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웅칼럼] 팩션(faction)과 편식(偏食)
팩션(faction)은 사실(fact)과 픽션(fiction)의 합성어입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사건이나 일대기가 작가의 역량에 따라 전혀 다른 양면성의 세계로 표현되는 사례를 소설이나, 드라마나, 연극, 영화에서 봅니다. 이를 팩션이라고 합니다.
조선 제9대 성종의 부인 윤씨가 성종과 말다툼 끝에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어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되고 고향으로 돌아가 있다가 사약을 받고 죽습니다. 이때 사약을 받고 피를 토하고 그 피묻은 손수건을 자기 어머니 신씨에게 주며 원한을 풀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죽습니다.
소설의 모티브가 피 묻은 손수건(소설의 제목 ‘금삼의 피’)입니다.
아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고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부터 폭정이 더 심해지고 폐비사건과 관련된 신하들을 모두 죽이는 무오(1498)와 갑자년(1504) 사화(士禍)를 일으켜 역사에 큰 오점을 남깁니다.
월탄 선생은 연산군의 일대기의 사실(fact)에 작가의 상상력과 영감(fiction)으로 명작 소설을 만들었고 용납할 수 없는 학정의 군주 연산도 엄마를 잃은 불쌍한 아들의 슬픈 사연을 부각함으로서 포악이 연민의 정으로 이전되어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상주의(感傷主義)정서로 여운을 남기게 됩니다.
즉, 연산군이라는 실존 인물이 박종화라는 탁월한 소설가에 의해 독자들을 작가의 가공의 세계 속으로 끌어들여 악한 군주가 측은하고 선량한 쪽으로 감정이 이입되어 또다른 연산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중국의 삼국지연의는 독자의 인식을 뛰어넘어 지식의 세계로 이끌어 강하게 독자들을 교육하는 기능으로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삼국지는 100여 년간 한말(漢末)의 정치, 군사적 상황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묘사함으로 정치·군사적 상층사회의 상황과 인간적인 음모와 지략과 권모술수 탐욕 등 내부 모순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역사서 삼국지는 진수(陳壽 233~297)에 의해 집필되었는데 소설 삼국지(연의)는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이란 걸출한 작가의 글솜씨에 의해 전 세계인들에게 많이 읽히는 명작이 되었고 인생철학과 최고의 병법을 학습하게 하는 텍스트가 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멸망으로 황건적이 난을 일으켜 나라가 피폐해지는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유비, 장비, 관우가 도원결의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삼국지는 온후한 유비, 문무를 겸비한 관우, 일기당천(一騎當千)호걸 장비, 불세출의 지략가 제갈량, 의리와 용맹을 갖춘 조자룡, 용맹 무적 장수 여포, 탐욕의 화신 동탁, 권모술수의 대명사가 된 조조 등, 다양한 인간의 대표적인 군상이 적재적소에 등장하여 독자들이 호불호의 편을 갈라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팩션은 현대에 와서 정치집단이 정권 쟁취의 수단으로 국민의 편을 갈라놓고 있습니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거짓을 말해도 추종 세력과 지지자들은 확증 편향하고, 확대 재생산하면서 거짓을 진실로 콘크리트처럼 양생시킵니다. 또 1인 방송 시대가 열리면서 팩션의 범주가 여러 분야에 걸쳐 세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 쪽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진실과 거짓의 옳고 그름도 따지기 전 이미 내 편에서 하는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말도 무조건 삼키는 편식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AI시대에 접어들면서 의도적으로 기획 제작된 딥페이크(deepfake)에 지배당하는 혼돈의 상황이 사회 깊이 파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기형적 사고에 갇혀 상대방에 대한 관용과 대화는 사라지고 자기들만의 성(城)안에서 제작되고 학습된 거짓과 편견을 경전처럼 신봉하고 있습니다.
내 편에서 제작된 모든 말은 모두 진실이고 상대편의 의견은 모두 거짓이라고 단정합니다. 이 프레임에 갇혀 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고 심지어 자기편의 모든 것은 미화하면서 교주처럼 섬기고 반대편은 타도의 대상으로 공격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유화웅 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