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수 칼럼] 라쇼몽 효과

2025-02-09     주용수

사람은 하루 평균 세 번가량 거짓말을 하고 산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럴싸한 구조로 거짓을 말하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거짓말은 기억을 다른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허구와 가상은 일관성의 맥락 안에서 예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상상력은 모토를 그럼직하게 늘리는 기술이다. 가상의 동기를 확장하면 서사가 된다. 위기 모면이나 배려의 거짓말 모두 본능적이며, 인류의 생존을 위한 유전적 결과라고 한다. 자기중심의 이기심까지 포함되면, 과거의 기억을 조정해 현재를 합리화하고, 왜곡한 재구성을 사실로 확신하기도 한다.

구로사와 감독은 아쿠다가와의 소설 두 편에 기초하여 영화 ‘라쇼몽’(1950)을 제작했다. 작품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함을 지적하며, 온전하지 못한 인간의 인식 체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영화의 음악 처리 기법이 아주 인상적이다. 라벨의 ‘볼레로’를 연상하게 하는 리듬패턴이 마사코의 진술을 길게 따라붙는다. 음조는 이국적인 음향으로 변조되어 일본의 전통음악 색채를 띤다. 지속적인 악구 반복만으로는 악곡 전개가 쉽지 않기에 음색과 강도로 변화를 도모한다. 진술하는 그녀의 감정이 고조되면, 음향은 볼레로가 가진 중첩의 본성을 드러내며 이에 호응한다.

작품은 일본 헤이안(平安)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한 무사의 죽음에 관한 네 명의 다른 진술로 중심을 꿴다. 산적 다조마루는 결투에서 이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무사의 처 마사코는 훼손된 자존심과 죄책감을 이겨내기 위해 여성성을 무기 삼아 증언한다. ‘무사의 영혼’은 영매의 말을 빌려 아내의 배신에 따른 모욕당한 감정을 토로하고, ‘나무꾼’은 다른 이들의 진술은 모두 거짓이며 자신의 증언이 옳다고 주장한다. 작품은 네 사람이 주장한 진술의 진실성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진술 행태를 통해 인간의 본성이 이기심에 기초하고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관객이 자신을 돌아보도록 깨달음을 던진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를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저장된 정보를 호출하여 논리를 재구축하는 현상이다. 기억은 정적인 과거가 아니라, 동적인 현재다. 과거의 기억을 호출할 때, 인간은 자신의 의도에 따라 기억의 색깔을 달리한다. 그 기억은 인출하는 현재의 심리적, 감정적 상태에 따라 변형된다. 이 현상에 종교가 개입하면 더 심하게 기억이 왜곡될 수 있다. 이것은 신념이 판단을 지배하게 되어, 재구성하려고 호출한 기억을 극단화하기 때문이다. 기억에 포함된 시공(時空)의 정보를 제거하면 과학적 지식이 축적되고, 일반화된 패턴 기억에 개인의 고유한 해석을 가미하면 예술이 된다. 기억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현재적 사건이다. 중요한 점은 이런 현상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는 것이다. 저장된 것을 어떤 의도로 재구성하느냐가 기억의 본질이다." 뇌과학자 박문호 박사의 견해다.

한 사건을 두고 제각각 해석함으로써, 상황을 다르게 인식하는 ‘라쇼몽 효과’는 사뭇 철학적이다. 요즘 내란 사태 피의자들이 헌법재판소에서 진술하는 것을 보면, 구로사와 감독이 내건 주제와 맞닿아있다. 피의자들은 진실을 감추려고 다르게 진술하거나, 이기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술의 어수룩한 논리는 맥락이 전혀 맞지 않고, 기억의 재구성마저 좌충우돌하는 모양새다. 그들의 엉뚱한 진술은 저의가 의심될 뿐 아니라, 사건의 무게에 눌려 기억의 재구성에도 실패하고 있다. 그들의 이기적인 창작은 네 개의 ‘라쇼몽’ 진술처럼 생뚱맞게 다가온다.

영화는 사건의 사실성에 앵글을 맞추지 않는다. 인간의 기억은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인간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인간의 본성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감정과 욕망에 따라 기억을 재구성하는 인간 본능을 그저 덤덤하게 알려줄 뿐이다. 영화는 일상의 진실이 상대의 주관에 의해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승려의 독백을 통해 인간의 결여된 자기 객관화를 차갑게 지적한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법이오. 약한 존재라 그렇소. 약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거요."

주용수 한경국립대학교 창의예술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