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전통사찰] 명상도 놀이처럼… 법당 메운 아이들 웃음소리 부처도 웃었다

⑦양주 청련사

2024-08-08     주수완
양주 청련사 전경. 앞쪽은 현대식 건축이지만, 뒤쪽은 전통적인 사찰건축양식과 배치를 따르고 있어 옛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주수완

◇옛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 이룬 절= 양주 청련사에서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어린이들을 위한 명상 교실이 열린다고 해서 다녀왔다. 양주까지는 서울에서 거리가 꽤 멀 것 같지만, 필자가 사는 서울 구기동에서는 차로 불과 30분대의 거리다. 명상 행사의 정식 명칭은 ‘안정 어린이 명상 플레이’.

‘안정’은 여기서 많은 뜻이 담겨있는 것 같다. 겉으로는 ‘어린이들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명상이라는 뜻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청련사의 옛 이름 안정사(安定寺)를 떠올리게 한다. 청련사가 양주에 자리를 잡은 것은 2008년부터이지만, 청련사의 역사는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천년고찰이다.

엘리베이터 있는 천년고찰

청련사의 옛 이름은 안정사

서울 왕십리 재개발로 인해

양주로 새 터 잡은 천년고찰

엘레베이터 타고 진입하는

현대식 고층건축 편의 설계

예불공간은 전통 목조건축

안정사 법당 그대로 옮겨와

청련사는 원래 서울 성동구 무학동길 35, 현 왕십리KCC스위첸 아파트 언덕 정상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원래의 터전을 빼앗기고 양주에 새로 터를 잡아야했던 아픈 역사가 있다. 현재 안정사터에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마애불이 남아있어 옛 일을 증언하고 있다. 여하간 그런 청련사이기에 ‘안정 명상’이란 제목은 더 각별히 와닿는다. ‘안정’이란 이름은 청련사가 운영하고 있는 안정불교대학에도 남아있다.

명상교실 제목의 끝에 있는 ‘플레이’도 눈길을 끈다. 명상은 정적인 느낌이고 플레이는 동적인 느낌인데 이 둘이 함께 있는 것이 흥미롭다. 과연 어떤 프로그램일까? 어린이들도 명상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더 근원적으로는 과연 명상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어린이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의문이었다. 사실상 어린이들의 관심이 아니라 부모들의 관심일 텐데, 아이들에게 이런 명상을 경험하게 하고 싶은 부모가 많을지부터가 의문이었다. 이런 궁금증을 안고 청련사로 향했다.

도착해보면 청련사는 옛 안정사처럼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아마 처음 청련사에 오신 분들은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천년고찰이라는 분위기와는 달리 커다란 현대식 건축이 높이 솟아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실 것이다. 여기가 절이 맞는지, 이런 곳에서 명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천년고찰의 진면목이 펼쳐진다. 언덕 아래쪽은 현대식으로 세워 편의를 도모했지만, 위쪽 예불 공간은 전통적인 목조건축으로 지어진 법당들이 법식에 맞게 세워져 있어 여느 고찰과 다르지 않다. 특히나 대웅전은 원래 안정사에 있었던 법당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기에 더욱 뜻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환영사를 하시는 청련사 회주이자 태고종 총무원장이신 상진스님. 사진=주수완

위에서 펼쳐지는 청련사의 가람배치는 조선시대 사찰의 전형적인 배치인 4동중정형과 누하진입을 따르고 있다. 4동중정이란 네 채의 건물이 가운데 마당을 둘러싸고 배치된 형식이다. 보통 가장 안쪽에는 대웅전과 같은 법당이, 좌우, 그러니까 동서 방향에는 원통전(관음보살), 명부전(지장보살)이 놓이고, 앞쪽 그러니까 남쪽에 누각이 놓이는 구조다. 주차장에서 본 커다란 현대식 건축이 청련사에서는 누각인 셈이고, 그 누각을 통해서 법당으로 진입하기 때문에 ‘누하진입’이라고 한다. 다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진입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청련사는 여기서 다소 확장된 개념을 보여주는데, 좌우에 배치된 건물이 원통전과 명부전뿐 아니라 종무소로 사용되는 건물과 대적광전 건물이 더 배치되어 있다. 이 건물들은 누각의 현대식 건축과 중요 전각인 전통건축 사이에 있어서인지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건축으로 지어졌다. 명상 행사는 이 중에서 대적광전에서 열렸다. 전통적인 법당도 중요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예불드릴 때의 편의성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냉난방시설도 잘 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대형법당이 필요하다. 청련사는 양주로 이전하면서 새로 지어지긴 했지만 오랜 전통을 반영하면서도 현대식 사찰이 줄 수 있는 이점을 고루 갖춘 절이 되었다.

