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환칼럼] 청첩의 속물심리학
결국 나는 어쩔 수 없는 속물이구나!
일전, 딸의 결혼식을 친지만을 초대하여 작은 결혼식으로 치르겠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 나는 격하게 동조했다. 우리나라 결혼식의 허세와 낭비를 지적하면서 말이다.
평균 결혼비용이 3억 원을 넘는다는 한 결혼정보회사의 조사를 꺼내지 않더라도, 신혼집, 혼수, 예단, 예물, 예식장,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답례품, 신혼여행 등에 웬만한 가정은 정말 등골이 휘는 대사(大事)를 치른다고 열을 냈다.
특히 결혼식장에 붐비는 하객들이 실은 신랑, 신부의 성장과 함께한 친척이나 친구들보다는 혼주의 과시, 체면치레로 초대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진정 새로운 출발에 축하를 보내는 것인지 의문이라 했다. 그리곤 가족과 극히 가까운 친지만을 초대해 작은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는 친구에게 ‘깨인, 혁신적인, 멋진 집안’이라고 격찬했다.
지금 나도 자식의 혼사를 앞두고 있다.
예비부부들은 나름 현명한 젊은이들이라 자신들 처지에 합당한 신혼집도 마련하고 예단, 혼수 등도 생략하는 등 합리적 결정을 하였다. 대견하다. 물론 이러한 결정은 품격있는 사돈의 양해와 배려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나의 ‘속물근성’이다.
‘누구를 초대하느냐?’는 청첩의 문제에 직면해 나의 속물 심리는 발각되었다. ‘작은 결혼식’이 마땅하다던 나의 그 소신(?) 있는 발언들은 입발린 소리였음이 들통났다. 막상 ’청첩‘에 이르러 ‘깨인(?) 척하던 나의 결혼의식’은 아주 평범한 현실을 따르게 되었다.
부고장을 받지 않더라도 상가에는 조문한다. 즉 조문의 주체는 문상객에 있다.
그러나 청첩은 말 그대로 남을 초청하는 것으로 그 초청대상자의 선별은 오로지 청첩인에게 달려있다. 그러니 난감하다. 누굴 불러야 하나?
먼저 그간 대인관계를 점검(?)했다. 무턱대고 청첩장을 남발하면 피차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각별한 사이라 여겼는데 상대는 안 그럴 수도 있고, 마음은 안 그런데 현 상황이 어려운 지인에게 큰 폐를 끼칠 수 있다.
그럭저럭 생각이 많다 보면 ‘내가 참 소홀히 한 사람들이 많구나’, ‘그간 나의 인간관계가 참 얄팍했구나’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혼사를 알리는 모바일 청첩장을 받은 지인에게서 축하의 답신을 받으면, 고맙고 따듯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분명 메시지는 갔을 텐데 반응이 전혀 없으면 ‘아, 괜한 부담을 줬구나’ ‘뭔가 내게 섭섭한 게 있구나’ 후회한다. 물론 굉장히 바빴을 수 있지만…
자업자득일 수도 있다.
사실 나도 어떤 땐 청첩장을 받고 ‘뜨악’했을 때가 있었으니까. 그리 막역한 관계가 아니면 축의금이나 부의금만 보내고 현장(?)에 가는 편이 아니었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같이하는 관계가 소중하다는 걸 알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내자신이 민망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본전생각’이다.
애경사에 난 서너 번 부조했는데 못 본 지, 심지어 전화 통화한 지도 꽤 된 지인에게도 알려야 하나? 이 청첩장을 받아들고 흔쾌히 축하해 줄까? 계면쩍은 문자로 아주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는 것이 나의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사람 참 쪼잔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전생각’에 눈 딱 감고 소원했던 지인에게 과감히 모바일 청첩장을 띄웠다. 그런데 막바로 날아온 문자 "축하합니다. 그날 뵙겠습니다." 반갑고, 미안하고, 고맙다. 그래서 나누게 된 전화 통화 음성에도 따듯함이 배어있다. 청첩이 관계의 복원을 가져왔다. 물론 이런 반응은 많지 않았다.
나의 옹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결혼식장이 좀 북적거려야 하고, 명망가의 얼굴도 좀 눈에 띄어야 하고, 그럴듯한 직함의 리본이 드리워진 ‘축 화환’도 좀 있어야 하고, 하객에게 맛난 음식을 대접해야 하고. 여러모로 신경이 쓰인다. 그래야 사회생활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텐데….
왜 딸 결혼식에서 내 사회적 평가를 받으려 하는지 모를 일이다.
속물임을 감추기 위해 청첩의 관계 재정립 효과, 상호부조의 효과, 경제적 효과, 축하와 성원의 효과를 앞세우며 대다수 평범한 아빠의 마음일 거라 위안을 삼지만, 보여주기식 체면치레에 빠져 버린 나는 결국 속물이구나.
덧글 : 좋은 계절, 가을에 새롭게 출발하는 신혼부부들이 많습니다. 많이 축하해 주세요. 마음만으로도 충분 합니다.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