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진칼럼] 지금 아이들이 바라보는 미래는
지금 아이들이 꿈꾸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 매일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다 보니 만나게 되는 젊은 부모들은 필자와 대화중에 자신의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충격을 받았던 경험을 꺼내 놓곤 한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 엄마인 한 기업가는 아들과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에 지구온도가 올라가서 타 죽을까봐 겁난다고 하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다른 부모님은 기후문제에 매우 적극적인 중학교 3학년 아들이 지구 인구를 절반으로 줄여야만 기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역시 크게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지구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부모와 서로 다른 방향의 삶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학교에서 배우는 환경 문제와 미래에 닥칠 기후위기 현상을 예상하면서 결코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자식들의 미래를 다르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지금의 베이비붐 세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먹을 것을 걱정하며 자랐다. 서울 한복판에 태어난 필자도 방안에 쥐와 벌레들과 함께 뒹굴어야 했고, 길거리에는 개똥 소똥이 즐비했었다. 목욕을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하라고 캠페인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나고, 매월 쥐 잡는 날도 있었다. 우리가 먹을 쌀을 축내는 나쁜 놈들이었던 쥐를 잡아 그 증거로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제출해야 했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 중에는 중학교 때 처음 전기를 봤다는 친구도 있었으니 그 시대 우리의 실상을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아이들은 어떻게 하든 공부해서 좋은 직장 얻어 가족들과 함께 배불리 먹기를 꿈꿨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생존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강렬한 몸부림으로 살았던 세대다. 그 이후 마이카와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며 휴일도 없이 정말 죽도록 일하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궈냈다. 뒤 따라오는 세대들도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이런 길을 걸었다. 그렇게 일궈낸 부와 풍요 속에서 자란 그 다음세대들은 조금씩 생존의 욕구보다는 차원이 다른 욕구를 추구하게 되었지만 사회시스템은 여전이 물질적 풍요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태지와 아이들과 같은 문화계로부터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며 나름 그들만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좇아 허덕이는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자신들보다는 자식들이 더욱 더 높은 곳에 더욱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만들려고 기를 쓰고 투자한다. 덕분에 각종 학원은 대박을 친다. 강남의 부동산이 치솟고 일류 대학은 성공의 방정식처럼 되어 버렸다.
그렇게 노력해서 키우는 자식들로부터 지구온도가 높아져 타 죽을 것을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충격을 짐작할 만하다. 지구생태계에 호모사피엔스의 개채 수는 이미 적정 개채수를 훨씬 초과했다는 학계의 주장을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인구증가와 인구감소의 상반된 주장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인구를 반으로 줄여야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어찌 되었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아이들의 생각을 무어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의 MZ세대들은 의욕이 없니, 일에 열정이 없니 등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진정으로 행복한 꿈이란 과연 무엇일까. 지금 부모세대가 생각하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면 과연 그들은 어떤 꿈을 꿀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만약 그런 꿈을 이 사회는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되어 가는 것일까. 여러분이 만약 MZ세대라면 과거와 다른 꿈을 꿀 수 있겠는가?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멈춰 섰던 2020년에 딱 한번 전 세계 탄소배출량이 감소했다는 것은 지금의 방식으로 경제가 정상화되면 다시금 탄소배출이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어 우리는 아주 빈번하고 강력한 대가뭄, 대홍수, 대산불 등의 이상기후 현상을 접해야 하고 그렇게 발생된 식량위기. 사회적 갈등. 자국보호주의 등이 강해지고 기후난민, 양극화로 인한 폭동 등이 발생하고 결국에는 전쟁 등이 발생하지 않을 까 우려를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서 돈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라는 부모들의 주문이 받아들여지겠는가 말이다. 전쟁보다 타죽을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바라보는 디스토피아를 과연 어떻게 유토피아로 만들 수 있을지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도 될까 말까 한데 여전히 관심 밖의 이슈로 남아있다. 불과 30만 년 전 쯤 출현한 호모사피엔스가 초래한 이 같은 디스토피아는 암세포처럼 숙주를 파괴하는 생물종으로 함께 멸종으로 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극적으로 또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지구촌을 이끌어내는 대전환의 과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를 향해 한발 짝이라도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