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농업왕] 권영걸 당골농원 대표 "욕심 버리고 기본 충실한 포도 재배… 달콤함이 팡팡"
여름 대표 과일 중 하나인 포도의 우리나라 재배 역사는 불과 123년밖에 되지 않는다.
1901년, 안성 구포동성당에 부임한 앙투안 공베르 신부가 미사에 사용할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성당 마당에 포도 묘목 20여 그루를 심은 일이 그 시초다.
이런 역사가 더해지며 오늘날 안성은 화성, 김천, 영동을 비롯해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포도 산지로 거듭났다.
그런 안성에서 40여 년간 달콤한 포도를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는 권영걸(65) 대표를 만나 그만의 포도 이야기를 들어봤다.
◇40년 포도 인생, 한 송이의 달콤함을 만드는 안성 토박이=권 대표는 현재 농원이 있는 안성시 일죽면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처음 접한 작물은 담배였지만 2년 만에 그만뒀다. 이후 아버지와 주변의 권유로 포도를 만나게 됐다.
1984년부터 본격적인 포도 농사를 시작한 권 대표는 복숭아와 축산업까지 병행하며 규모를 키워왔지만,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지난 2022년부터 포도 농사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복숭아는 특성상 한여름에 수확해야 하는데, 3년 전 출하 때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출하 시기를 못 맞췄다"며 "나이도 들고 이대로는 농사를 계속하기 어려울 듯해 한 가지 작물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현재 권 대표의 포도밭은 약 1만3천800여㎡ 규모에 달하며, 이곳에서 거봉과 자옥, 샤인머스캣 총 3종의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욕심 내지 않고 차근차근, 좋은 포도를 만드는 비결=포도는 손으로 가지와 알맹이를 일일이 솎아야 하는 등 섬세한 작업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작물이다. 그만큼 재배 조건이 까다로워 무턱대고 처음 농사를 시작하다 병충해나 동해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권 대표는 "주변 권유로 심은 신품종이 동해로 몽땅 썩어버리거나 여름철 탄저병 방제 시기를 놓쳐 농사를 망친 적도 많다"며 농사 초기 시행착오를 겪은 일화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의 농사 비법은 ‘과유불급’이다.
그는 "한 가지에 적정 착과수를 유지해야 고품질 포도가 나온다"며 "더 많은 알을 얻기 위해 욕심부려봤자 병충해를 입을 확률이 높아지고 한 가지에 자란 모든 포도의 맛도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한 가지에 포도가 많이 열리면 10송이 정도는 과감히 잘라낸다는 그는 "싹이 나올 때부터 수확할 때까지 필요한 작업을 제때 하는 성실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탄저병을 막기 위해 비 오는 날 전후로 농약을 살포하고, 잔가지를 정리하고, 불필요한 송이를 골라내는 등 차근차근 기본을 지키는 일이 좋은 포도를 만드는 비결이다.
권 대표는 "포도를 맛보면 1년 농사를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판가름 난다"며 "농사는 결국 ‘기본’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렇게 농사의 기본을 지켜온 그의 포도는 지난해 경기도농업기술원 품평회에서 포도 부문 대상을 받으며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물론 상품성도 뛰어나다. 시내 직판장에서 판매하는 그의 포도는 전국에서 찾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권 대표는 "택배 주문만 해도 1년에 800~900건이 넘고, 10년 넘게 찾아오는 단골은 물론, 제주도에서도 포도를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끊임없는 시설 투자와 연구, 맛있는 포도 위해 멈추지 않는 노력=권 대표는 오랜 시간 쌓아온 내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맛있는 포도를 만들기 위해 시설 투자와 연구에도 힘쓰고 있다.
권 대표의 포도밭은 지대가 높고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안성 내 다른 밭보다 4월 평균 기온이 2~3도 낮다. 그만큼 찬 공기가 머무는 기간이 길고 일교차도 커 처음 싹을 틔워야 할 시기에 자칫 동해 피해를 볼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는 농업용 열풍 팬을 도입했다.
권 대표는 "열풍 팬을 작동하면 따뜻한 바람이 밭 온도를 높여주고, 반대로 여름철 기온이 30도 이상일 때는 바람을 일으켜 밭 내부 온도와 습도를 낮춘다"며 "팬을 도입한 덕에 올해 초 동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올해 일죽포도연구회 회장을 맡아 지역 농업인 10여 명과 함께 신품종 연구와 농업 노하우 공유에 앞장서고 있다.
이 밖에도 루비로망, 바이올렛킹, 오로라블랙 등 10여 종의 신품종 포도를 심어 보며 밭에 적합한 작물 선별과 품종 다양화에도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최고의 포도를 찾기 위한 일'이라고 말하는 그는 "과일의 품질은 모든 수확물이 높은 당도를 얼마나 균일하게 낼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며 "하나하나 심어보고 맛보는 과정이 있어야 내 밭에서 최고의 과일을 만드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포부를 묻자 권 대표는 "한 명의 농부로서 더 맛있는 포도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며 "힘닿는 데까지 지금처럼 기본을 지키며 성실히 포도를 재배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조성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