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농업왕] 이재혁 포천 고향농원 대표 "샤인머스켓 울고 갈 명품포도… 욕심 빼고 '달달함' 채웠다"
최근 먹거리 시장에서는 ‘핑거푸드’(도구없이 손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로 불리는 간편식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과일 중에서는 한때 열풍이 불었던 ‘샤인머스켓’이 대표적이다.
다만 샤인머스켓이 인기를 끌며 생긴 부작용도 있다. 많은 포도농가가 샤인머스켓 재배에 나서며 기존에 포도 시장을 선도했던 ‘캠벨얼리’와 ‘거봉’ 등을 재배하는 농가가 급속도로 줄어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고품질 포도를 키우는 것이 국내 포도산업의 기반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직하게 포도를 재배하는 농부가 있다.
포천에서 캠벨얼리와 흑보석(신품종 거봉)을 재배하는 이재혁(66) 고향농원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이 대표는 소비자가 만족하는 품질의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 매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경기도포도품평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부일보는 이 대표를 만나 명품 포도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철학과 포도 인생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다.
◇벼 농사에서 포도를 키우기까지=포천시 내촌면 진목리에 위치한 고향농원, 약 3천967㎡(1천200평) 규모로 조성된 그 곳에는 이 대표가 정성들여 키워낸 300주의 포도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이 대표가 처음부터 포도 농사를 했던 것은 아니다. 이 대표가 처음 포도를 키운 것은 1998년이다. 그 전까지는 이 대표를 포함해 대부분의 마을 주민은 벼를 재배했었다.
그는 "원래 벼 농사를 했는데 당시 남양주에서 진접지구를 개발하면서 흙이 남아 돌게 되니 이 곳의 땅을 메꿔졌다"며 "처음에는 메꾼 땅에 콩을 키웠다. 그런데 콩은 벼 만큼의 소득이 안나니 과수원으로 눈을 돌렸고, 그렇게 포도를 키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벼농사 짓다가 1998년부터 재배
실패 거듭하다 비가림 시설 도입
제품 당도 높이고 해충피해 예방
300주에서 캠벨얼리·흑보석 생산
그러나 처음부터 성공적으로 포도를 키워낸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비가 오면 오는데로 비를 맞았기 때문에 포도의 당도가 낮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2000년도 초반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을 받아 비가림을 도입하며 포도농가의 소득이 크게 늘어나게 됐고, 그 결과 이 대표를 따라 마을의 많은 농가가 포도를 재배하게 됐다.
이 대표는 "비가림이 도입되면서 비가림을 한 포도와 안한 포도 품질이 월등히 차이가 나게 됐다. 비를 덜 맞을 수록 해충 등의 피해도 받지 않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비가림 시설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최고의 캠벨얼리를 키우다=현재 이 대표는 캠벨얼리와 흑보석을 함께 재배하고 있다. 캠벨얼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포도 품종의 하나이며, 흑보석은 거봉의 신품종으로 알이 크고 당도가 높다는 특징이 있다.
그는 특히 자신이 키우는 캠벨얼리에 큰 자신감을 보였다. 실제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주관환 ‘경기도 포도·복숭아 품평회’에서 당도, 착색, 식미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며 당당히 캠벨얼리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 대표는 좋은 품질의 캠벨얼리를 키우기 위해 기본에 집중했다. 개화 직전, 개화기, 성숙기 등 시기에 맞춰 병해충 방제 및 시비법을 이행했으며, 3년에 1번 토양검사를 받고 때에 맞춰 비료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미량원소(식물생육에 미량으로 필요한 요소를 주성분으로 한 비료) 투입이 중요하다"며 "황산가리나 인산가리 등 시기에 맞춰서 잘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기별 병해충 방제·시비법 이행
3년마다 토양검사… 적정비료 처방
지난해 '경기도포도품평회' 대상
이어 "포도 나무는 질소질 성분이 많이 필요한 나무가 아니다. 포도는 배부르게 키우면 화진(花振, 포도 등에서 개화기에 수분·수정이 안되거나 수정 후 씨눈의 퇴화 등으로 인해 나타는 소과립의 탈락현상)이 온다. 반대로 배고프게 키우면 화진이 오지 않는다. 이런 농사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이 외에도 이 대표는 지난 2022년부터 흑보석 포도를 재배 중이다. 흑보석은 거봉의 단점을 보완한 품종으로, 높은 기온에서 색이 잘 들지 않아 재배에 어려움을 겪는 거봉과 달리 높은 기온에서도 과분 형성이 잘 된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포천은 내한성 포도인 캠벨얼리가 잘 자라는 지역이기 때문에 더위에 강한 흑보석이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점차 여름이 길어지고 날씨가 더워지는 만큼 포도 품종 교체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고 이 대표는 선택 끝에 흑보석 재배에도 성공을 거뒀다.
이 대표는 "3년 전에 포천에서 이런 품종을 개발해보자고 얘기가 나와서 기술보급과에서 신청을 받아 경쟁 끝에 심게 됐다"며 "지난해에 품평회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고, 올해는 수확량이 2년차인 지난해보다 많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찾는 ‘포천포도’…오랫동안 해야죠="포도는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50송이만 달아야 하는데 60송이 달면 10송이를 더 버는 것 같지만 정작 수확기에 가서는 많은 실망이 찾아옵니다."
이 대표는 포도 농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득을 높이기 위해 포도를 많이 재배하면 그만큼 맛은 떨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만약 올해 10박스 분량을 심고, 내년에 9박스 분량을 심으면 포도는 덜 달리지만 포도의 당도은 더 오르게 된다"며 "결국 고품질 포도를 위해서는 알을 솎아야 하는데 여전히 포도가 많이 달리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캠벨얼리라는 같은 품종 속에서도 맛은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농산물은 한 푼 덜 벌어도 소비자하고 공감을 해야 한다. 소비자가 맛있다고 해줘야 5만 원이든 10만 원이든 벌 수 있다. 이렇게 해야 포천포도의 평이 올라간다"고 강조했다.
포도농사 제1철칙은 욕심 버리기
소득 위해 많이 재배하면 당도 하락
고품질 포도 위해서는 알 솎아야
고령화 탓 포도마을 명맥만 유지
건강 허락하는 한 오랫동안 할 것
이런 그의 철학에 힘입어 그의 농장에서 나온 포도는 호평을 받으며 대부분 로컬푸드 매장을 통해 소비가 이뤄진다.
다만 이 대표는 점차 포도 농가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한때 포도마을로 불렸던 이 대표의 동네도 이제는 12개 농가만이 남아 포도를 재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지금 고령화로 인해 포도 농가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 의욕은 있으나 몸이 말을 안들어 농사를 퇴직하는 분도 많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될 수 있는 한 포도를 재배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마음으로는 70세에 농사를 퇴직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남은 기간 몸을 고쳐가며 75세까지는 농사를 짓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도 고품질 포도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이성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