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전통사찰] 문수보살 지혜의 빛, 화엄세상을 향하다

⑮용인 문수산 법륜사

2024-11-07     주수완
문수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조계종 법륜사. 사진=주수완

◇옛 선비들 과거시험길, 문수보살 지혜와 함께=용인의 문수산은 처인구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은 높이 400m 가량의 나지막한 산이다. 과거 한양과 지방을 오가는 옛길 중 부산으로 이어지는 영남길의 여섯 번째 길이 이 문수산을 지난다. 문수산에는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생각되는 마애불도 있는데 특이한 것은 마주 보는 듯한 두 바위 면에 각각 보살상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 있었을 법한 부처님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두 바위 사이에 입체적으로 만들어 모신 부처님이 있었을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만약 그랬다면 입체적인 불상과 평면적인 마애보살로 조합을 이룬 매우 특별한 불상이었을 것이며, 혹 가운데 부처님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본존불 없이 보살상만 새겨진 특이한 사례의 마애불인 것이다. 가운데 불상이 원래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여하간 지금처럼 보살 두 분이 오래된 길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 보살님들이 문수보살이라고 생각해 이 산을 문수산이라 했던 것 같다. 많은 보살님 중에 왜 문수보살님일까 싶은데, 문수보살은 지혜의 보살이기 때문에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가던 사람들이 이 보살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문수보살로 간주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법륜사에서는 현재 전각마다 천일기도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관음전에서 진행되고 있는 천일기도) 사진=주수완

이런 마애불 아래쪽에 법륜사가 자리잡고 있다. 법륜사는 비구니 스님이신 창건주 상륜 큰스님께서 1996년부터 터를 닦기 시작한 사찰이지만, 뒤편 산 위에 마애불이 있고, 암자터도 발견되는 등 예로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었던 곳으로 생각된다. 산 이름도 문수산이니 어찌 이 산에 사찰이 하나도 없을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사찰이 전하지 않던 것이 못내 아쉬우셨던지 관음보살께서는 당시 승가사 주지를 역임하고 있던 상륜 스님의 꿈에 나타나 새로이 절을 세울 곳을 알려주셨다고 한다. 한 계곡에서 맑은 물이 흐르고, 그 물 가운데 청룡이 솟아나 물을 뿜으며 승천했는데, 이윽고 관음보살이 나투셔서 "이곳에 절을 세우라" 당부하셨다는 것이다. 그 꿈에 보였던 장소가 바로 지금의 법륜사터임을 확인하고는 터를 닦고 법당을 세우며 그 기초를 닦아 지금의 법륜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십자형 건축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 하북성 정정현 융흥사의 마니전(오른쪽)과 법륜사 대웅전(왼쪽)의 위에서 본 모습. 사진=주수완

◇상륜스님의 걸작 불사, 웅장한 대웅전=법륜사에 들어서며 왠지 환한 분위기를 느꼈다. 가을날이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유독 광채가 뿜어나오는 것 같다. 화려한 금단청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꾸민 것도 아닌데 환하다. 알고 보니 유독 구석구석 화강암을 많이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화강암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기단부가 그렇게 밝은 빛을 뿜어낸다. 문득 이런 느낌을 다른 절에서도 받은 적이 있었던 것 같아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렇다, 바로 승가사다. 승가사라면 이곳의 창건주이신 상륜 스님이 이곳에 오시기 전까지 주지로 계셨던 바로 그 절이 아닌가. 비교적 좁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지만, 담박하면서도 화려해 보이는 화강암 계단과 정교한 호국대보탑으로 분위기를 일신한 곳이 승가사인데, 법륜사도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다. 상륜스님만의 스타일인 것 같다.

계단을 올라 법당 앞마당에 들어서면 웅장한 ‘아(亞)자형’ 평면을 지닌 대웅전을 만나게 된다. 필자가 찾아간 날은 마침 공사를 하고 있어서 주변에 비계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래도 대웅전의 위용을 가릴 수는 없었다. 알고 보니 법당이 웅장하고 천정이 높은 만큼 어디선지 새들이 날아와 천장에 둥지를 트는 바람에 새들이 날아들지 못하도록 그물망을 치는 공사를 하는 중이라 한다. 거의 경복궁 근정전 같은 거대한 건물에서나 일어나는 일인데, 이를 보면 이 대웅전의 위용을 짐작할만하다.

