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칼럼] 혼돈 속 시험대

2024-02-27     김형태

잠깐만 타임머신을 타보자.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바로 4년 전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던 코로나19는 방역체계와 더불어 여러 국가의 민주주의 회복력과 혁신 능력을 시험대에 오르게 했다.

당시 스웨덴 스톡홀름에 본부를 둔, 국제 민주주의·선거지원 기구 (IDEA)는 ‘코로나19 전후 세계 민주주의 동향 파악’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전 세계 국가의 61%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규제 조치를 시행했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일시적으로 억압하는 것은 물론 선거를 연기하는 비상사태를 선포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생겼으며, 말레이시아, 말리, 미얀마, 스리랑카는 코로나19 이후 독재가 굳어졌고 아르헨티나와 엘살바도르의 경우 민주주의가 악화하였다고 평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해 핀란드,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대만, 우루과이 등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코로나19 사망률을 낮게 유지한 모범 사례라고 평가받았다. 당시를 복기해 보자면 성숙한 민주주의는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꾸준한 정보 공유와 설득, 그리고 자발적인 헌신과 참여다. 정부는 매일 실시간 브리핑을 하며 현 상황을 공유하며 시민들의 불편함을 이해하면서도 동참에 호소했다. 의료계 기관 종사자들은 헌신했고 이에 함께하기로 한 국민들은 일부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일상생활 자제에 적극 참여했다. 결과는 전 세계에 한국의 방역시스템과 민주주의 프로세스 절차를 모두 알려 국가 브랜드 향상을 가져왔던 쾌거였다.

4년이 지난 대한민국 의료계는 코로나 팬데믹을 지혜롭게 넘겼지만 새로운 ‘의료대란’ 이슈로 들어가는 중이다. 정부의 일방적 의대 증원 발표에 의료계의 집단 사직서 제출 및 근무 중단 등 강력한 반발이 강 대 강의 파열음이 전국에서 발생 중이다.

다양한 구성원이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로의 의견 대립은 상수다. 의과대학 학장협의회는 350명을 제시했기에 의대 정원 확대 방향 자체를 반대한 건 아니다. 당장 2천명의 일방적 증원이라는 건 교육의 질 저하와 연결된다는 주장은 당연히 현실성 있는 이야기일뿐더러, 지금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한국에서 안정적인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의사 타이틀로 2등급 학생들까지 모두 몰려버리면 가뜩이나 R&D 예산 삭감으로 폭탄을 맞고 있는 기초과학 분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장기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공계 주장도 설득력이 높다.

게다가 이런 의료계 충돌이 생길 때마다 병원이 마비되는 건 결국 값싼 인건비로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며 희생된 전공의 시스템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 등 전공의가 10% 안팎인데, 우리나라 빅 5 병원의 전공의 비율은 평균 38%나 된다. 인턴이 일 그만뒀다고 멈춘 회사가 정상 시스템일 리 없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결국 피해는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직격탄 중이다. 공공병원과 군 병원을 총동원한다 해도 우리나라 공공의료 비중은 전체의 10%뿐이다. 공공의료 시스템을 확충하지 못한 인식의 전환도 함께 필요하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늘 말하지만, 정부는 첨예한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의 ‘균형과 조정자’의 역할이다. 문제를 조정해야 하는데 자기 뜻은 굽히지 않고 상대와 협상할 줄 모르며 비난의 목소리만 높인다면 그사이에 피해를 보고 있는 시민들에게 오히려 갈등을 키우는 모습만 보여주는 아마추어적 접근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의사들만 적대시해 이기주의로 몰아가며 대립각을 세워 지지율을 올리려고 국민을 볼모로 잡는 언론과 정당의 모습이 있는 건 아닌지. 정부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진짜 시스템의 문제를 외면하는 협회가 있는 건 아닌지. 현재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진짜 진심은 있는 건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자들은 누구인지 알아보는 시간이 왔다. 제대로 알아내야 다음번에도 반복되는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누가 범인일까?

상대를 적으로 몰아넣고 분열의 프레임으로 재미를 보고 있는 자, 프로세스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 자. 민주주의에서는 이들이 범인이다. 이제 모두가 다시 시험대에 올라왔다.

김형태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