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3년] 평화와 공포 사이 접경지 사람들, 대북전단 뿌리는 단체들에 고함

2024-07-08     박홍기·이석중

한두번도 아니고… 시큰둥한 주민

육안으로 북녘 보이는 통일촌마을

외국인 관광객 하루평균 2천명 방문

DMZ는 관광객 작년 37만여명 달해

"탈북민 단체가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데도 인권 때문에 제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민통선에 사는 주민들도 인권이 있습니다."

6월 27일 경기 파주시 군내면 통일촌 마을에서 만난 이완배 이장은 중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완배 통일촌 마을 이장.

북한이 지난 5월 28일부터 7차례에 걸쳐 대남 오물 풍선을 부양한 가운데 접경지역인 파주 주민들은 불안감을 표하며 탈북민 단체 등의 대북 전단 살포를 멈춰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완배 이장은 "북한이 강경 대응한다고 하면 실질적으로 피해를 보는 건 민통선에 사는 우리 주민들"이라며 "상황이 악화되면 주민들은 농경지로 나가는 것도 통제당한다. 대북 전단을 살포한 탈북민 단체가 이곳에서 살아봐야 현실을 직시할 것"이라고 분개했다.

박경호 통일촌커뮤니티센터장 "지역 어르신들은 ‘전쟁 나면 그냥 집에서 죽을래’라는 농담을 하실 정도로 방공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것도 힘들어 하신다"며 "이런 상황(고령화)에 북한에 빌미를 제공해 줄 필요는 없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만들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남북 관계 경색에 생계 우려

통일촌 마을은 박정희 대통령의 ‘재건촌의 미비점을 보완한 전략적 시범농촌을 건설하라’는 특별 지시에 따라 1973년 8월 건립됐다. 첫 입주자는 제대 장병 40호, 지역 원주민 40호로 제한됐다. 건립 당시 이스라엘의 키부츠 촌을 본떠 낮에는 일을 하고, 유사시에는 전투에 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통일촌 농산물 직판장 전경.

통일촌 마을 주민들이 북한의 혹시 모를 강경 대응에 불안해하는 이유는 농경지 통제도 있지만,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직판장의 경제적 타격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직판장은 다양한 기념품과 마을 사람들이 직접 농작한 특산물을 판매하며 마을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직판장에서 일하는 A씨(54·여)는 "지금 당장 문제는 없지만 상황이 악화돼 마을이 통제되면 더 이상 관광객 방문도 힘들어질 것"이라며 일자리를 잃게 될까 걱정하는 마음을 전했다.

파주시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관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관광객 숫자는 ▶2022년 12만5천597명 ▶2023년 37만7천367명 ▶2024년(6월14일 기준) 20만2천640명에 달한다. 2021년의 경우 코로나19로 방문객 수가 적었지만 2022년 이후부터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파주시 관계자는 설명했다.

6월 27일 파주 군내면 통일촌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농산물 직판장을 이용하고 있다.

이완배 통일촌 마을 이장은 "통일촌 마을은 날씨가 좋으면 육안으로 북한 땅이 보일 정도로 북한과 인접해 있어 외국인 관광객이 하루 평균 2천 명씩은 온다"면서도 "지속적으로 재난 문자를 받게 되고 남북 관계가 악화된다면 누가 관광을 오겠느냐"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오물풍선보다 일자리 잃을까 걱정

"남북관계 악화 돠면 누가 오겠나"

