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환칼럼] 나라가 망하는 사회악

2025-03-04     정상환

영화 ‘간디’를 다시 보았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에 삼일절의 의미를 보태, 위대한 지도자를 다시 만나고자 했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들 가운데 단연 수작은 1982년 작 ‘간디’라 생각한다.

1983년 아카데미 작품·감독·남우주연상 등 8개 부문에서 수상했으며, 명배우들의 열연과 수만 명의 엑스트라가 출연하는 상영시간 세 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벤 킹슬리’의 연기는 간디의 부활이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비폭력 무저항주의로써 전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랑을 지켜간 간디의 정신을 진하게 연기했고, 치열했던 삶이 감독의 손을 빌려 고스란히 감동으로 전해진다.

간디가 살아온 굴곡만큼 험한 삶을 살아온 사람도 드물겠지만 ‘인류의 양심’, ‘위대한 영혼’, ‘아버지 간디’ 등 수많은 별칭이 붙는 것을 보면 근세의 인물 중 그처럼 추앙받는 인물도 없다는 생각이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간디의 피살 소식을 듣고 "아마도 후세대 사람들은 이런 인물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을 걸어 다녔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아주 오래전 나는 한인정상회담(韓印頂上會談) 준비차, 인도 뉴델리 아무나 강변에 위치한 ‘라지 가트’ 간디 추모 묘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의 꺼지지 않는 불꽃은 간디의 정신이 지금도 세계인의 가슴 속에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아직도 세계의 지도자들은 물론 많은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 묘소에서 깊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입구 대리석에 새겨진 ‘일곱 가지 사회악(Seven Social Sins)’이라는 간디의 지적이었다.

서두가 길었으나 이 글을 쓰는 취지도 단지 영화, 간디에 대해서가 아니라, 간디가 지적한 ‘나라가 망하는’ 일곱 가지 사회악에 새삼 우리의 작금의 상황이 대입되었기 때문이다.

옮겨보면, 원칙 없는 정치( Politics without Principle), 노력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 양심 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 인격 없는 지식 (Knowledge without Character), 도덕 없는 상거래(Commerce without Morality), 인간성 없는 학문(Science without Humanity), 헌신 없는 신앙(Religion without Sacrifice)이다.

간디의 이러한 지적이 비단 인도와 과거의 문제뿐이랴?

어쩜 지금의 우리 현실과 겹친다는 느낌은 나만의 기우인가?

우리의 정치가 법은 아랑곳하지 않고 변검, 포커페이스, 안면몰수, 뻔뻔한 권모술수로 일관하고 있는 것을 지금 극명하게 보고 있지 않는가?

명분도, 절차도, 국민에 대한 책임도 정략에 의해 허물어져 버렸다.

이뿐이랴? 노력 없이 부자가 되고 싶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배금주의. 몸과 마음을 자해하는 마약 등의 쾌락추구. 존중 없는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을 먼저 배우는 교육현장.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창의와 열정을 북돋우지 못하는 경제계. 상생보다는 자신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학계, 언론계.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하거늘, 우리 사회에 ‘원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요즘 갸우뚱하다.

절차와 명분에서 기본을 지키며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그렇다.

원칙이 무너지면 승복이 어렵고, 승복이 어려우면 갈등은 폭발되고, 분열과 증오만이 남는다.

그래서 간디는 ‘원칙 없는 일곱 가지 사회악’을 경계했을 것이다.

뿌리가 깊으면, 원칙이 존재하면 바람이 지나가도 잎은 무성해지고 열매를 맺는다.

정상환 한경국립대학교 객원교수