독특한 십자형 평면의 대웅전. 사진=주수완

일반적인 법당은 좌우로 길게 늘어선 직사각형의 평면인데, 법륜사는 중심에 정사각형의 평면을 두고 동서남북으로 2단의 돌출부를 지닌 독특한 평면을 하고 있다. 앞서 이를 ‘아(亞)자형’ 평면이라고 잠시 언급했는데, 혹은 십(十)자형 평면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형태는 국립중앙박물관 홀에 있는 경천사지 10층석탑이나 탑골공원의 원각사지 10층석탑 기단부에서도 볼 수 있다. 혹자는 이러한 아자형, 혹은 십자형 평면이 몽골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더 넓게는 티베트 불교문화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는 원래 인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중세가 되면 인도에서는 불교가 거의 사라지고 티베트가 세계 불교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여러 나라의 불교도 결국 이 티베트 불교를 모델로 삼았다. 특히 아시아 전체를 제패한 몽골제국이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티베트 불교는 마치 KTX 열차를 탄 것처럼 급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를 굳이 몽골 지배의 영향으로 보기 보다는 중세 당시 전세계 불교문화의 한 트렌드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겠다.

문수산 마애보살상. 사진=주수완

다만 경천사탑이나 원각사탑 등에는 이런 화려한 평면구조가 나타나지만 실제 이런 법당 건물이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림 속에서는 이런 건물들이 마치 이상향의 건축처럼 자주 묘사되는 것을 보아서 실제로 짓기는 어려운 공법이었지만, 늘 이런 건물을 꿈꿔 왔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런 형태의 건물이 세워진 사례로는 중국 하북성 정정현 융흥사의 주불전인 마니전이 이런 모습이고, 규모는 작지만 전북 완주 송광사의 종각도 이런 십자각 형태로서 드물게 남아있다. 상륜스님은 이런 복잡한 불전 건축을 한국에도 실제로 실현시키고 싶으셨던가 보다. 특히 문수산의 문수보살은 화엄을 상징하는 보살이고, 화엄은 10(十)이라는 숫자를 상징으로 삼기 때문에 이러한 십자형 평면 건축은 화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상륜스님이 통도사에서 수행하시던 1958년에는 화엄경을 읽고 환희심에 가득 차 뒷산에서 방광(放光)을 목격하셨다고 하니 화엄경은 스님께 특별한 경전이어서 이렇게 십자형 법당을 지으셨던 것은 아니었을지. 여하간 승가사의 호국대보탑과 더불어 스님이 조성한 걸작 불사라 하겠다.
 

일반적으로는 불화로 걸어놓는 신중도를 법륜사에서는 화강암으로 웅장하게 조성하여 봉안했다. 사진=주수완

◇흰 광채 내뿜는 화강암 부처님=공사중이었지만, 다행히 법당 안으로는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재 법륜사는 2022년 12월 22부터 내년인 2025년 9월 16일까지 천일기도를 진행하고 있어 이날도 많은 신도들이 각각의 법당마다 좌정하고 경전을 낭송하며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웅전 안에 들어가 보니 내부도 화강암의 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원래 다른 나라에서는 법당 안에 모시는 부처님은 청동, 나무, 흙 등으로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 돌은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부득이 야외에 모시는 경우에만 돌로 조성하고는 했는데,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법당 안에 모시는 부처님도 돌로 모시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부드러운 돌도 아니고 딱딱한 화강암이라 조각이 어려운데도 굳이 법당 안에 모시는 불상까지 화강암으로 모셔왔던 것은 그만큼 화강암의 성질을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석굴암 본존부처님을 닮은 법륜사 대웅전 부처님과 좌우 협시보살상. 사진=주수완