청련사 대적광전을 가득 메운 어린이 참가자들. 사진=주수완

◇아이들에겐 모든 놀이가 곧 명상=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시작이었는데, 들어선 순간 참가하는 어린이들이 가득 들어선 모습에 놀랐다. 하루 정원이 50명인데 만석인 것 같았다. 이렇게 학부모들이 명상에 지대한 관심이 있을 줄 미처 몰랐고, 또 아무리 부모가 보내려고 해도 요즘 아이들은 관심이 없으면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 행사가 나흘에 걸쳐서 하는 행사이니 결국 200명의 어린이가 참가했다는 것이 된다. 한국 불교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다.

키즈명상 원데이 클래스

올 여름 첫 개최 매일 만석

나흘간 200명 어린이 참가

대형법당 대적광전서 행사

주의 집중·감각 지각 명상부터

정서지능명상 세 과정 구분

전문 명상지도자들과 교감

행사에 앞서서는 청련사 상진(常眞) 회주스님의 환영사와 이번 명상 프로그램을 만든 한국통합명상협회 장효산 회장의 프로그램 소개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불교방송에서 어린이들에게도 불교를 알리기 위해 기획하고,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한국통합명상협회가 추진한 것인데, 지원을 받은 만큼 참가비는 무료였다. 물론 그래서 많은 어린이가 참여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루 50명이 제한인 프로그램에 이렇게 만석을 이룬 것은 그만큼 명상에 대한 수요가 컸음을 의미한다.

주의집중명상 차원에서 행해진 요가 프로그램. 어려운 요가자세를 시연하는 명상지도 선생님들과 그럼에도 잘 따라하는 어린이 참가자들. 사진=주수완

진행과정에서 불교방송과 명상협회는 이 프로그램을 어디서 진행할 것인지 여러 사찰에 타진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찰들이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다양한 불교행사가 겹치는 상황에서 이러한 행사를 위해 대형 공간을 나흘간 내어줄 여력이 되는 사찰은 의외로 드물었다. 다행히 청련사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통 법당과 함께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법당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드디어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다. 전체적인 순서를 보면 명상을 주의집중명상, 감각지각명상, 정서지능명상의 세 과정으로 구분하고, 각각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었다. 아이들이 잘 따라올까 싶었지만, 노련한 전문 명상지도자 선생님들이 팀을 나누어 재밌는 설명과 교감을 통해 접근하니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푹 빠져드는 것이 보였다.

주의집중명상 차원에서 행해진 요가 프로그램. 어려운 요가자세를 시연하는 명상지도 선생님들과 그럼에도 잘 따라하는 어린이 참가자들. 사진=주수완

흔히 명상이라고 하면 좌선만 생각하기 쉽다. 필자도 그랬다. 그러나 ‘플레이 명상’처럼 꼭 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선불교에서는 ‘일상심시도’, 즉 일상의 모든 것이 곧 깨달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에게 어쩌면 모든 놀이도 곧 명상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요가명상은 혼자서, 때로는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진행했는데 처음에는 어린이 대상이니까 난이도가 낮은 요가만 할 줄 알았는데, 꽤 난이도가 높은 자세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제대로, 혹은 최소한 제법 따라 하는 것을 보고, 아, 역시 아이들은 무한한 능력을 지녔구나 새삼 깨달았다.

오후에 진행된 정서지능 명상 프로그램. 사진=주수완

대학생을 가르치는 것보다 유치원,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 평소 생각해 왔다. 그런 아이들에게 특히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명상을 가르친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명상지도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집중해서 따라 하고, 보고, 들었다. 이러한 집중이야말로 첫 번째 단계인 주의집중명상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었으리라.

