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농업왕] 최종보 안산농민 "반백년 농사 한 우물… 명품쌀의 기준 안산이 바꿉니다"
"더 좋은 품질의 쌀을 만들어서 안산 쌀이 최고라는 말을 듣는게 목표입니다."
안산시 본오동에서 벼농사를 짓는 최종보(63) 씨는 농업인으로서의 꿈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안산시와 화성시가 맞닿아 있는 곳에 있는 너른 벌판이 바로 그가 농사를 짓는 삶의 터전이다.
최 씨는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농업의 길로 뛰어들어 50년이라는 세월을 논밭에서 땀 흘리며 살아오고 있다.
좋은 쌀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우직하게 농사를 지어온 결과, 그는 지난해 경기도농업기술원의 ‘제6회 참드림 경기미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는 영광의 순간을 맞이했다. 최 씨를 만나 그의 인생과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생계를 위해 농사에 뛰어들다=어린시절 무려 11식구의 대가족이었지만, 가족이 가진 땅이 없어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다보니 살림이 어려웠다. 밥을 먹기 위해 보리가 익었는지 보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밭을 둘러봐야 할 정도로 먹고 살기가 힘들어 9살 무렵 일찍 철이 들었다. 당장 배가 고픈 날이 많아 빨리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형이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 차남인 최 씨가 장남의 역할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나 하나 헌신하면 온 가족이 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었다. 누나와 동생들이 최소한 학교는 모두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학업을 포기하고, 6학년을 마칠 무렵 선생님과 부모님께서 중학교 진학을 권했지만 이마저도 뿌리쳤다.
건강 하나는 타고나 남들보다 힘이 셌었다는 최 씨는 친구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 농부가 됐고, 어른들과 맞품앗이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처음에는 가진 논이 없다보니 남들이 하기 힘들어 하는 황무지를 개간하고, 남의 땅에 대신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사방공사 현장에 나가 일을 하는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가족을 위해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밥을 굶지 않기 위해 농사를 지었고, 내가 최선을 다해야 가족을 거둘 수 있다는 생각 뿐이었다"는 최 씨는 처음엔 공부를 포기하고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 손가락질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떠올렸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가족을 떠올리며 더 많은 일을 찾아다녔던 그는 1999년 무렵 처음으로 충남 서산에 자기 명의의 농지를 갖게 됐다. 그 땅에서 12년 가량 농사를 지었지만, 태풍과 병충해가 번갈아 오며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최 씨는 "벼가 쓰러지는 걸 보면 자식이 쓰러지는 기분이 든다. 10년 넘게 서산에서 농사를 짓는 동안 반 정도는 손해만 봤다"고 첫 농지를 가진 뒤 겪었던 어려움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지런하게 일하면 먹고 살 수 있다고 믿고, 기왕 하는 일을 즐겁게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러면서 부끄럽게 생각했던 농사일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고, 이제는 누구보다 떳떳하고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소비자가 알아주는 쌀 만들어야=농사를 시작한 것은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였지만, 이제는 ‘더 좋은 쌀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좋은 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최 씨는 "소비자들이 알아주는 쌀이 좋은 쌀"이라고 답했다. 옛날처럼 쌀이 없어 밥을 못 먹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더 맛있고 좋은 쌀을 찾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좋은 쌀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는 다양한 종(種)의 벼를 직접 심어 키워 그 특징들을 비교해 봤다. 고품질 품종은 거의 모두 심어 봤고, 재배 중에 발견되는 돌연변이 이삭들을 모아서 키워볼 정도로 좋은 품종을 고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렇게 좋은 쌀 만들기에 매진하던 그가 선택한 것은 국산 품종인 ‘참드림’이다.
참드림은 경기도 벼 재배면적의 60% 정도를 차지하는 주재배품종인 외래품종 ‘추청’을 대체하고자 지난 2014년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품종이다.
참드림을 선택해 약 7년째 벼농사를 짓고 있는 최 씨는 품종 선택 이유에 대해 "우선 참드림 쌀로 밥을 지으면 부드럽고 찰기가 있어서 맛있습니다"라며 "무엇보다 직접 재배하는 입장에서 보면 수확량도 많고, 강한 바람이나 병해충도 잘 이겨내니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다른 품종에 비해 변질이 적은 편이어서 실온 보관이 용이하고, 보관한지 오래된 쌀이라도 햅쌀과 비교해 밥맛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최 씨는 동료 농업인들에게 참드림 재배를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외래품종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며, 직접 키운 참드림 쌀로 밥을 지어 먹어보게 하는 등의 노력으로 참드림은 농협의 장려품종에 이름을 올렸다. 안산지역 학교급식에 납품되는 참드림 쌀은 반월농협 로컬푸드 코너와 안산쌀연구회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다=지난해 경기도농업기술원의 품평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최 씨는 "그동안 인생에서 농사 한 우물만 열심히 파다보니 경기도에서 알아주는 농민이 됐다"며 기뻐했다.
50여년 동안 농부로 우직하게 살아온 삶을 인정받은 것 같아 행복하다는 최 씨는 좋은 쌀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농민의 마음’을 꼽았다.
최 씨는 "농민이 조금 더 많은 수익을 얻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너무 욕심을 내면 고품질을 만들기 어렵다. 쌀 한톨 한톨 만드는데는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요즘 안산쌀을 여주쌀이나 이천쌀 같은 명품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후배 농업인들이 안정된 소득을 얻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끝으로 최 씨는 "소비자들이 다시 찾는 쌀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안산쌀과 경기미가 최고라는 말을 듣는게 목표"라고 다짐을 전했다.
임창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