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환칼럼] 침묵의 나선

2024-04-16     정상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구약성서 창세기의 첫 구절이다. 그 말씀으로 우주 만물은 이루어졌다.

만약 말씀이 없었다면 하늘과 땅, 그리고 온갖 것은 창조되지 않았을 것이다. ‘말씀’은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을 원초적으로 ‘커뮤니케이션적 존재’라 한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인간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이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 요소다.

그런데 딱히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만족할 만한 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많은 관점이 있지만, 그 요체는 공유(共有, share)다. 커뮤니케이션이란 말이 라틴어 ‘communicare’(공통으로 만든다.)에서 유래되었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생각을 공통으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설명이 적절할 것이다.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공통 관심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커뮤니케이션은 활발하다. 공유의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갈등은 줄어든다.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여러 사람 사이에서 공유되어 특정 현안에 도달한 의견일치를 여론(與論)이라 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아직 여론의 존재는 인정하나,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대한 일치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직도 여론 현상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중 ‘노엘 노이만’(Noelle-Neumann)이란 커뮤니케이션 학자는 ‘침묵의 나선 이론 (沈默의 螺線 理論)’을 발표하며, ’여론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매스미디어‘라 주장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매스미디어는 이슈에 대한 ’통일된 상‘을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다른 메시지를 선택할 수 없게 만들고, 사람들은 매스미디어의 메시지 내용과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971년에서 1972년에 걸친 서독의 사형제도에 관한 공중의 여론을 분석한 결과에서 밝혀졌다. 초기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 여론의 비율은 거의 비슷한 분포를 보였으나 매스미디어에 의해 이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자 여론 및 분위기는 현저한 변화를 보였다.

조사결과 대부분 사람이 국민의 대다수가 사형 제도에 대하여 반대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 당시 서독의 매스미디어들이 대체로 사형 제도에 대한 반대의 논조를 펼치고 있었고 둘째,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당시의 지배적인 여론(또는 그렇게 보이는 여론)이 사형 제도 찬성자들로 하여금 침묵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노엘 노이만‘은 매스미디어가 여론의 지지나 반대와 같은 의견의 분포를 전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이 우세한 여론에 속하면 그 의견을 더욱 표명하도록 하고, 자신의 의견이 열세에 속한다면 침묵하게 한다는 것이다.

즉 소수의 침묵을 가속화 한다는 것이다.

사회집단으로부터 고립되는 위협과 두려움을 피해 침묵하는 것이다.

현대를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라 말한다.

TV, 신문 등 전통적 매스미디어는 물론, 첨단 기술로 결합한 디지털 미디어 들은 가히 커뮤니케이션 시대를 주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역설적(逆說的)으로 매스미디어가 때론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의 의견을 마치 다수의 의견으로 만들 수 있다. 복잡다단한 현 세태에서 ’매스미디어는 여론을 전달하지만, 여론을 창조한다.‘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인간이란 주변으로부터 고립과 폭력을 두려워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자기 편향적 존재라는 것을 미디어는 교묘히 이용한다.

사실 나의 주체적 생각, 신념이란 것이 매스미디어로부터 주입된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정상환 국립한경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