법륜사 대웅전의 화강암 부처님이 더 특이한 이유는 우선 그 크기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이다. 마치 석굴암의 본존 부처님을 뵙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승가사에도 유명한 마애부처님이 있는데, 이 부처님도 석굴암 본존부처님을 닮았다. 상륜 스님은 오랜 기간 모셨던 승가사 마애부처님을 그대로 법륜사로 모셔오고 싶으셨나 보다. 그래서 이곳 부처님도 석굴암 본존부처님이나 승가사 마애부처님을 닮았다. 상륜스님은 여기서 더 나아가 부처님의 광배와 협시보살도 거대한 화강암으로 모셨고, 대웅전의 내부 기둥들도 모두 화강암으로 세웠다. 마치 석굴암 전실 입구 양쪽에 팔각형의 기둥이 세워진 것을 모델로 삼으신 것 같다. 그래서 금을 입히지 않았음에도 이 화강암 부처님과 보살님이 뿜어내는 흰 광채만으로도 화려함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다. 대웅전의 오른편으로는 다시금 웅장한 위태천 입상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는 화엄신중이 새겨진 거대한 석각탱, 즉 돌판이 세워져 있다. 보통 이 존상들은 불화로 그려지는데, 스님은 이것을 돌판에 새기셨으니, 법륜사의 이러한 불교 예술품들이 영원히 후대에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돌에 새기셨을 것이다. 이러한 대웅전의 화강암 불상들은 미래에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되지 않을까?
 

법륜사 삼층석탑(고려시대). 사진=주수완

◇구석구석 담긴 스님들의 정성=한편 법륜사에는 미래유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삼층석탑과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목불좌상은 법륜사가 소장하고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삼층석탑은 서울의 한 개인이 시주한 탑이라 원래의 위치 등은 알 수 없다. 만약 정확한 내력이 알려져 있었다면 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것도 가능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불국사 석가탑 이후 확립된 전형적인 신라 석탑 계열인데, 기단부에 보면 모퉁이에 세워진 기둥 외에 가운데에는 전혀 기둥이 새겨지지 않은 것은 고려시대로 시대가 내려오는 것을 보여준다. 원래 신라계 석탑의 특징 중의 하나가 기단부가 2단으로 구성되는 것인데, 현재 이 삼층석탑은 1단만 있다. 이것이 원래는 2단이었는데 아래층 기단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 이렇게 1단만 남아있는 탑들도 많아서 혹시 시대가 내려오면서 점차 아래층 기단이 점차 간단하게 축소되다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이와 닮은 탑으로는 강감찬 장군의 탄생지로 알려진 서울 낙성대의 삼층석탑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계통의 석탑들 중에서 특히나 법륜사 삼층석탑은 그 비례가 아름다워 날렵하면서도 당당한 인상을 풍기고 있어 돋보인다.

법륜사 목불좌상(조선 17세기 전반). 사진=주수완

목불좌상은 현재 스님들이 머무시는 공간에 따로 봉안되어 있는데, 마침 바쁘게 일하시던 현암 주지스님을 만나 뵙고 허락을 받아 친견할 수 있었다. 비록 앙증맞을 정도로 작은 불상이지만, 이런 불상은 워낙에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서 대부분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데, 이 불상은 특이하게 복장물이 잘 남아있어 그 유래를 알 수 있는 드문 사례이다.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불상은 놀랍게도 조각승 현진 스님의 작품이다. 현진스님은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유명한 조각승인데, 이분은 법주사 대웅보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과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등 그 당시를 대표하는 거대한 불상들을 조성한 스님이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불상도 만드셨다니 너무 놀라웠다. 그래서 찬찬히 바라보니 비록 작은 부처님이지만, 현진 스님이 조성한 거대한 불상에서 느껴지던 아우라가 고스란히 느껴져 자연스레 경건한 마음이 스며든다.

법륜사 북쪽 언덕에 자리잡은 상륜 스님의 사리탑. 사진=주수완

법륜사는 현대적인 미감이 담긴 절로서 구석구석 스님들의 정성이 담기지 않은 곳이 없다. 절의 북쪽 언덕에는 이런 법륜사를 내려다보는 한 승탑이 세워져 있는데, 바로 창건주 상륜 스님의 사리탑이다. 스님이 이루셨던 역사를 이렇게 바라보며, 또 제자 스님들이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고 계신 것 같다.

법륜사는 작년에 사찰음식체험관을 개관하고, 올해 봄에 열린 산나물축제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용인을 방문할 일이 있으시다면, 법륜사에서 잠시 마음의 휴식을 취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글·사진=주수완 우석대학교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