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여행] 그곳의 낙타
전시장과 잡지에서 봐온 쌍봉낙타. 가늘게 흔들리는 털과 긴 목, 등을 잇는 부드러운 곡선, 두 개의 봉오리 사이에 만들어진 깊은 계곡, 무엇보다 깊이 있는 큰 눈이 압권이었다.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긴 속눈썹을 가진 낙타는 생각 외로 귀엽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나는 그리 크지 않은 낙타와 짝이 되었다. 여러 마리 중 유독 지쳐 보이는 두 놈이 있었다. 어딘가 아파 보였다. 낙타는 춥고 건조하고, 메마른 사막에도 잘 적응하지만, 생물인지라 병이 나면 맥을 못 춘다. 처음에는 뒷다리를 공손히 접고 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일어서려다 주저앉고 다시 일어서려다 주저앉았다.
아픈 가축에게 강요된 노동은 잔혹했지만 대체할 놈이 없는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덩치 큰 여행객을 태웠다. 마부가 채찍을 휘둘렀다. 누구도 낙타의 상태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나는 속으로 걱정만 할 뿐이었다. 햇살은 잔인하게 내리쬐었고 고삐를 쥔 마부는 걸음을 재촉했다.
낙타는 긴 목을 내렸다 올렸다 하며 걸었다. 한 발짝 뗄 때마다 모래 속에 발이 푹푹 빠졌다. 평지를 걷는 것보다 수십 배는 힘들 것이란 생각을 하자 문득 놈들의 등에 실린 인간의 무게가 미안했다. 크고 작은 모래 언덕을 지날 무렵 앞에 가던 두 놈 중 한 놈이 결국 입에 흰 거품을 물고 똥을 쌌다. 산똥이었다. 걷기를 거부하며 멈춰 선 낙타, 긴 속눈썹에 가린 크고 검은 눈동자가 슬퍼 보인 건 내 감정 탓이었을까.
마부는 고삐를 짧게 쥐고 잠시 기다려 주었지만, 더 큰 관용은 베풀어주지 않았다. 다시 여정은 시작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모래사막을 걸어 결국엔 책무를 끝냈다. 몽상가처럼 여행지의 환상에만 빠져 있던 나는 전쟁을 목도한 아이처럼 침울해졌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삶이 전투 같은 낙타를 보며 저절로 숙연해져 버린 것이다.
모두 즐겁게 웃었지만 측은함과 안타까움은 삶의 안쪽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본 자의 몫이었다. 마음의 부채를 떠안은 기분마저 들었다. 일정을 끝내고 초원 위 게르에서 밤을 맞았다.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했다. 지구도 멀리서 보면 저 별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주변을 산책했다. 수풀 사이에서 하얗게 풍화된 유골을 보았다. 동물의 뼈가 확실했다. 낮에 본 낙타가 생각났다. 앙상하고 날카로운 가슴뼈와 정강이, 이 땅 어디에선가 최선을 다해 살다 간 가축의 마지막이었다.
삶이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죽음 또한 어디서고 만난다. 살아 있는 것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물처럼 촘촘하게 엮여, 엮인 줄도 모르고 상대를 먹여 살리는 공생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날 나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고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른 것의 정의도 내리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의 여행자였을 뿐. 가끔 내면의 용기 있는 감정들이 비밀스러운 스프링처럼 튀어나와 방관자라고 질책하는 것 같다.
임수진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