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관칼럼] 크리스마스 캐럴
올해 12월에도 여지없이 책장에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꺼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봄이 되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꺼내 읽는 것은 일종의 나만의 의례이다.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은, 돈은 많지만 지독하게 인색한 부자 영감 스크루지가 자신의 회사에 찾아온 자선단체의 기부 요청을 거절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는 사람들을 죽도록 부려먹고 돈은 코딱지만큼 주는 구두쇠이며 늙은 악당이었다. 그는 항상 심술궂은 말을 입에 달고 살며, 늘 자기 안에 갇혀 고독하게 살고 있다. 누구든지 그를 불편하게 여겨 말을 거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곳곳에 명랑한 젊은이가 등장한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삼촌! 축복이 있기를." 조카 프레드다. 스크루지는 자선단체의 기부 요청을 거절한 밤에 꾼 꿈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변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패밀리 맨(The Family Man, 2000)’이다. 이 영화 역시 크리스마스가 가까울 때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방영되는 단골 영화다. 주인공 잭 캠벨(Jack Campbell)은 오직 성공을 위해 달려온 월스트리트의 성공한 은행가이다. 그는 맨해튼의 펜트하우스, 고급자동차, 외출 때마다 갈아입을 수 있는 수십 벌의 양복, 고급 시계들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아침마다 맨해튼의 펜트하우스 창문 앞에 서서 고급 오디오 음악에 맞춰 오페라 아리아를 부른다. 그것은 그가 고급스러운 인생을 살 뿐만 아니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공적인 사람임을 보여준다. 회사에서, 그가 직원들과 대화를 할 때면 잭은 그들의 눈을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오직 자기가 할 말만 하고 지시 사항과 함께 많은 수익을 낼 것을 요구한다.
이런 잭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말았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어느 날 밤, 우연히 구멍가게에서 노숙인 캐시(Cash)를 만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귀가하여 잠자리에 든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다음 날 아침, 잭은 낯선 집의 침대에서 눈을 뜬다. 다름 아닌, 13년 전 자신과 헤어진 옛 연인과 함께 사는 소박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 변신된 채로 눈을 뜬 것이다. 변호사인 아내 케이트와 낡고 평범한 집에서 자녀들과 살며 가난한 사람들의 법률 자문을 도와주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잭은 장인의 가업인 타이어 가게에서 일한다.
영화 속 두 번째 앵글에서 잭은 뒤바뀐 현실을 받아들이고 가장으로서 적응해 간다. 그의 가정은 소박하지만,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의 일상적인 농담과 대화가 있다. 영화는 잭의 성공주의와 냉정한 물질주의자적 삶에서 나온 후,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 된 그의 진정한 성장을 보여준다. 영화는 아주 뻔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며 125분의 상영시간을 이끌어간다. 그때 관객의 입가에는 변화된 잭의 평범한 변화 과정을 보며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언젠가 영화를 감상한 후, 가족들을 둘러보자 그들 역시 같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공이 인생의 목적이었던 스크루지와 잭 캠벨이 사랑과 가족의 가치를 깨달아 가는 모습을 통해 독자와 관객은 이미 그 해답을 얻어간다.
크리스마스, 즉 기독교에서 이날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그것도 어린 아기로 이 세상에 탄생한 것을 축하하는 날이다. 성경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화려함 가운데 있기보다, 평범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며 존중하는 관계 안에 머문다는 것이다. 본래, 크리스마스 캐럴은 14세기 영국에서 유래되었고, 야외에서 이웃들과 함께 부르던 민중들의 크리스마스 노래였다. 올겨울은 나라 안팎의 상황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해 겨울보다 더 춥다. 영화에서 딸 애니는 다른 세계에서 눈을 뜬 이후 어안이 벙벙해 있는 아빠의 두 볼을 만지며 "지구에 온걸 환영해요(Welcome to the earth)"라고 말한다. 영화는 애니의 대사인 "어스(Earth)"를 "어스(Us)"로 듣게 한 것 같다. 왜냐하면, Earth는 지구라는 뜻도 있지만, ‘세상’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모두가 지구촌 가족으로 살고 있다는 의미를 공유하므로 따뜻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차종관 세움교회 담임목사, 전 성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