일대 주민들 대붇전단 살포에 분개

◇동요 없이 차분한 반응도..."오물 풍선 정도는 눈 하나 깜짝 안 해"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있는 반면 큰 동요 없이 차분하게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주민도 많았다. 올해로 52년을 맞은 통일촌 마을은 기자가 찾은 이날도 무더운 날씨에 밭을 일구며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는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B씨(70)는 "부모님 고향이 이곳이라 어릴 적부터 와서 살게 됐다"며 "북한에서 오물 풍선을 뿌려도 마을 주민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북한의 이런 비상식적인 대응이 한두 번도 아니고 풍선을 무서워 하겠느냐"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솔직히 이곳은 오물 풍선보다도 지뢰 같은 게 더 무섭다. 우리 어머니도 지뢰를 밟고 돌아가셨다"며 "풍선 안에 오물이 아닌 다른 게 있다면 전쟁 선포나 마찬가지인데, 북한이 그 정도까지 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주민 C씨(70대) 역시 "북한에서 삐라나 오물 풍선을 보내는 행위는 걱정되지 않는다"며 "주민들은 도발 행위 자체에 불안감을 갖는 게 아니라, 그 행위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것"이라고 답답함을 표했다. 이어 "처음 대북 확성기를 틀었을 때는 잠도 잘 못 자고 무섭기도 했다"면서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1~2년 지나니까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이같은 주민들의 목소리에 대해 박경호 통일촌커뮤니티센터장은 "지역 어르신들은 ‘전쟁 나면 그냥 집에서 죽을래’라는 농담을 하실 정도로 방공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도 힘들어 하신다"며 "이런 상황(고령화)에 북한에 빌미를 제공해 줄 필요는 없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만들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6월27일 파주시 월롱면 주민들이 탈북자 단체에 대북전단 살포를 멈춰달라며 집회를 하고 있다.

◇"불안해서 수면장애"...파주 월롱면 주민들, 대북 전단 반대 집회

같은 날 파주시 월롱면 남북중앙교회 앞에서는 20여 명의 주민이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반대집회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북한과 인접한 월롱면 주민들이 대북 전단 살포로 불안한 상황이라며 탈북민 단체에게 이 같은 행동을 멈춰달라고 촉구했다.

이달태 영태5리 이장은 "불안해서 농업을 이어가기가 어렵고 심지어 수면 장애에 시달리는 주민도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누가 와서 살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대북 전단을 살포한 건 우리가 아닌데 왜 우리가 불안에 떨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마을 주민들은 전쟁이라도 날까 노심초사 하고있다"며 "자유의사 표현도 좋지만 이곳 주민들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월 27일 파주시 월롱면 주민들이 ‘주민을 위험으로 몰아 넣는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하라’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걸고 집회를 하고 있다.

앞서 6월 20일 오후 김경일 파주시장은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현장을 찾아 살포 행위를 멈춰 달라고 항의한 바 있다. 중부일보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그는 "대북 전단과 관련해선 할 말이 없다"고 짧게 답한 뒤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방공호 오르는 것도 힘든 주민들

"전쟁 나면 집에서 죽을래"농담도

◇위험구역 지정 검토하는 지자체들...북한 전문가 "정부도 합당한 대응 필요"

현재 파주시는 관내 전 지역을 위험구역으로 지정하고 대북 전단 살포자의 출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검토 중이다. 다만 파주시만의 문제는 아니기에 경기도 차원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재난 안전법상 위험구역 설정은 지자체에서 가능하며 현재 통일부에 법 개정을 요청 중"이라며 "대북 전단 살포시 신고를 하는 신고제를 검토 중이며 경찰청에 수사 요청을 통해 과태료 부과 등이 가능한지 확인 중이다. 접경지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만큼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자제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통일촌 마을회관에서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북녘땅.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에 대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심판 대상인 남북관계발전법 제24조는 ‘누구든지 전단 등을 살포해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 조항이다. 이를 어길 경우 최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헌재는 "해당 조항이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장하고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면서도 "이 조항에 따라 제한되는 표현의 내용이 매우 광범위하고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할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한 것으로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이날 헌재 결정으로 북한에 전단을 살포하는 것을 금지하는 남북관계발전법 조항은 즉시 효력을 상실했다.

정부는 헌재의 해당 판결을 근거로 원칙적으로 대북 전단 살포를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유관기관 간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상황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필요한 경우 현장 사정을 고려해 관련 법령 등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제재할 방법과 수단은 현실적으로 찾기 어렵다. 신고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고 누가 신고할지 의문"이라면서도 "북한에서 대남 오물 풍선 등을 지속적으로 보낸다면 정부에서도 이에 합당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홍기·이석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