두, 시간 속 풍정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어제 한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짧은 시간이다. 이는 순간, 찰나, 별안간 같은 아쉽고 안타까운 동의어를 동반하고 있다. 시간과 세월의 의미는 같으나 느낌이 다르다. 시간은 아랫도리를 내리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천연하고 직접적이어서 냉엄하다.
이에 반해 세월은 풍부한 경험을 지닌 성숙한 단어로 허무하더라도 강박하지 않다. 하지만 세월을 영어로 변환하면 군더더기 없는 Time이 됨으로 다시 시간으로 돌아가 본다. 시간은 목줄 풀린 맹견처럼 통제할 수 없고 잡히지도 머무르지도 않는 초월적 거리에 있다. 시간은 절대 게으르거나 사멸하지 않고 어느 자리에도 생성된다. 누구에게도 공평하지만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집착하지 않으며 우주라는 끝없는 공간보다도 더 광활한 범주에 있다.
우주가 사라지고 신이 부재한다고 해도 시간의 영원성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어떤 철학도 어떤 인공지능도 어떤 무기로도 파괴 할 수 없는 불확실하고 불완전하고 끝이 없는 시작 속에 있다. 올해도 소리 없이 중첩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가리라. 희로애락이 굽이치는 물처럼 부딪히고, 소용돌이치며 때론 천천히 때론 빠르게. 목련꽃, 벚꽃 피는 시절도 잠깐, 봄비처럼 낙화하여 흔적마저 지울 것이다. 흠뻑 젖어보려던 꽃 피고 새 우는 시간은 어느 새 사라진 임처럼 떠나 여름시냇가는 단풍 들어 낙엽지고 그 위에 흰 눈 덮여 또 한해는 가리라.
지난 연말엔 유례 없이 제야의 타종도 하지 않았고 해가 바뀌어도 코로나19의 감염은 무서운 기세다. 지겨운 바이러스는 마음의 창에 먹구름을 드리운 채 조금씩 우리의 겨드랑이로 달라붙는 기분이다. 여기에 더해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며 조류인플루엔자도 게릴라처럼 전국 곳곳을 침투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자기보복으로 뼈아픈 성찰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겨울의 끝은 길어 보인다.
이맘때쯤 고향에선 남은 찬밥에 김치와 고구마와 콩나물을 넣어 죽을 쑤어먹었다. 갱시기라고 했던 이 별미의 죽은 대처에 나온 후 단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갱시기의 콩나물은 방안 윗목 콩나물시루에서 시시때때 물 주어 가꾼 100퍼센트 가정식 유기농 식재료다. 먹을 것이 별로 없던 시골에선 겨울나기에 김치와 콩나물만한 게 없었다. 콩나물로 콩나물밥도 해먹고 콩나물무침으로 비빔밥을 해먹는가 하면 시원한 콩나물국도 좋았다. 물론 추녀에 매달린 시래기는 시래기무침, 시래기밥, 시래기된장국 등 모든 음식에 사용하였던 가장 흔한 식재료이기도 했다.
가끔 두부도 해먹지만 이건 맷돌에다 장시간 갈아야 하는 힘든 과정을 겪는지라 자주 해먹긴 어려웠다. 그러나 두부는 비지를 숙성하여, 비지장을 만들어 겨우내 만들어먹는 주요 음식이기도 했다. 두부를 무척 좋아했던 내게 어머니는 상경할 때마다 삼베보자기에 덮인 단단한 두부모를 이고 오셨다. 공중전화를 받자마자 달려 나갈 때 대합실 한편에 앉아 계시다가 휜 허리를 펴며 환한 웃음으로 반기셨던 어머님, 싸락눈 같이 그리운 모정은 어렴풋 남아 겨우내 마음을 앓는다. 가족과 함께 따뜻했던 고향집은 비었지만 그 시절 빈약한 추억들이 찬바람에 서린 입김처럼 그립다. 문득 이런 시가 떠오른다.
-어머니 떠나가신 뒤, 몇 해 동안/ 풋감 하나 열지 않는 감나무 위로/ 처음 보는 얼굴의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밥은 굶지 않는가? -아이들은 잘 크는가?
-전동균, ‘동지 다음날’ 중에서
이해균 화가, 해움미술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