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석칼럼] 독대(獨對)
과거, 독대는 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나 정치에 관한 이러저러한 의견을 나눔이었다. 이후에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독대는 비단 신하뿐이 아닌 정치선배나 측근, 심지어 상대진영의 실력자들과도 성사돼 지금까지 알려지고 있다. 이런 독대의 특성상 그 시간은 대개 은밀히, 혹은 아예 언론에 흘려져 엉클어지는 경우를 목격하기도 한다. 물론 미리 알려지는 경우 얘기는 처음보다 못한 일이 된다. 인터넷시대, 그리 가릴 것이 없고 비밀스러움도 그만큼 베껴진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런 독대가 지금의 정권에서 더 없이 어려워졌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말대로 유치해지기까지 하다. "만날 독대 얘기만 하고 앉아 있어 이것이 무슨 남북 정상회담이나 되느냐"는 얘기다. 알다시피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만남이 독대로 옮겨지면서 분위기는 이렇게까지 됐다. 독설이라기보다 유머스런 표현으로 당장 넘어가도 당과 대통령실 관계가 독대 요청이냐 어쩌느냐 하는 게 유치하다는 나 의원의 말은 새겨봄 직 하다. 국민의힘이 해야 될 일들에 대한 언급도 부족하고 아예 건들지도 못하는 상황이 빚은 일이다.
지금껏 여권 인사들은 정말 불필요하게 당정갈등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안건들에 대해 민주당의 반도 못 따라가고 있다. 투쟁력의 부족이라 말하기조차 민망하다. 문제는 이런 현실이 너무 오래가고 있다는 일반론이다. 대통령을 찍은 사람들이 자신의 손가락을 쳐다보고 있다면 얘기는 하나마나다. 결국 이런 호기를 놓칠 리 없는 민주당은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맹탕 만찬에 제대로 된 전열을 갖춰 지난 달 27일 급기야 ‘김건희 국정농단’ 태스크포스(TF)를 꾸리게 된다. 김 여사 관련 의혹을 본격 조사하겠다는 선전포고다. 당장에 2일 검찰이 명품가방 등을 수수한 의혹에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했고 명품가방 등을 건넨 최재영 목사도 같은 처분을 받았지만 그 기세만큼은 꺾이지 않고 있다. 무슨 거창한 국책사업에 쓰이는 테스크포스도 아니다. 매일 고무풍선을 우리 상공에 올려 간을 보고 있는 북한을 코앞에 두고도 지금 우리 정치는 이렇게 매일 그 밥의 그 나물이다.
물론 명품가방 논란이나 검사에 대한 탄핵까지 이런 일에 단박에 무슨 일을 올인 하겠다는 테스크포스를 만들겠다는 민주당의 결기는 대단하기 앞서 한 편의 잘 짜여진 시나리오다. 치밀하고 저돌적이어서 착한 국민의힘 선수들을 한방에 제압하기 충분하다.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저런 기막힌 생각들이 나올까 하는 의문도 있다. 다만 차분히 살펴보면 민주당 당원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몇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같은 생각이라 여겨진다. 심지어 민주당 내 몇몇 의원은 이런 분위기에 젖어 마치 초분을 다퉈 앞장이라도 안 서면 앞으로 있을 청사진에서 제외될 것 같은 눈치마저 감지되고 있다. 기히 수도권에 머무는 용산 근처에서 독대를 운운하는 사람들의 절박감이나 아니면 명품가방을 미끼로 지금도 감방을 가겠노라고 악을 써대는 최 목사의 깊은 속내마저 알 길은 없다. 그것은 단순한 애국심도 아니요 그렇다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천리안이 그들에게 있어 이리 혹은 저리 하는지도 솔직히 모른다. 다만 과거에 그랬듯이 이렇게 한 번이라도 최고자의 눈이나 심장에 각인이라도 되는 날에는 얘기가 달라져 서열이 바뀌거나 실력자로 변신하는 상황이 언젠가 전개되는 과거의 정치사로 대신하고 싶다.
최소한 지금까지의 매일 비슷한 독대 갈등 소식은 지지자들과 다른 한편으로 적진에서도 그 난리는 마찬가지다. 싸움이 아예 안 되는 형국에서다. 그야말로 정치 초보 여당 대표를 나무라 봐야 될 일도 아닌 것이 슬슬 꽁무니를 긁어 성사될 일도 아닌 탓이다. 급기야 찬스를 놓칠 수 있는 민주당이다. 대통령실이 2일 여당 일각에서 요구하는 김건희 여사의 대국민 사과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고 밝혀 이제부터는 초분 다툼이다. 진작부터 조롱 섞인 말로 용산을 자극한 결과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이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손바닥에 ‘왕(王)’ 자를 써 무속 논란에 휩싸이자 배우자가 구약성경을 다 외운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얘기부터 도대체 웃어야 할지 눈을 흘겨야 할지 감정만 구겨지고 있다. 여기에 검찰에게 김 여사가 39권 929장, 2만3145절 방대한 양의 구약성경을 외우는지 수사에 착수, 검증하길 바란다는 말은 당시 옆에 앉아 이를 듣고 웃는 이 대표를 즐겁게 하자고 한 말인지, 수사의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인지조차 헷갈리고 있다.
대통령이 과연 ‘모든 책임은 여기에 있다’고 말을 할 줄 몰라 안 하는 것인지 다른 무슨 사연이 있어 안 하는 것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도 없다. 대개의 상상력을 보태 만들어진 뉴스라면 그저 다행이다. 한 사람의 감정을 죄다 알기 이토록 어렵다는 생각 이외는. 임기를 보장하는 선거를 거쳐 자리에 올라 이제 절반이 간신히 넘어가는 시간, 대통령의 추락이 동반되고 있다. 뉴스의 절반이 대통령과 여당 대표에 대한 독대 이상설로 채워지는 시간은 단순히 방송사의 잘못이 아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불에 태울 힘이 당장에 없어서다. 한 대표는 분명 "윤 대통령과 중요한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독대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간 감정싸움이 미리부터 잘 짜여진 고스톱판이 아니면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독대를 둘러싼 기술적인 얘기들이 스캔들만 늘어나 점점 수렁에 빠지고 있다. 감정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워지는 이유다. 결국은 쉽게 봐야 하는 주제다. 재보궐선거 등 여러 사안이 겹겹이 앞에 있다. 에두를 일 없이 여당이나 용산에게 지금의 시간은 나락이다. 실력만큼은 자신했다던 보수라면 늦지 않았다. 보수는 늘 현실에 있어서다.
문기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