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농업왕] 박진호 남양주 팔현농원 대표 "농부가 조금 더 땀 흘리면 어떤 문제도 극복"

2024-03-11     임창희
남양주시 팔현농원에서 박진호 팔현농원 대표가 직접 재배한 먹골배를 소개하고 있다. 임채운기자

보통 ‘성공’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꼽으라면 ‘성실’을 가장 먼저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특히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성실’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루라도 게으름을 부렸다가는 작물에 병해충이 생기거나, 갑자기 고사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은 과수농가에게 가혹한 해였다. 과수나무에 꽃이 피는 시기에 찾아온 냉해(저온)부터 집중호우와 폭염, 병충해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해가 집중됐었다.

이런 위기를 그 누구보다 ‘성실’한 자세로 잘 극복해 낸 농부가 있다. 남양주시에서 배 농사를 짓고 있는 박진호(50) 팔현농원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박 대표는 그 누구보다도 성실한 자세로 더 맛있는 배를 생산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중부일보는 팔현농원에서 박 대표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농업 이야기를 들어봤다.

◇3대가 이어온 배 농사=천마산의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한 약 3만3천여㎥의 팔현 농원에는 800여주의 배나무가 박 대표의 돌봄 아래 자라고 있다.

그는 서울 공릉동에서 농사를 시작해 현재의 자리에 과수원 자리를 잡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15년전 농사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화물차를 운전하는 일을 했지만, 점점 농사에 힘이 부친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일을 그만 두고 과수원 일을 돕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보니 과수원으로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돈이 되지 않았다"며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보며 독학으로 농사를 배웠다"고 말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당시에는 아버지의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박 대표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개선하기는 어려웠다.

기존의 방식을 고집하는 아버지에게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지만 수십년을 지어온 농사 방식을 한 순간에 바꿀 수는 없었다.

그는 "많은 가지에서 많은 과실을 얻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하나 하나 나무를 만들려고 했다"며 "좋은 가지만 남기고 잔가지를 정리하는 방식을 두고 아버지와 의견충돌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더 좋은 배를 만들기 위해=이후 아버지가 과수원 일에서 손을 떼고 박 대표가 전담해서 가꾸기 시작하며 변화가 시작됐다.

당시 남양주의 배 농가에서는 소매 위주 판매가 중심이어서 농법이 타 지역보다 뒤쳐졌고, 좋은 품질의 배가 생산되지 않았다.

가락동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안성 등 경기 남부지역에서 생산되는 배는 높은 값을 받았지만 남양주 배는 그렇지 못했다. 때문에 박 대표는 배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무가 서로 겹치지 않게 만들어 햇빛과 바람을 잘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유인 작업과 가지치기에 더욱 신경 썼고, 배의 등급을 구분하는 선별도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진행했다.

가장 맛있게 배가 익는 때를 맞춰 수확하니 높은 당도의 배를 얻을 수 있었고, 어느 순간 가락동의 경매사들도 "남양주에 이렇게 좋은 배가 있었느냐"며 박 대표의 배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박 대표가 생산한 배는 높은 당도로 유명하다. 타 지역의 배 보다 생김새는 조금 덜 예쁘지만 당도는 가장 높다. 지난 2022년 경기도농업기술원의 품평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할 당시에도 박 대표의 배는 가장 높은 당도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인부를 고용해 많은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흠집이 생기거나 해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박 대표는 거의 모든 작업을 부인과 함께 직접 하고 있다.

박 대표는 유인 작업 등 나무를 가꾸는데 집중하고, 부인은 배를 솎아내고 봉지를 씌우는 역할을 거의 전담하고 있다. 인부를 고용해 하는 작업은 전정 작업 정도가 전부고, 박 대표는 항상 농원을 직접 전부 돌아보며 나무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남양주시 팔현농원에서 박진호 팔현농원 대표가 전정 작업을 하고 있다. 임채운기자

◇성실함으로 최고의 먹골배 생산=이렇게 박 대표의 손길과 땀이 담겨 생산된 먹골배는 이미 지역주민들에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배 수확시기가 되면 ‘배를 사고 싶다’며 농원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질 정도다.

박 대표는 "모양이 조금 덜 예쁘거나 흠집이나서 공판장에 내놓지 못한 배들을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판매하기도 한다"며 "그렇게 배를 드셔보시고 주변에 홍보해주시는 분들도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 소비자들은 딱딱하고 크기가 큰 배를 선호했다면, 지금은 소비자들이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은 ‘맛’"이라며 "재배지 관리가 잘 돼 있지 않으면 높은 당도의 배를 생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박 대표는 철저한 관리가 있어야만 좋은 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철학으로 매일 땀 흘리고 있다.

성실한 관리 덕분에 박 대표가 돌보는 배 나무들은 그동안 냉해나 병충해 등의 피해를 크게 입지 않았다. 지난해 개화시기에 찾아온 냉해도 박 대표는 더 많은 인공수분을 통해 극복해 냈다.

박 대표는 "농부가 조금 더 땀 흘리면 어떤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면서 "시기마다 필요한 약을 적기에 뿌리고, 생육 시기에 맞게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어 "농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질 좋은 배를 많이 생산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며 "열심히한다고 하지만 자연이 하는 일인지라 해마다 사정이 달라 힘든 점도 있다. 그래도 아직 젊은 만큼 더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창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