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석 칼럼] 배움은 짧고 신념만 강한 사람들의 경우

2024-05-02     문기석

골프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신기한 일은 모두가 저마다 ‘강사’고 ‘프로’라는 점이다. 배우는 과정에 자신과 실력이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이나 기껏해야 몇 달 먼저 입문해 보이는 사람들도 배움보다 남들을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다. 그냥 호기어린 정도로 보기는 어려운 교만이요 만용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런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배움은 적으나 평소의 신념이 고집스러울 정도로 강한 탓이다. 이런 사람은 심지어 약아빠지기까지 하다. 자기 스펙 꾸미기와 치장에 천재적이다. 이제는 AI까지 등장해 그야말로 간단한 머리와 최소한의 지능만 있으면 컴퓨터라는 하드웨어를 통해 모든 것을 간단없이 손안에 넣는다. 범죄에 가까운 페이크의 경계도 넘나든다. 과거처럼 확인하는 일이 힘들지 않아도 상대의 귀찮고 섞이고 싶지 않은 나약함에도 그 이유는 있다. 그러다 보니 이솝우화에 나오는 까마귀가 공작새의 깃털로 자신의 몸통을 화려하게 꾸미는 식의 일들이 넘치고 있다. 유행하는 그 무엇을 유튜브로 알아차린 후 본인이 유튜버로 신장개업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마치 골프 입문자가 느끼는 저마다의 능력자들이 위조하는 그래서 지금의 병든 사회로 이르게 하는 고질병을 말한다. 작은 조직이나 거대한 사회도 마찬가지다. 대개의 이러한 사람들이 얼마나 주변까지 병들게 하고 자신은 기대 하기조차 어려운 나락으로 빠져듦은 알지 못한다. 진보나 보수를 떠나 신념만 가득 찬 만용으로 만들어진 결과가 지금의 정치나 사회를 그르친 것만도 봐도 확연해진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는 말이 아니라도 자기만 옳고 왜 난 너희들과 다를 게 뭐가 있냐는 불만어린 응어리가 만들어 낸 애매함의 사고다. 대개의 이런 특징은 모 아니면 도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시작한다. 배움이 충분하지 못한 탓에 틀에 박힌 사고로 일관하면서 보이는 것 모두가 그냥 흑백논리다. 결국 그저 세상이 모순되거나 삐딱하고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자신만의 신념으로만 나아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인정하기 싫은 현실로 다른 진실이 있을 수 없고 인정하기 어려운 다른 사실도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사회를 해체하는 집단적인 사람들의 특징을 분석해 봤다. 개인적인 어리석음에서 세계 모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조직을 위험에 빠트리는 요소에까지 모든 것을 정리했다. 그 결과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 대다수는 바쁜 생각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마구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 보이는 공간이라는 나름의 보호막에서 자신의 조급함과 초조함을 동반해서다. 사실 괜한 짓이며 쓸데없는 짓이란 것을 배움에서 터득하지 못한 이유가 크다. 이미 해답은 정해져 있다. 버튼을 한 번 누르든지 급하게 여러 번 누르든지 버튼은 처음의 한 번에 반응할 엘리베이터다. 문제라기보다 더 한심한 것은 이런 사람들과 같이 탄 엘리베이터 안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니얼의 연구는 모두 마찬가지란 결론으로 마무리 된다.

우리가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정치부터 바닥에서 기는 경제에 이르기까지 이와 유사한 부류의 사람들이 늘 그 앞에 서 있다는 게 진짜 문제다. 가방끈으로 치자면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얼치기 학력을 가진 사람도 하지 않을 이상한 행동과 말들로 사회 밖으로 추방당하는 일도 여기서 멀지않다. 과유불급(過猶不及)과는 격을 달리해도 아는 것이 적을수록 확신이 커지는 탓이 크다. 또 지고지순하게 보이고 심지어 약자와 함께 하면서도 자기를 과대 포장하는 성향 탓에 느닷없는 성희롱 같은 1차원적 사고를 쳐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복기해 보면 그 위에는 포퓰리즘 정치의 보이지 않는 프레임이 있었고 심지어 사회에 가득 찬 여러 형태의 분노를 지도층에 돌리는 법을 알던 사람들이었다. 사실과 지성이 이들에게 통할 리 없다. 오로지 알 수 없을 억울함에 가득 찬 지지층의 감성에 호소하는 지도자에 끌려 꼭대기에 있는 정치판부터 타락시킬 뿐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인 믿음으로 얼마나 판세를 기울게 만들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얼마 전 작고한 진보성향의 홍세화는 본인이 그 진영에 있었음에도 진보성향의 신문에 당시 대통령을 향한 칼럼 한번 쓴 죄(?)로 지지층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의 말대로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다’라는 얘기는 시대를 넘어 지금이나 그때나 개인적인 믿음이 갖는 신념이 얼마나 불필요하며 역사를 퇴보시킬 수 있는 더 큰 죄목이었음을 여지없이 증명하고 있다. 단순히 글 쓰는 이의 진정이 잘 전달되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칼럼을 쓸 정도의 글쓴이라면 대개 중학생 이상 정도의 학력 소지자가 이해가 가는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일들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생각과 조금만 달라도 바로 튀어나오는 신념만 강한 사람들의 말들은 여전하고 상대진영이나 심지어 같은 진영이라도 몰아세운다. 이분법, 정치가 팬덤화되면서 생긴 무조건 적인 외면, 우리 아니면 적이란 조급함과 무식함이다.

홍씨가 당시 정권의 핵심부에 있는 586운동권에게 "제대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르는 민주건달"이라고 한 말 정도가 그렇게 거슬린 말이라면 죽을 사람은 지금도 깔려있다. 보수 역시 이를 참칭한 죄목이 크고 진보는 모양새에 불과한 무지한 신념에 불과하다는 결말로 여겨진다. 그야말로 총선끝 판세는 보수가 두려워 하는 앞으로 전개될 무지막지하고 뭣도 모를 사람들의 신념없는 그것이 아니다. 그리고 진보가 걱정하는 언제 보수가 부활할지 모를 막연한 두려움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어렵게 쌓아온 민주주의가 어떤 식으로 지켜지거나 무너져 가는지를 지켜봐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다.

문기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