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택칼럼] 선물

2024-04-24     한민택

세상에서 그구나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물’이 아닐까. 선물을 마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공짜란 없기에, 무슨 속임수가 있을 것을 알면서도, 일단 받아놓고 보자는 생각이 앞선다. 물론 요즘은 선거나 다른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사적으로 주고받는 선물의 범위나 액수를 법으로도 규정하기도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말이다.

동문 운동회나 동창회 모임 혹은 성당의 큰 축제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경품추첨 시간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행사 끝까지 기다리며 자기 번호가 뽑히기를 기대한다. 내 번호가 뽑히지 않아도 상관없다. 선물을 받은 사람을 축하해주며,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많은 선물을 받는다. 생일 선물부터 결혼 기념일 등 선물의 종류도 인생사만큼이나 다양하다. 필자의 기억에 가장 남아 있는 선물은, 어릴 적 어느 성탄절 아침 머리맡에 있던 사탕 봉지였던 것 같다. 당시 성당을 다니지도 않던 부모님께서 어떻게 성탄절 선물을 준비하셨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아련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우리가 선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얼까? 값없이 거저 주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넣어둬." "마음 쓰지 마." 나의 공로 때문도, 나의 자격 때문도 아니다. 그저 내가 소중하기에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선물이다.

사실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선물을 받으면 부담을 갖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선물은 경쟁사회, 복잡한 이해관계, 경제논리와 과중한 업무 속에 파묻혀 힘겹게 사는 우리에게 오아시스처럼 다가온다. 꽉 막힌 하늘이 열리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우리 삶에는 그와 같은 오아시스, 열린 하늘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받은 생 자체가 선물이 아닐까. 누구도 자기 생을 권리로 요구하지 않았다. 자기 공로로 생명을 얻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주어진 생을 선물로 받아 사는 것뿐이다. ‘산다는 게 덤이잖소.’ ‘덤으로 사는 인생’과 같은 말도 이런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토록 생에 집착하고 힘겨워하는 것일까.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거저 주셨으니 거저 드린다는 생각으로 산다면 얼마나 인생이 편할까.

우리 삶을 선물로 받아들인다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선물로 받은 소중한 존재이기에, 소중히 가꾸어야 할 것이다. 집착하는 것이 아닌, 사랑과 관심으로 소중히 돌보아야 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진 것 중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는가. 생명, 가정, 집안, 성별, 환경, 체질, 건강... 우리는 모든 것을 받았다. 그것도 거저 주어진 선물로. 그것이 우리의 타고난 조건이다. 그러니 불평할 것이 아닌, 선물로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잘 돌보아야 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넓혀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 거저 주어진 선물로 다가온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 어느 하나 내 공로나 권리로 주어진 것이 없다. 모두 나에게 거저 주어진 것이다. 소유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닌, 소중히 아끼고 돌보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환경을 보호해야 하고, 오염을 줄여야 함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이는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잘 안다. 그들은 자연과 환경이 모두 하늘로부터 주어진 선물임을 잘 알고 있다.

타인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원수가 되기도 하고 짐으로 혹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타인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타인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생각과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사람들, 모두 선물처럼 아끼고 돌보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이제 우리 자신부터 사랑하자. 내가 나를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미우나 고우나 용기를 내어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경제로 인해, 정치로 인해, 여러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얽힌 이 삶, 선물처럼 주어진 것들을 다시 발견하고, 거기서부터 힘을 얻고 다시 시작하자. 그것이 하늘의 뜻이고, 조상의 뜻이며 부모님의 뜻이고, 나를 둘러싼 살아있는 모든 존재,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그것을 바랄 것이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