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택칼럼] 엄마 리더십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2주간의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4년마다 오는 선물과 같은 시간이었다. 파리에서 유학했기에 더욱 남달랐던 이번 올림픽에 우리나라 선수단은 작은 규모로 참가하였지만 역대급 결과를 내면서 무더위로 지친 국민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주었고 큰 위로를 선사하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특별히 조명받은 부분은 코치와 감독의 리더십이 아닐까 한다. 특히 태권도 대표팀 오혜리 코치가 유독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오 코치는 서건우 선수의 16강전에서 2라운드의 판정에 승복하지 못하고 직접 코트에 뛰어들어 강력히 항의하였다. 오 코치의 항의는 곧바로 받아들여져 판정이 번복되었고, 이후 이 경기의 극적인 승리로 서건우 선수는 8강에 이어 4강까지 진출하였다.
비록 경고를 받았지만 오 코치의 ‘엄마 리더십’은 큰 울림을 주었다. "뒷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선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뭐든지 해야 했다." 경기 후 오 코치의 인터뷰는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한국의 어머니들 모습을 연상케 했다. 아쉽게 메달은 놓쳤지만 오 코치는 인터뷰에서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에 끝까지 최선을 다한 제자를 칭찬하고 후일을 기약하며 다시금 눈시울을 적셨다. 아마도 서건우 선수는 코치의 위로와 격려를 통해 더욱 성장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4년 만에 동메달을 되찾은 전 역도 국가대표 전상균 선수도 이번 올림픽에서 특별히 조명을 받았다. 전 선수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역도 최중량급에 출전해 4위를 기록했는데, 3위였던 러시아 선수가 2017년 재검사에서 런던 올림픽 당시 금지약물 투여 사실이 밝혀졌고 7년이 흘러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정식으로 메달을 수여받게 되었다.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 챔피언스파크에서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건 그는 인터뷰에서 "그래도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것 같다"며 감격스러워 했고, "당시 지도해주셨던 이형근 감독님이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처음 이 소식을 접하시고 진짜 많이 좋아해주셨는데 안타깝게도 돌아가셔서 그분께 제일 많이 고맙다는 말을 해드리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올림픽과 같은 무대에서는 주로 메달을 딴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뒤에서 뒷바라지하며 동고동락한 지도자들은 대체로 조명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선수들은 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어떠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을 지도자들에게 돌린다. 천주교 사제 양성에 종사하는 필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 학생들이 나중에 사제가 될 때 양성을 담당했던 우리 교수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중요한 것은 1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계기로 삼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기에 한계는 늘 존재하며, 실패와 좌절은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챔피언은 한 번도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아닌, 실패를 딛고 일어서 도전을 멈추지 않은 사람이다.
신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때 필자가 맡던 학년이 총장배 축구대회에서 아쉽게 패한 적이 있다. 그때 학생들을 방에 불러 아쉬움의 술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신부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패배를 경험했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승리보다 실패가 나를 더 성장시키고 발전하게 한 것 같아. 그러니 실망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지도자의 역할은 최고가 되도록 갖은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닌, 선수가 실패와 좌절을 딛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하며 동반하는 것이다. 오늘날 지도자 리더십이 큰 위기와 도전 앞에 서 있다. 그러나 위기와 도전은 발전의 기회다. 과거의 권위 중심적 리더십이 한계에 다다랐다면, 오늘 필요한 리더십은 동반하는 리더십, 공감의 리더십, 의리의 리더십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오 코치가 보여준 ‘엄마 리더십’이다. 이번에 고생한 선수들과 지도자들께 경의를 표하며, 우리 사회가 실패를 딛고 일어서도록 서로 격려하는 따뜻한 사회가 되길 희망해본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