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칼럼] 나를 돌아보는 연말이 되길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누구나 연말이면 한 해의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돌이켜 보면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들이 마음에 걸린다. 목표로 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 마음과는 달리 모질게 나간 언행들, 어느 순간 잊고 지냈던 초심들이 그제야 떠오른다.
그럴 때면 천천히 포행을 하며 마음을 비워낸다. 발 아래, 벌써 얼음이 가볍게 언 땅과 휑하게 비어버린 나뭇가지들을 보며 평소보다 더 느리게 걷는다. 그러면 번잡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정리된다. 출가할 때의 마음으로 열심히 수행 정진해서 부처님처럼 살고, 생각하며, 부처님처럼 중생들을 위해 살아가려 했던 결심을 다시금 일으켜 세워본다.
누구에게나 자기 삶을 되짚어 보는 여유를 가지고 숨을 고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요즘 사람들은 잠깐이라도 쉬고 놀면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질 것을 두려워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밤낮을 잊고 공부만 하고 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벌레’, ‘일벌레’ 같은 소리를 듣는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큰 축복이고 행운이다. 삶은 그 자체로 귀한 것이다. 이런 귀한 인생을 남과 경쟁하고, 끝없이 욕심을 부리며 살기에는 아깝다. 다른 누군가의 말이나 기준이 아니라 내 마음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다.
그러려면 욕심을 버리는 것이 우선이다. 인간사의 많은 것들이 결국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욕심을 몰아내는 방법은 바로 나눔이다. 나누면 채워지는 게 세상의 이치다. 부처님은 주어도 주었다는 생각 없이 또 주라고 하셨다. 말 그대로 무주상보시다. 주면서 받기를 계산하면 그것은 진정한 보시가 아니고 거래일 뿐이다. 진정 잘 살고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나눔을 실천하고 자신에게 만족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부정과 탈법을 저지르며 나눌 줄 모르고 욕심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이 가장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살아야 후회 없는 삶이 될 것이다. 인생이란 길은 내 호흡에 맞춰 때론 앉았다 가고 때론 누웠다 가며 그렇게 가야 한다. ‘억지로라도 쉬어가소.’ 나의 찻방에 작은 족자가 걸려 있다. 이 글귀를 본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가슴에 큰 울림이 일어남을 느낀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올해 초 나온 졸서(拙書)의 제목도 이 족자에서 따다 지었다. 그리 어려운 글도 복잡한 글도 아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쉽고 단순한 것에 있다.
등산을 할 때 목표지점을 정해두고 빠르게 등정하는 것도 좋지만,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으면서 발밑의 꽃이나 풀을 보며 걷는 것도 좋은 등산법이다. 고개를 들어 키 큰 나무들을 한 번씩 올려다보는 재미도 좋다. 산의 경치나 풍경도 어디서 어떻게 보는지, 어떤 상황에서 보는지에 따라 달리 보인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애정을 갖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면 그들만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살아있는 생명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곧 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길이다.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은 사람들 마음에 뜨거움이 가득한 연말이 아닐까 싶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자. 나도 감나무에 달려 얼다 녹다를 수없이 반복하는 홍시를 산까치와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이 겨울을 보내려 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없어져도 아침 해는 뜨고 저녁엔 둥근 달이 뜬다. 내가 없더라도 이렇게 세상은 잘도 돌아간다. 쉬엄쉬엄 가야 멀리 가고 높이 간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쉬어가자.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