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철환칼럼] 조정(調停)제도의 활성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타인과 더불어 생활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해관계 속에서 다툼에 얽히지 않을 수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본인이 억울하여 먼저 그 분함을 해소하기 위해 법에 호소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본인은 모든 것에 초월해 가만히 있어도 상대방이 선제적으로 공격해 오므로 어쩔 수 없이 소송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송사에 휘말리는 일입니다. 위와 같은 구렁텅이에 진입하는 순간 그 사람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불확실한 결말을 향한 터널에서 허우적거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한 경우에 통상적인 재판을 통하여 이를 해결하려고 할 때 법원에는 많은 사건이 적체돼 있어 재판기일이 언제 지정될지 모르는 가운데 막막한 시간만이 흘러 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담당 재판부에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상담할 수도 없어서 더욱 답답하기만 합니다. 세월이 경과하여 재판이 열린다해도 당사자가 법정에서 재판부에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잠깐 뿐입니다. 뒷사건이 많이 기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판부는 어느 한쪽에 대하여 친절하게 법률상담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법원은 엄격한 변론주의나 증거법칙에 의하여 판결로만 답할 수밖에 없으므로 사건 기저에 흐르는 정황들을 만담식으로 들어주는 것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절차적으로 부적절한 경우가 허다할 것입니다.
위와 같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대두되는 것이 있습니다. 판결을 얻기 위한 통상적인 소송절차 외에 대안적 분쟁해결방안(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인 조정제도가 그것입니다. 조정(mediation)이란 당사자 사이에 상호 양해를 통해 조리를 바탕으로 실정에 맞게 분쟁을 해결하는 간이한 절차를 말합니다. 조정은 조정담당판사나 상임조정위원 또는 조정위원회를 통하여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조정위원회에는 인생과 사건에 대한 경험과 식견을 가진 조정위원이 사안에 대한 객관적 분석에 기초하여 당사자 쌍방의 각각의 애로점과 의견을 자유롭게 들어보고 적절한 타협점을 제시하며, 당사자들은 그것에 대하여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찾아 상호 합의성립이라는 옥동자를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조정절차에서는 법적 측면 외에 인간적 측면 등 구체적 사정까지 가미하여 판결로 포섭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고려할 수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제 필자가 조정위원으로 관여하여 성공한 조정사건 중 너무 보람이 있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은 사안이 있습니다. 이혼, 위자료, 재산분할, 친권자 및 양육자지정에 관한 다툼 사건인데 피고 당사자인 남편은 조정위원이 따뜻하게 웃으면서 말해 주는 데에 감사하고 신뢰감이 들어서 흔쾌히 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내인 원고도 이에 화답하여 양보의사를 표명하였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시간적으로 상당기간 앞당겨 소송을 마무리지으면서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계에서도 좋은 마무리를 함으로써 향후 관계개선의 여지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자녀관계에 선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덤으로 소송비용의 절감 등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건에서는 조정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사건에서 쟁점이 무엇이고 상대방이 가장 문제 제기하고 있는 핵심 의중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며, 당사자는 법정과 서면의 한계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애로사항을 직접 털어놓음으로써 속이 시원하고 불면증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도 있게 됩니다. 조정의 성사 여부를 떠나서 쌍방 당사자가 조정실을 나서면서 얼굴의 긴장도가 완화돼 있고 밝은 표정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나가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조정 절차는 의미있다고 생각됩니다.
생각컨대, 최근에 이르러 재판 지연이 사회 문제화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을 위해 법관증원, 증거개시제도 도입, 법관승진제도 개선, 상고심제도개선 등 여러 가지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그것들을 도입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관련법 통과가 불확실한 측면이 있는 바 현재 상황에서 당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조정제도의 활성화가 아닐까 하고 제안해 봅니다.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 수원고등법원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