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환 칼럼]김영삼 그리고 요즘 정치

故 김영삼 대통령 서거 9주기를 추모하며

2024-11-19     정상환

"아는 만큼 보인다"라 한다. 그러나 기실 ‘본 만큼 안다’

지식이나 정보가 아무리 풍부해도 미래를 예측하거나 현장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경험과 지식이 겸비되어야 경륜을 얻게 되고, 실제 현장에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명문대 출신의 연기자가 꼭 스타로 인기를 얻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그 스타가 연기론을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경영학 박사라 해 성공한 CEO가 되는 것도 아니고, 금메달리스트가 명감독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지식과 경험이 시너지를 발휘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대부분 분야에서 마찬가지지만 특히 정치도 그렇다. 정치도 전문영역이다.

아무나 정치하는게 아니다. 해서도 안된다.

정치 불신의 시대,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은 정치권 밖 참신한 인물에 눈길을 보낸다.

약삭빠른 정당들은 표 받기에 급급하여 이름께나 있는 경제계, 학계, 법조계, 연예계, 체육계 등 명망가에게 손길을 뻗친다. 이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급부상하고 심지어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평생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던, 즉 정치 철학 없이 뛰어든 급조 정치인들은 경험 부재와 네트워크의 한계에 직면한다. 결국, 참신하다던 그 신인들은 보스의 앞잡이로 전락하고 말초신경적 저급한 이슈에 천착한다. 그리고 사라진다.

정치인이라면 오랜 세월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 쌓아올린 철학과 구상이 있어야 한다. 정책적 안목과 정치적 리더쉽을 발휘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권력은 가벼운 의제에 매달리고 자기 진영의 영달에 안주할 뿐이다. 요즘 정치에서 거대 담론은 사라지고, 시답지 않은 가십이 난무하는 이유다.

오는 22일은 故 김영삼 대통령의 서거 9주기다.

김영삼은 스물여섯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래 아홉 번의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지냈다.

그동안 38세 최연소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를 시작으로 5번의 야당 원내총무를 지내며 정치적 협상력을 발휘했으며, 46세 최연소 야당 대표에 오른 이래 고비 고비마다 야당 대표로서 정국의 한 축을 이끌었다. 초산 테러, 최초의 제명 국회의원, 가택연금, 무기한 단식 등 시련의 세월도 거쳤다.

3공에 맞서 부마사태를 이끌어낸 주인공이었고, 5공 정권을 상대로 단식투쟁에 이어 신당(新黨) 돌풍의 주역이었다. 6공 군부 세력과 맞서 직선제 선거를 쟁취하면서 문민정부를 창출했다.

집권 후 김영삼이 이뤄낸 민주화 제도개선과 가치의 전환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 풍요롭게 하였다.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 , 정치자금법(‘이른바 정치개혁법’)을 제정하여 한국 정치의 고질이었던 부정, 관권, 금권 선거를 극복했다. 명실공히 공명선거를 통해 여야가 정권을 교체하는 당당한 나라로 발돋움시켰다.

군부 통치 청산 작업을 제대로 마무리 했다.

하나회 제거부터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군부 세력의 뿌리까지 단죄하였다. 다시는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했다.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와 부동산 실명제를 통해 투명한 사회를 만들었다. 돈으로 권력을 사거나, 권력으로 치부하지 못하게 됐다.

정보화 전략선언(1996)으로 산업·정부·환경·교육 등 각 분야의 범국가적 정보화를 통한 국가경쟁력을 강화했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시대를 앞당겼고, 지금 세계 곳곳으로 뻗어가는 한류 전파의 초석을 다졌다.

반세기 이상 우리 정치사의 거산(巨山), 김영삼의 정치 혈관에 흐르는 피는 민주주의다.

김영삼은 단지 독재에 대한 투쟁을 넘어 민주주의의 구성 원리원칙을 지키려 했다. 그를 의회민주주의자라 부르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인 ‘대의제의 원칙’을 늘 마음에 담았기 때문이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와 다름 없다. 민주주의자 김영삼의 바탕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었기에, 갈등은 있었으나 배척하지 않았다.

‘큰 원칙을 존중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작은 대립과 타협할 줄 아는 이성과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지향했다.

우리가 흔히 3김 시대의 정치적 낭만(?)을 얘기하는 것은 이런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 보여지는 우리 정치의 양극화, 편향성, 팬덤 정치(패거리 정치), 거대 담론의 부재 등 그 저열함은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 철학과 경험 없이, 묻어가는(?) 쉬운 방법만 찾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인들은 과연 어떤 미래를 만들까?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