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칼럼] 엄마와 손잡고

2024-10-22     김형태

살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깊은 그리움과 마주하게 된다. 구순을 사시다가 곁을 떠나신 엄마를 떠올리면 그리움은 더욱 짙어진다.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에 속한 구절처럼,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사람의 흔적은 살아남은 자의 마음에 계속해서 머문다." 엄마는 내 삶의 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4남매 중 막내로서 나는 엄마의 손길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며 자라왔다. 그 손길은 단순한 접촉이 아닌 말 없이 전해진 깊은 사랑과 헌신의 상징이었다.

유년 시절, 나는 엄마와 함께한 수많은 순간을 떠올려 본다. 엄마의 손은 단순히 나를 이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깊은 안도감을 주는 존재였다. 새로운 길을 나설 때나 낯선 상황에 마주할 때, 엄마의 손을 잡으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고 세상이 더 밝게 보였던 추억을 소환한다. 그 손길은 말없이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고, 그 손끝에서 전해진 따뜻함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기억은 지금껏 내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다.

영화 ‘애자’ 속 주인공 애자는 엄마를 잃은 뒤, 그제야 비로소 엄마의 깊은 사랑을 깨닫는다. 애자가 말하길, "엄마, 그냥 옆에 있어 줘. 그게 다야." 이 대사는 어쩌면 모든 자식이 엄마에게 바라는 가장 간절한 마음일 것이다. 나에게도 엄마는 항상 필요한 순간에 곁에 계셨고, 따뜻한 온기와 위로를 말없이 전해 주셨다. 이제는 그 온기를 다시 느낄 수 없다는 현실이 참아낼 수 없는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엄마는 나를 포함한 4남매를 한결같은 사랑으로 키워오셨다. 누구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고, 늘 같은 마음으로 품어주셨다. 그 사랑은 세심하면서도 절대적이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라며 서로의 소중함을 느꼈다. 자식 중 막내였던 나는 엄마의 사랑을 더 가까이서 느낄 기회가 많았지만, 형제자매 모두가 그 사랑을 나눴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서울에서 태어나 살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엄마의 고향인 화성으로 이사했을 때 엄마는 "너를 촌놈으로 만들어서 미안하다"라고 종종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서울에서 낳은 나를 시골로 데리고 온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에게 화성에서의 생활은 색다른 경험이었고, 오히려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한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인 행동이다. 사랑은 단지 주는 것만으로도 완성된다"라고 말했다. 엄마가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이 바로 그런 능동적 사랑이었다.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셨고 그 안에서 그는 만족을 느끼셨다. 그의 사랑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고 오로지 우리를 위한 헌신으로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고, 나에게 있어 이제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되었다.

"사람은 떠나도 사랑은 남는다"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엄마는 이제 내 곁에 없지만, 엄마가 남긴 사랑과 추억은 여전히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고, 긴 세월 함께한 시간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 내 삶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언젠가 다시 엄마를 만나게 된다면, 내가 받은 사랑을 고스란히 돌려드리고 싶다. 내게 주신 그 따뜻한 손길과 끝없는 헌신을 잊지 않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오늘도 승화원의 온기는 여전히 따뜻하다.

김형태 성균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