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웅 칼럼] 단추 팔아 600억을

2024-12-18     유화웅

단추는 사투리로 달마구, 댄추, 단초, 단췌, 달망구, 고레기, 자개 등으로 불립니다. 우리나라의 남성들은 전통 한복 조끼와 마고자에 금단추, 은단추, 호박단추 등을 달아 입었는데 이는 신분과 부(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5시의 작가 C.V. 게오르규(1916-1992)도 ‘웬일인지 모든 군대는 단추를 아주 좋아한다. 유럽의 합스부르크가(家), 나폴레옹, 카이제르 등은 그들의 영광의 전성기에 장교들의 옷에 백 개도 넘는 단추를 달아주었다’고 했습니다.

이 단추는 B.C 6000년 전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동물의 뼈, 조개껍데기, 나무조각 등으로 만들어 사용하다가 B.C 1세기경부터 금속으로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모양이 꽃봉오리 모습이라고 하여 라틴어로 Bouton이라 하던 것이 지금의 버튼(Button)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며 13세기 경부터 금, 은, 보석으로 단추를 만들어 지위나 신분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각종 보석, 산호, 법랑 같은 고급재료로 단추를 생산했고, 그 후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귀족들의 장신구와 장식품으로 단추의 황금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서양에서 옷에 다는 단추의 경우 스스로 옷을 입어야 하는 남성은 오른쪽에 단추를 달면 끼우기가 편하고, 하녀가 입혀주는 여성은, 하녀가 오른손으로 단추를 끼워주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남녀의 단추 위치가 다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단추를 만들어 모은 600억 재산을 기부하여 인문학교 건명원(建明苑)과 이함(以函)캠퍼스를 설립한 분이 있습니다.

1978년 단추회사 ‘두양’을 설립해서 한 달에 2천만~3천만 개, 일 년에 약 2억4천만 개 단추를 만들어 팔고 매년 새로 개발하는 단추 디자인만도 10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추에도 보라카이, 바이엘, 빌리브, 뽀드득, 보리수 등 예쁜 이름을 붙여 정체성을 부여하여 가치를 지니게 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학은 국문학과로 진학했지만 어려서부터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경영마케팅 관련된 책을 읽으며 사업할 궁리만 하다가 군에서 제대한 후 복학을 하지 않고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단추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그 공장에서 1년 6개월 만에 퇴사를 하고 신혼집을 팔아 기계 3대를 사고, 서울 거여동에서 직원 5명으로 단추 공장을 설립하여 46년간 단추 만들어서 하여 600억 원을 벌어 두양문화재단을 설립하였습니다.

그 장본인은 황해도 사리원 출신의 오황택(75) 씨로 100억 원을 들여 가회동에 인문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인문, 문학, 과학, 예술, 경영, 경제 분야의 탁월한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세상을 밝게 세워가라는 뜻의 건명원(建明苑)이라는 학교 이름을 정하고 각계 전문 분야 석학들을 초빙하여 2015년에 학교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오황택 이사장은 "생존을 넘어 성공하려면 20년 후에 바뀔 세상을 예측하고 현재의 가치관을 깨부수는 시대의 반역자가 돼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이어 오황택 이사장은 양평군 강하면에 2022년 7월 ‘이함(以函)캠퍼스’를 개관하였습니다. 이름대로 빈상자(以函)에 개인소장품은 물론,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를 담아내야 한다며, 미술관, 전시장, 카페, 기프트샵, 베이커리, 연회장소, 아티스트 레지던시 등을 배치하고 각종 휴게 공간과 산책 등 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만들어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 대지 1만 평의 이함캠퍼스를 조성하는 데 2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단추회사 ‘두양’을 설립한 이래 2013년 자기 재산의 80%인 600억을 기부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놓고 가치 있는 삶을 공유하며 삶의 질을 높이려는 오황택 이사장의 다음 말이 큰 울림을 줍니다.

"통장에 적힌 숫자는 종잇조각일 뿐 돈은 실제로 써야 진짜 내 돈이 됩니다. 닭 두 마리를 삶아서 한 마리밖에 못 먹는데 그걸 움켜쥐고 있다가 썩히면 낭비죠. 빨리 이웃과 나눠 먹는다면 효율적이겠죠. 나는 계산에 밝은 장사꾼일 뿐 대단한 철학도 없어요. 좋아서 관심 있는 학교도, 미술관도 만든 거고 나 죽은 후에도 사람들한테 오랫동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남는 장사죠."

유화웅 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