싱잉볼 명상도 그랬다. 전통적으로는 좌종(坐鐘), 즉 앉아서 치는 종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싱잉볼이라고 하니 더욱 그것이 내는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이 소리를 들으면 신비한 느낌에 저절로 명상에 잠기는 느낌이 드는데, 아이들이라고 전혀 예외가 아니었다. 싱잉볼을 나눠주고 치는 법을 알려주니 그 신비한 소리를 듣느라 여념이 없다. 이 역시 집중이다. 굳이 아이들에게 집중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집중하고, 그것만 생각하다 보면 그것이 삼매에 빠지는 길이다.

일상 모든 것이 곧 깨달음

일반적 좌선 명상이 아니라

팀별 요가명상·싱잉볼 명상

놀이식 체험 예상밖 집중도

불교는 자신 안에서 찾는 것

누구나 실천하는 쉬운 불교

어린이 명상체험 가능 이유

오전 프로그램을 마치고 준비된 점심공양을 시작할 무렵, 청련사의 회주스님을 따로 찾아뵈었다. 상진 스님은 작년 7월부터 태고종 제27대 총무원장에 취임하셨기에 이제 1년 정도 지나신 셈이다. 필자로서는 뜻하지 않게 청련사에 갔다가 태고종의 가장 높으신 분을 뵙게 된 것이었다.

어린이 포교와 그 가능성을 쉽게 설명해주시는 태고종 상진 총무원장 스님. 사진=주수완

총무원장 스님으로부터 앞서 설명한 명상 프로그램의 상세한 배경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필자는 덧붙여 스님께 과연 아이들이 이런 명상 수업을 잘 해낼 것이라고 예상하셨는지 여쭤보았다. 스님은 과거에는 사찰마다 유치부, 초등부, 중등부가 있어 어린이, 청소년 법회가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유지운영이 안 될 정도로 어린이·청소년 불교인구가 줄어들어 안타깝다고 운을 떼셨다. 이어서 서양의 종교와 철학은 외부 대상과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진리를 찾지만, 불교는 자신 안에서 찾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경험이 부족한 어린이들도 자신을 관찰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어린이 명상도 가능한 것이라는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 나아가 사실 부처님은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며 그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쉽게 설명해 주셨는데, 그것이 오랜 역사를 지나며 너무 어렵게 변해버린 것이어서 원래의 부처님 말씀대로 어린이일지라도 실천할 수 있는 쉬운 불교를 지향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말씀을 듣고 나서 이런 어린이 명상체험이 가능한 이유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었다.

청련사 대웅전에 봉안된 감로탱 세부. 멋진 꽃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여인이 눈에 띈다. 사진=주수완

하루 여행코스로 손색없어

대웅전·명부전·원통전 봉안

목조아미타여래삼존불좌상

석조지장보살좌상 등 도유산

크지 않지만 집중력·정신력·

중생 꿰뚫는 듯 눈매 인상적

 

사찰 앞엔 시립장욱진미술관

민복진미술관 자리해 핫코스

◇청련사부터 미술관까지, 하루여행 ‘추천’=점심공양 후 오후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필자는 틈틈이 대웅전, 명부전, 원통전을 둘러보며 그곳에 모셔진 불상과 불화를 살펴보았다. 대웅전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삼존불좌상과 명부전의 석조지장보살좌상, 원통전의 목조관음관음보살좌상은 모두 1600년대에 조성된 것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렇게 세 법당의 주존으로 봉안된 상들이 모두 17세기에 조성된 불상이라는 점은 청련사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이들 불상들은 크기는 크지 않지만, 그럼에도 오히려 더 법당을 장악하는 고도의 집중력과 강한 정신력, 중생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매가 인상적이다. 대웅전의 감로탱 역시 1880년 그려진 불화로 이 그림을 통해 조선 후기의 불교의식과 민속의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특히 감로탱 아래쪽 중앙에는 꽃이 그려진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여인이 그려져 있는데, 무척이나 매력적인 모습이다. 주변의 아이들도 넋을 놓고 보는 것이 재밌다.

청련사 명부전의 석조지장보살상. 사진=주수완

청련사 바로 앞에는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과 민복진미술관도 자리하고 있어 한국 현대미술의 두 거장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청련사와 함께 연계해 다녀오면 충분히 멋진 하루 여행코스가 된다.

안정 어린이 명상 플레이 행사는 끝났지만, 이번의 뜨거운 열기로 보아 내년에도 열리지 않을까 기대된다. 불교를 떠나 어린이들이 명상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얻고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런 행사가 앞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는데 청련사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수완 우석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