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관칼럼] 역사의 쓸모

2024-06-11     차종관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작용하는 힘은 한 국민뿐만 아니라 좀 더 넓은 범위에 걸친 원인으로부터 나오듯이, 사회 전체를 바라보며 그 작용을 관찰하지 않으면 개개의 부분적인 작용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라고 역사가 인류 전체에게 기여하는 의미에 대해 말했다.

역사는 사회 전체를 하나의 실체로 바라보는, 즉 인간 개개인의 밖에 존재하는 외재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는 외재성 외에도 그것이 실체가 되기 위해서 사람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는 성질을 갖는다. 이것을 역사의 사회성 내지는 영향력이라고 말한다.

토인비는 ‘역사연구’에서 21개의 문명을 비교하며 그 비교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문명 단일론에 관한 태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말하기 좋아하는 일부 서구인들이 그에게 ‘21개의 다른 사회 표본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은 다만 서구 유럽의 문명뿐이지 않으냐’라고 따져 물었을 때,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문명 단일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일종의 문명적 우월감을 표현한 것으로 근대가 서구 유럽인들에게 심어 놓은 다양한 역사와 사회, 그리고 경제라는 조직화 된 그물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유럽이 경제적, 정치적 통일과 같은 역사 발전 과정에서 실현한 매우 현실적 안목이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 잔존하는 쇄국적 문화정책이나 문명사적 몰이해로 인해 경험한 불행한 역사의 흔적은 오늘 우리 시대가 겸손히 사유해보아야 할 귀중한 역사적 교훈이 된다.

19세기 중국의 철인 황제 건륭(乾隆, 1736~1795)이 영국의 조지 3세의 친서를 받은 후 보여준 예의 바른 거절의 예가 있다.

건륭은 조지 3세가 매카트니 경을 통해 친절하게 외교적 격식에 맞춰 중국 황제에게 서신으로 보낸 부탁을 거절했다. 중국 사신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중국이라는 타문화를 존중해 무릎을 꿇고 황제를 알현하는 예법을 몸소 익혔고, 조지 3세의 친필 서신과 함께 교역을 위한 항구 개방을 요청했다.

하지만, 건륭은 영국에는 중국인들이 필요로 할만한 물건이 없으므로 교역할 수 없다는 거절과 함께 외국 사신은 중국에 거주하는 동안 중국 예복을 입어야 한다고 강요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 조야에서는 중국에 대한 비난이 난무하게 되었고, 중국과 유럽인들로부터 건륭은 거만한 자, 또는 오래가지 못할 자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또 하나의 예로, 20세기 독일이 인류 역사 발전에 끼친 해악성에 관한 사례를 들 수 있다.

근대 독일은 18세기 엄청난 지적 성취를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이해의 후진성과 철학적으로 그것의 역할에 소극적으로 대처해 인류에 심대한 악행을 저질렀다.

독일 철학자 앤드루 보위(Andrew Bowie)는 18세기 후반부터 독일은 철학과 음악적 창의성이 대단히 강렬하게 꽃을 피웠던 독일의 실패를 가리켜 사회정치적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한 것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다른 유럽의 국가들은 독일보다 열등한 사상적 지반에 놓여 있었지만, 그들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변혁을 통해 오히려 독일보다 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이룩해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구조화된 봉건 사회를 타파해야 한다는 요구에 맞춰 새로운 형태의 생산 및 교역 확장과 함께 국가와 사회, 그리고 거기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역할을 향상시켰다.

하지만, 독일은 자신들의 지적 성취와 창조적 문예력을 독일 문화의 한 부분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사회정치적 변화에서 전혀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이에 대해 독일 시인이자 사상가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는 혁명보다 철학을 먼저 이룬 것이 칭찬을 받아야 할 일인지 비판을 받아야 할 일인지에 관해서는 후손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하이네의 진언을 오늘 여기서 성찰할 경우 역사에 작용하는 힘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독일 사회가 역사 발전과 그것의 쓸모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이해했다면 독일과 유럽 전체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역사적으로 분명 이득을 보았을 것이다.

역사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정의(definition)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그것의 현실성이 새로운 미래를 위해 무엇을 성찰해야 할지 재정의하게 도와준다.

역사, 즉 과거는 우리에게 낯선 면모를 가지고 다가오지만, 그 낯섦을 설명하고 때로는 갱신과 변혁이라는 새로운 기초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에 관한 관심 사이에서 균형을 찾도록 도와준다. 이것이 역사의 쓸모이다.

차종관 세움교회 담임목사, 전 성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