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수칼럼] 존 레넌의 경우

2024-10-13     주용수

"상상해 봐, 천국이 없는 세상을/ 그리 어렵지 않아/ 우리 발밑엔 지옥이 없고/ 머리 위엔 오직 하늘만 있는 그런 세상/ 상상해 봐, 모든 사람이/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봐, 국경이 없는 세상을/ 그리 어렵지 않아/ 죽을 이유도 없고/ 종교도 없는 그런 세상을/ 상상해 봐, 소유가 없는 세상을/ 네가 할 수 있을 거야, 그걸 믿어/ 탐욕도 없고, 굶주림도 없는/ 오직 형제애만 있는 그런 세상을/ 상상해 봐,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넌 아마 내가 몽상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 혼자가 아니야." 존 레넌의 ‘이매진’은 높은 가치와 이상을 담고 있다.

길지 않은 존 레넌의 40년 삶은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성장기 시절 그는 아픈 가족사로 인해 정체성 혼란을 겪었으며, ‘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머니는 왜 자신을 책임지지 못했는지, 이모와 살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힘들어했다. S. 테일러존슨 감독은 영화『비긴즈-Nowhere Boy』에 존의 어린 시절을 담았다. 이 영화는 월드 스타의 전기가 아니라, 그가 겪은 상실감과 방황을 다루었다. 자기 존재를 힘겹게 찾아가는 소년을 먼발치에서 그려냄으로써, 결손의 보편성을 시종 붙들고 간다. 함부르크에 진출하는 밴드가 ‘비틀스’라는 정보조차 알려주지 않은 채 영화가 종결됨으로써, 스타의 성공에 주제의 방점을 두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보수적이었던 이모보다, 무책임하고 지나치게 자유로운 어머니를 수용하는 것이 어린 존에게는 더 큰 좌절이었다. 그래도 음악에 관한 대화는 모자간에 소통이 원활했다. 이모와 생모의 미묘한 감정 대립을 카메라는 무심하게 포착하며, 그들의 상처를 두둔하지 않고 투사한다. 존의 생활 태도와 청소년 비행 일화를 여느 청소년의 경우처럼 처리함으로써, 평범한 일반화의 균형도 놓치지 않는다. 영화는 일그러진 환경에서 자신을 극복하는 그의 내적 성장 ‘과정’을 투박하게 표현하며,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상황을 그려낸다.

레넌은 베트남전 반대와 계급 문제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당시 체제와 불화를 빚었다. 유럽 '68' 혁명 중에도 그는 오노 요코와 함께 자신들의 삶 자체를 예술 작품처럼 다루며 ‘사랑과 평화’ 운동을 벌였다. 비틀스는 존, 폴, 조지의 음악적 스타일과 활동 방향의 차이, 매니지먼트 문제로 인해 내부 갈등이 심화하였고, 1969년 결국 해체됐다. 레넌은 사회운동가로서 영국, 미국의 좌파 운동가들과 함께 1970년대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음악 ‘워킹 클래스 히어로’와 ‘이매진’으로 현대 사회의 계급제도와 사회적 고통에 대해 드러내놓고 문제를 제기했다.

예술은 아름다움의 구현이다. 궁극의 아름다움은 예쁘고 안온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예술이 유희를 넘어 인간 존재의 의미를 규정할 때, 우리는 그것에 감동한다. 예술 작품은 창작자의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인간의 보편적 본질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역할을 하며, 불가능을 넘어 상상의 경계를 확장한다. 존이 세상을 보는 시각은 예술을 통해 달라졌다. 그의 리비도는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고, 분노를 음악으로 승화하게 하는 원천이었을 것이다.

비틀스는 로큰롤, 포크, 클래식, 인도 음악 요소를 도입하여 대중음악의 범위를 넓혔다. 다중 트랙 녹음, 역행 테이프 효과, 피치 변조, 인공 더블 트래킹과 같은 첨단 기술로 음향을 구현했다. 당시 대부분 밴드가 외부 작곡가 곡을 연주한 것에 반해,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콤비는 직접 작사, 작곡하여 밴드의 독창성을 구축했다. 비틀스의 존재는 1960년대 청년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의 패션, 헤어스타일, 자유로운 사고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고, 싱글에서 앨범 중심으로 전환한 비틀스의 앨범은 예술 결과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모레,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가 있다. 언론에는 후보들의 선거전만 요란할 뿐, 교육철학 검증은 주마간산으로 스쳐 간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MZ세대는 결핍의 인내보다 풍요의 기회 활용에 더 능숙하며, 세계의 무대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그들의 미디어 친화력, 문화 코드 역동성을 간과한 속단은 위험하다. 교육감의 방향 판단과 정책 결정은 결코 가벼운 책무가 아니다. 진부한 이념적 규제는 사고의 유연성에 깊이 관여한다. 엊그제 노벨문학상이 작가 한강을 찾아왔다. 우리 모두, 마치 자신의 수상처럼 감동했다. 지난해 경기도교육청의 요청을 받은 일선 학교는 도서관운영위원회를 열어 도서 2천500여 권을 폐기했다.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 명단에 그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들어 있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이만큼 잠식하고, 소수의 성적 상위자를 다수 학생이 떠받치는 교육시스템이 어디에 또 있을까. 학생은 교육의 주체다. 교육정책의 실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의 미래가 학교에서만 열리는 것도 아니다. 자라나고 있는 미래의 레넌과 한강을 위해 ‘다양성’의 당위를 인정하고 확보해 주는 것이 어떤 정책보다 중요하다. 존이 선택한 음악의 길은 막힌 숨을 여는 해방공간이었다. 창의성과 독립적 사고는 교육에서 가장 강조해야 할 가치다. 그는 성적과 경쟁보다 더 뜻있는 일이 세상에 많음을 힘주어 노래한다. "상상해 봐!!!"

주용수 한경국립대학교 창의예술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