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환칼럼] 약속의 무게

2024-02-20     정상환

‘도망친 노예 셈을 찾아 돌려주면 그 사례로 순금환을 드립니다.(중략)
남자 노예 셈이 그의 선량한 주인 옷감 장사 하푸로부터 달아났습니다.
하푸의 점포는 여러분의 주문에 맞춰 최상의 옷감을 짜고 있습니다.’
BC 1000년경 파피루스에 쓰여진 광고로 현존하는 최초의 광고로 불리 운다.
이후 ‘공기는 산소와 질소 그리고 광고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말이 있듯,
현대인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잠들 때까지 하루 동안 3000개를 넘는 광고의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를 뉴 마케팅의 시대라 한다. 
과거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에서 생산자 중심의 마케팅에서 이제는 소비자 중심의 마케팅 시대로 변화했다. TV, 라디오, 신문 등 매스 커뮤니케이션 중심에서 각종 디지털매체를 통한 일대일 커뮤니케이션 중심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러나 이 소비자들이란, 변덕이 심해 도무지 만족을 얻지 못하고, 혹 만족한다 해도 금방 시들해진다. 그러기에 기업의 마케터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소비자들은 삶의 의미의 대부분을 특별한 물건을 소유하고 과시하는 데서 찾고 있다. 
물건이든 서비스든 자신을 남들과 구분하려는 끊임없는 욕구를 갖고있다. 
과거 사치품이었던 물건은 이제 필수품이 되었다. 아니 이젠 절실품(?)이 되었다. 
남과 다른 나를 위한 인간의 욕구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욕구는 산업을 발전하게 하였고, 풍요한 물질시대를 가져왔다. 
그러나 소비자가 정말 원하는 것은 ‘제품 자체’가 아니라 '의미 있는 제품'이다.
 

상품에 의미를 부여하며 약속하는 것이 바로 광고다. 
골치 아픈 머리도 낫게 해주고, 연인의 사랑도 얻게 해주며, 지성도 품격도 '바로 이 상품을 사면'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래서 소비자는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약속’을 산다.
광고를 사는 것이다. 아니 약속을 사는 것이다.
자녀 곁에서 책 한번 같이 읽어 본 적이 없어도 그 학습지만 산다면 자녀가 1등 할 것 같고, 차창 밖으로 쓰레기를 버려도 고급 자동차만 타면 대한민국 1%가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광고가 성공하려면 은밀한 유혹이 필요하다. 그 속내가 소비자에게 들키면 소용이 없다.
‘대 놓고 들이대는 약속’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만병통치 약을 파는 거리의 약장사’는 돌팔이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우리는 약속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약속이란 진정성과 실천력이 담보될 때 그 효력을 발휘한다.
사랑하지 않는데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실현될 수 없는 약속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불행의 시작이다.
단맛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쓰다. 그리고 머리가 아프고 치아도 썩는다.
물론 당뇨병으로 고생할 확률로 높다. 
총선을 앞둔 지금, 온갖 달콤한 약속이 난무한다.
그러나 거리의 돌팔이처럼, 사랑 없는 구애처럼 마구 쏟아 버리는 약속이란, 허망하다.
그리고 그 약속의 무게를 믿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약속이란 꼭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저열한 의식’과 ‘멋지게 지는 것은 소용없다.’는 
교언(巧言)이 약속의 깃털 같은 가벼움을 더욱 가볍게 한다.

정상환 한국홍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