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석칼럼] 당신의 실종(失踪)
실종은 사회적 책임이다. 송혜희 가족사 같은 비극이 다시 우리사회에서 없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온 사회의 관심과 노력만이 해결책이다. 당신도 실종될 수 있다.
실종이라는 말은 사람의 소재를 알 수 없거나 죽었는지 살아있는지조차 모르는 일을 뜻한다. 송혜희 라는 이름을 누구나 전국의 길거리 현수막이나 편의점에서 보거나 들어본 기억은 20년이 넘는다. 전국에 뿌려진 이름 탓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송혜희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지금 중년의 가장이 되어 있을 것이고 불혹에 이름을 접한 사람은 이순(耳順)에 이르러 형상마저 아련하다. 들어본 기억이나 한번쯤 떠 올렸을 그 이름은 사실상 아버지의 힘에서 나왔다. ‘실종된 우리 딸 송혜희를 찾아주세요’라는 글과 사진은 해변가에서도 심지어 도심 골목에서도 셀 수 없이 걸려 졌고 뿌려져 국민 모두의 가슴에 새겨져 있었다. 딸을 찾으려는 아빠 송길용 씨의 애끓는 노력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송혜희 역시 그렇게 25년간 이어져 왔다. 하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애 얼굴이나 보고 죽으면 좋겠다고 소원한 아버지 송 씨는 끝내 딸을 죽었는지 살아있는데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 재회를 못 한 채 교통사고로 지난달 26일 세상을 떠났다. 이제야 매체들은 송 씨의 죽음에 송혜희의 실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이렇게 송혜희는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또 지나가고 있다. 지난 1999년 당시 17세 나이로 실종돼 아직도 찾지 못한 송혜희 사건처럼 18세 미만 미성년자 실종 사건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통계는 최근 12년간 실종 뒤 찾지 못한 미성년자가 총 130명,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미성년 실종사건은 81건이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송혜희는 실종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1999년 추운 겨울밤 평택시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하차가 마지막이다. 여러 정황이 있었지만 용의자도, 송 양의 행방도 결국은 확인된 바 없다. 대개의 실종은 이런 식이다. 송혜희 부모는 실종 이후 전국을 돌며 직접 딸을 찾아 나섰고 현수막과 전단은 대한민국에 안 걸리고 안 뿌려진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어머니는 딸의 실종 후 우울증을 앓다 먼저 세상을 등졌고 이후 희망을 버리지 않은 아버지 송 씨도 사망하면서 이 얘기는 이렇게 묻혀져 갈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숱하게 잊혀져가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의 미어지는 가슴에서다. 전국의 7할이 산지여서 아니면 저수지나 험지가 많아 찾기가 어려운 얘기도 아니다. 지금처럼 과학이 발전한 대한민국에 이렇게 실종자가 많은지 믿어지지 않는다.
송혜희 찾기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는 많고 또 많다. 송혜희처럼 실종 신고를 한 후 1년 넘게 찾지 못하는 장기 실종아동은 지난해만 해도 1천여 명이 넘는다. 무려 20년 이상 찾지 못하는 기막힌 경우도 90%나 된다. 대명천지에 말이 안 되는 일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여러 곡절이 담긴 실종은 사실상 정부나 지자체 등의 기관 의지에도 달려있다. 매일 발생하는 실종 아동들은 대부분 부모 곁으로 돌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송혜희처럼 가족의 비극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단순 실종 사건부터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빠른 신고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CCTV 등 곳곳에 인프라가 너무 잘돼 있다. 그래서 신고만 제대로 해도 실종 아동 수색 자체는 원만히 잘되는 편이라는 실종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은 반드시 귀담아들을 대목이다. 지금도 담배갑이나 미국처럼 우유박스에 새겨진 어린 아이들의 얼굴은 웃고 있다. 그럼에도 슬쩍 봤다는 장난식 신고전화 정도에 그칠 뿐 제대로 된 신고는 없다.
지문사전등록제도나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에서 실종아동 발생 시 초기 총력 대응을 의무화한 제도인 코드 아담 등 실종 아동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틀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지독한 실종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사실상 전문가들은 지문과 인적 사항이 등록된 아동의 경우 실종 사건이 발생하면 찾는 일은 수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 제도는 지난 2012년 도입된 제도로 이미 18세 미만 아동·청소년 3명 중 2명이 혹시 모를 실종 사고에 대비해 지문과 사진 등을 경찰에 미리 등록해 뒀다는 통계도 있다. 그래도 가야 할 길은 멀다. 굳이 이론을 따져 물을 일도 아니다. 무조건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사례를 찾아봤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에 기막힌 아이디어가 적용됐다. 모두의 관심사였다. 그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모두의 가정으로 배달되는 법정 홍보물에 실종된 아동들의 인적 사항과 사진 등을 게재했고 결국은 수 년여간 생사를 알 수 없었던 2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물론 지금도 여러 기업에서 이런 실종아동을 가족에 품으로 돌리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장기실종자가 수십 년 만에 가족과 만나고 홈쇼핑에서도 다시 가족을 찾은 사람이 보고 됐으며 어머니와 장애아들이 유전자 정보등록으로 무려 31년 만에 극적으로 만난 일도 생겨났다. 결코 우연의 일이 아닌 사회의 노력과 과학의 발전 끝에 생긴 일이다. 실종사건에 우연이란 없는 일이다.
적극적인 온 사회의 노력이 관심과 더불어 만들어진 일이다. 한국전쟁에서 헤어진 가족들을 수십 년 후 방송사에서 마련한 여의도 광장이나 매일 같은 방송을 통해 전 국민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 사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실종의 특성상 아동기에서 발생하는 사례가 다반사다. 일이 벌어졌어도 늦는 법은 없다. 가족을 더 하루라도 빨리 찾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 방안이나 더 쉽고 기발한 아이디어도 계속 덧붙여져야 한다. 오늘도 실종 가족은 울고 있다. 모두 대한민국의 한 가족이다. 송혜희를 다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문기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